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닷컴 2020년 5월치에 실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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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짓는 글살림

44. 돌봄칸


  아픈 사람이 퍼집니다. 불길처럼 번집니다. 곳곳에서 앓기에 ‘돌림앓이’라고 합니다. 돌고 도는 아픈 눈물은 무엇으로 달랠까요. 비가 주룩주룩 내려 씻어 줄까요. 바람이 싱싱 불어서 보듬어 줄까요.


  비가 뿌리고 바람이 스친 하늘은 파랗습니다. 비바람이 훑은 뒤에는 한결 상큼하면서 맑은 날씨가 됩니다. 그 무엇으로도 비바람처럼 맑으면서 싱그러우면서 고우면서 파랗고 푸르게 달래듯 씻어 주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우리 삶터에 아픈 사람이 사라지고 앓는 사람도 기운내어 일어나도록 하자면, 틈틈이 비바람이 찾아들어 온누리를 어루만져 줄 노릇이지 싶습니다.


 돌림앓이


  요사이는 ‘병(病)’이란 말을 흔히 쓰고, ‘병원’이란 이름을 붙이며, 이곳에는 ‘병실’이 가득합니다. 이 땅에서 ‘병’이란 한자를 쓴 지는 얼마 안 됩니다. 참으로 오래도록 이 땅에서 쓰던 말은 두 가지예요. 하나는 ‘아프다’요, 둘은 ‘앓다’입니다.


  몸이 다칠 적에 ‘아프다’라면, 몸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움직이기 어려울 적에 ‘앓다’예요. 참거나 견디기에 힘이 들어 ‘아프다’라면, 참거나 견딜 만해도 몸을 움직이기 힘이 들거나 눕거나 누울 판이기에 ‘앓다’입니다.


  아픈 몸이지만 참거나 견디면서 움직입니다. 앓는 몸이니 참거나 견디면서 움직이면 비틀거리고, 이내 쓰러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이며 별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람만 돌림앓이로 고단하지는 않다고 느껴요. 어느덧 사람한테도 돌림앓이가 퍼졌을 뿐, 숲이며 들이며 바다이며 하늘이며 아프다 못해 앓아누울 판이라고 느낍니다.


 아프다·앓다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해야 아픈 몸을 달래고, 앓는 몸을 고칠까요. 살림을 어떻게 가누어야 아픔을 싹 씻을까요. 삶을 어떻게 추슬러야 앓던 몸을 일으킬 기운이 새롭게 솟을까요.


  사람들이 흙이랑 사귀고 풀이랑 동무하며 나무랑 이웃하던 무렵에는 숲이며 땅이며 별이 아픈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흙을 등지고 풀을 짓밟으며 나무를 밀어없애어 큰고장으로 갈아엎는 동안 숲이며 땅이며 별이 아픈 소리를 낼 뿐 아니라 앓아눕습니다.


  밭자락에 덮는 비닐 때문에 땅이 앓습니다. 논밭에 뿌리는 화학약품 때문에 땅이 앓아요. 끝없이 뻗는 아스팔트 찻길에 비행기에 자동차물결에 숱한 공장에 발전소 탓에 땅이 앓습니다. 평화를 지킨다면서 나라마다 거느리는 전쟁무기 탓에 이 별은 구석구석 아픕니다. 새로 뚝딱거린 무기가 얼마나 센지를 알아본다며 미사일을 쏘고 핵폭탄을 터뜨리며 잠수함이며 항공모함이 갖은 쓰레기를 남기니 이 별은 결리고 쑤시고 저릴 뿐 아니라 눈물을 흘립니다.


  아파서 죽을 판이 별인 터라, 이 별이 흘린 눈물이 돌림앓이로 온누리에 퍼지지 않을까요. 앓아눕고 만 별이기에, 이 별이 앓으며 뱉는 끙끙 소리가 온누리에 번지지 않을까요.


 고치다·다스리다·달래다·낫다


  아픈 아이를 살살 달래던 포근한 손은 어디에 있을까요. 앓아누운 아이를 따사롭게 어루만지던 손길은 어디에 있는가요. 거칠거나 사나운 손으로는 아픈 아이가 낫지 않습니다. 마구잡이나 억지스러운 손길로는 앓는 아이를 일으키지 못합니다.


  땜질을 해서는 아픈 데가 낫지 않아요. 슬그머니 넘어가려 하면 앓는 몸을 못 일으키지요. 바야흐로 밑자리부터 샅샅이 훑으면서 푸르게 가꿀 오늘이라고 생각해요. 이 별에 있는 모든 나라에서 하늘길을 멈추고 바닷길까지 막고 보니 하늘빛이며 바다빛이 그토록 맑게 열린다지요.


  중국이며 인도에 때려지은 공장을 한동안 멈추니 먼지구름이 사라집니다. 한국에서도 공장을 멈추면 먼지구름뿐 아니라 지저분한 구정물도 말끔히 사라지겠지요. 이제 생각해 봐야지요. 왜 매캐한 먼지하고 지저분한 구정물이 쏟아져나오는 공장이나 발전소를 돌려야 할까요? 돌리고 돌리더라도 돌림앓이가 되지 않는, 맑고 밝은 터전을 돌보도록 이바지하는 공장이 되도록 마음하고 머리를 쓰기가 어려울까요. 전쟁무기를 새로 뚝딱거리는 데에 돈을 쏟아붓지 말 노릇이면서, 이 땅을 푸르게 가꾸는 길에 힘을 기울일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돌봄칸


  아프거나 앓는 이를 다스리는 곳이라면 ‘돌봄집’이로구나 싶습니다. 돌보아서 낫게 하는 집이요, 돌보는 손길로 따사로이 어루만지는 집이에요. 돌봄집은 칸을 알맞게 나눕니다.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마음을 푸근히 다독이면서 몸을 튼튼하게 가꾸도록 바라지하려는 칸을 두어요. 이러한 칸은 ‘돌봄칸’이 됩니다.


  돌보는 사람이기에 ‘돌봄이’예요. 어버이는 아이를 돌봅니다. 배우는 곳이라면 어린이·푸름이를 배움으로 돌볼 테고, 아프거나 앓는 사람이 낫도록 하려는 터에서는 포근손이며 사랑손으로 돌볼 테지요.


  돌봄집에서도, 보금자리에서도, 마을에서도, 나라에서도, 배움터에서도, 저마다 돌봄이라는 눈빛이 되어 환하며 즐거운 기운을 나눕니다. 돌봄일꾼이 되고, 돌봄지기가 됩니다. 돌봄빛이 되고 돌봄님이 됩니다.


 누리맞이


  나라 곳곳에 돌림앓이가 퍼지면서 멈추는 곳이 많습니다. 배움터도 멈추지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올해에도 슬기롭게 배우기를 바라는 뜻으로 저마다 집에서 조용히 배우도록 하는 틀을 마련합니다. 셈틀을 켜서 이야기를 듣고 살피도록 하는 이러한 틀은 ‘누리맞이’라고 할 만합니다.


  누리집이 있어요. 누리글월을 주고받아요. 누리판에서 나누는 누리글이며 누리그림입니다. 누리판에서 어우러지는 사람들은 서로 누리님이자 누리벗입니다. 누리판에서 한결 홀가분하게 만나는 누리날개를 펴고, 누리가게에서 이것저것 사기도 합니다. 이제는 누리책집에서 책을 만날 수 있으며, 손전화를 켜고 누리마실을 즐기기도 합니다.


  누릴 수 있는 곳은 마을입니다. 두 다리로 걷고 두 손으로 보듬는 풀꽃나무가 자라는 마을이기에 다같이 짙푸른 바람을 누리고, 새파란 하늘을 누립니다. 맑게 흐르는 냇물을 다함께 누릴 수 있다면, 굳이 플라스틱에 물을 안 담아도 될 테며, 시멘트를 땅에 파묻거나 커다란 시멘트담을 세우지 않아도 되겠지요.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셈틀을 켜서 배우는 ‘누리배움’을 한다면, 어른은 무엇을 하면 아름다울까요? 우리는 온누리를 어떤 새누리가 되도록 가꿀 적에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살림길을 열 만할까요?


  예전 그대로 가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예전대로 살아가지 않기를 빕니다. 새길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억지스러운 새나라나 새마을이 아닌, 슬기롭고 참다우며 아름다운 새터에 새빛에 새말에 새싹이 될 새삶을 생각하기를 바라요.


  새마음이 되는 새사람입니다. 새봄에 마주하는 새꽃입니다. 멧새가 노래하는 소리를 같이 들을까요? 들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함께 누릴까요? 바야흐로 제비가 둥지를 새로 짓거나 고칩니다. 제주부터 백두까지, 전라남도 고흥부터 서울을 거쳐 중간진까지, 새바람이 싱그러이 불면서 곱다시 피어나기를 꿈꿉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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