숲노래 책숲마실


강아랫마을 포근한 쉼터 (2020.3.11.)

― 서울 내방역 〈메종 인디아〉


02.6257.1045

서울 서초구 방배로23길 31-43

http://www.maisonindia.co.kr



  2월에는 겨울이 저물면서 봄이 깨어나는 소리가 퍼집니다. 5월에는 봄이 스러지면서 여름이 피어나는 소리가 번져요. 8월에는 여름이 떠나면서 가을이 노래하는 소리가 흐르고, 11월에는 가을이 잠들면서 겨울이 날아오르는 소리가 가득합니다.


  서울이란 고장에서 나고 자란다면 철마다 다르고, 달마다 새로우며 날마다 새삼스러운 소리를 가누기 어려울는지 몰라요. 그러나 서울처럼 큰고장에서 나고 자라더라도 스스로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맛보고 빗물을 혀로 받으며 손으로 푸나무를 쓰다듬는 하루를 연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라도 철을 헤아릴 만하지 싶습니다.


  어릴 적에는 학교 가는 길에 우산을 안 챙기고 싶어서 하늘하고 바람을 읽으려 했어요. 스무 살 무렵에는 자전거를 달려 신문을 돌리면서 밤하고 새벽에 ‘바람에 묻은 비내음’이나 ‘바람에 감도는 뜨거운 볕살’을 읽으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다 보니 어디에서든 모두 헤아릴 만하다고 느꼈고, 무엇보다 나무가 우거졌느냐 있느냐 없느냐로 크게 갈리는 바람맛을 알았어요.


  전남 고흥에서 시외버스를 달려 서울로 가자면, 지리산, 전북, 충남, 경기를 거쳐 서울에 이르도록 다 다른 하늘·들·숲·멧골·길을 느낍니다. 전남을 벗어나면 멧자락이 사라지고, 전북을 벗어나면 숲을 보기 어렵고, 충남에 이르며 전봇대에 공장이 늘더니, 경기에 접어들면 하늘을 꽉 막은 높은 집에 숨이 막혀요. ‘센트럴시티’라고 하는, 뭔 소리인지 모르겠을 이름인 곳에 내리면 사람물결이 대단하지요. 이 사람물결에 섞여 조용히 흐르다가 내방역에서 전철을 내려 몇 걸음 내디뎌 골목으로 접어들면, 안골에 깃든 작은 쉼터에서 춤추는 나무를 보면, 서울 강아랫마을 한복판에 이런 아늑한 데가 다 있구나 싶어서 숨을 새롭게 쉬곤 합니다.


  2019년에 이어 2020년에 동시집을 새로 냈습니다.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란 이름입니다. 새 동시집을 서울 은평에 있는 헌책집 지기님한테 손수 가져다주고 싶어서 서울마실을 했고, 하룻밤을 묵은 이튿날 고흥으로 돌아가기 앞서 〈메종 인디아〉에 들러 다리를 쉬기로 합니다. 3월 첫머리에도 따스하면서 부드러운 햇볕이 아름답습니다. 책집 미닫이를 활짝 열고서 바람이며 해가 그득그득 들어오도록 하니, 이 마을책집에 퍼지는 기운이 한결 새롭습니다. 새벽나절에 동시 ‘돌나물’하고 ‘질경이’를 썼어요. 


어떻게 그리 메마르고 단단한

아무 풀포기 안 자라는

참 거친 땅바닥에

뿌리를 다 내리느냐고?


어쩜 그렇게 밟히고 또 밟혀

게다가 자동차까지 부릉부릉

밟고 다니는 길에서

잎을 다 틔우느냐고?


메마를수록 어루만지고 싶어

단단할수록 녹이고 싶어

거칠수록 쓰다듬고 싶어

아플수록 웃고 싶어


이 땅을 사랑하려 해

이 길이 푸르길 바라

이 숨빛을 나누려 해

이 마음을 꽃피우면서 (질경이/숲노래 씀)


  책집지기님한테, 또 동시집을 펴내 준 출판사 대표님한테, 새로 쓴 동시를 하나씩 드립니다. 함께 낮밥을 먹고서 이야기를 하다가 책을 둘 고릅니다. 고흥으로 달릴 시외버스에서 읽으려 합니다. 하나는 《세상에, 엄마와 인도 여행이라니!》(윤선영, 북로그컴퍼니, 2017)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가 좋아》(정경희, FOR BOOK, 2012)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면, 예전에는 서울 강아랫마을 서초에 헌책집이 거의 없었어요. 그럴 만한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제 곳곳에 알맞춤한 크기로 마을책집이 기지개를 켜면서 알뜰히 우물가 노릇을 하고 샘터 구실을 하며 나무그늘 몫을 하는구나 싶어요. 아무리 커다란 집이 겹겹이 빼곡하고, 아무리 으리으리 자동차가 끝없이 씽씽 달리더라도, 이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서 누구나 푸르면서 포근하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마을책집이 있다면, 서울도 살 만하겠구나 싶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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