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언덕받이로 드리운 별내음 (2020.4.2.)
― 전남 목포 〈동네산책〉
전남 목포시 용해로86번길 1-2
061.276.4565.
https://www.instagram.com/dongnesanbooks/
온누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길그림을 펼쳐서 보기를 즐겼습니다. 남북녘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길그림도 펼쳐서 보기를 즐겼어요. 어린 날에는 길그림만 들여다보아도 하루가 어느새 지나갈 만큼 푹 빠졌어요. 어버이를 따라 몇 군데 가 본 데에는 동그라미를 그리고는, 아직 발을 못 디딘 여러 고장에 언제쯤 가 보려나 하고 꿈꾸었어요. 이웃나라에는 언제 찾아가 보려나 하고도 꿈꾸었고요.
그런데 제가 나고 자란 인천에서만 해도 늘 노는 마을에서 늘 만나는 동무랑 이웃만 만날 뿐, 이웃한 구·동으로 갈 일이 드물다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이웃나라로 가기 앞서, 이옷 여러 고장이나 고을로 가기 앞서, 먼저 인천이란 데부터 골골샅샅 누비면서 ‘가까운 이웃이며 동무’부터 만날 일 아닌가 하고 생각을 새로 해보았습니다.
2007년부터 2010년 사이에 날마다 너덧 시간쯤 두 다리나 자전거로 인천을 샅샅이 다녔어요. 아무리 나고 자란 고장이라 해도 날마다 몇 시간씩 몇 해쯤 다니지 않고서는 ‘안다’라든지 ‘본다’라든지 ‘느낀다’라든지 어느 말도 할 수 없다고 배웠어요.
전남 고흥으로 삶터를 옮기고 보니 이 시골에서 저 시골로 가는 길은 자가용 아니면 없고, 이 시골에서 저 큰고장으로 가는 길도 드뭅니다. 고흥에서 목포 사이에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한 걸음 있었지만 조용히 사라졌어요. 아직 목포에 가 본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든 봄날, 시외버스로 시골길을 돌아서 찾아가고 싶었어요. 마침 목포시립도서관 곁에 움튼 〈동네산책〉이란 마을책집이 있군요. “아버지는 목포마실을 해보려 하는데 같이 갈래? 다만, 가는 데에만 버스에서 네 시간 남짓 있어야 하지.” “에? 네 시간도 더? 서울보다 멀잖아? 음, 우린 집에서 놀게요. 잘 다녀 오세요.”
새벽바람으로 길을 나서서 목포에 닿으니 낮 한 시가 넘어갑니다. 시외버스나루부터 걷습니다. 처음 찾는 고장이니 느긋이 걷기로 합니다. 목포 큰길은 전라도 다른 고장에 대면 매우 시끄럽습니다. 목포는 큰길을 걷는 사람을 거의 못 봅니다. 이 시끄러운 큰길을 누가 걷고 싶을까요. 길이 반듯할수록 마을사람은 마을하고 멀어질 뿐입니다.
마을길로 접어드니 그 시끄럽던 자동차 소리가 수그러듭니다. 귀도 몸도 살 만합니다. 흐드러지는 개나리꽃을 보고서 멈춥니다. 거리나무로 자라는 후박나무를 쓰다듬습니다. 갈퀴나물하고 속닥속닥하다가 냉이꽃하고 눈을 맞추다가 ‘동네산책’이라 적힌 걸개천을 알아차립니다. 오르막 디딤돌을 딛고 가면 되는군요.
언덕받이에 자리한 〈동네산책〉은 더없이 아늑한 터에 깃들었구나 싶습니다. 책을 누리러 이곳에 오는 손님은 바람이며 햇볕이며 하늘을 옴팡 누리겠어요. 그저 하늘바라기를 하면서 하늘이라고 하는 책을 읽을 만하겠습니다.
살뜰히 갈무리한 문학책 사이에서 《아우내의 새》(문정희, 난다, 2019)하고 《빈 배처럼 텅 비어》(최승자, 문학과지성사, 2016)라는 시집을 고르고, 《고독한 직업》(니시카와 미와/이지수 옮김, 마음산책, 2019)이라는 수필책을 고릅니다. 책값을 셈할 즈음 〈동네산책〉을 돌보는 지기님이 동화를 쓰신다는 말씀을 듣고는, 책집지기님이 쓴 《붉은 보자기》(윤소희 글·홍선주 그림, 파랑새, 2019)를 더 고릅니다.
마을길에서, 골목 한켠에서, 언덕받이에서, 하늘바라기 마당에서, 별빛이 쏟아질 밤에, 이 책집을 드나든 숱한 걸음걸이를 떠올리다 보면 글이 저절로 피어날 만하겠다고 느낍니다. 마을이 온갖 이야기를 들려줄 테지요. 골목에서 갖은 노래를 불러 주겠지요. 언덕받이로 드리우는 별내음하고 햇살이 숱한 살림빛을 베풀 테고요.
그나저나 목포에 있는 다른 마을책집은 돌림앓이 탓에 쉬거나 일찍 닫는다고 해서 찾아가기 어렵습니다. 목포를 보고 나왔는데 광주로 건너가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외버스나루로 돌아와서 갈팡질팡하다가 순천 가는 시외버스를 탔고, 딱 고흥 돌아갈 시외버스하고 맞물리기에, 고흥-목포 사이를 하루치기로 다녀왔어요. 한밤에 택시로 집에 닿으니 두 다리가 매우 무겁습니다. 발을 씻고 폭 곯아떨어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