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시골에서 서울로 나들이 (2016.6.10.)
― 서울 신촌 〈숨어있는 책〉 02) 333-1041
서울 마포구 신촌로12길 30
우리 집에서 나들이를 가면 으레 널널합니다. 오늘날 웬만한 나들이는 서울을 비롯한 큰고장에서 시골로 너울을 치니, 두멧시골에서 서울이나 큰고장으로 볼일을 보러 움직일 적에는 한갓집니다. 바깥일을 마치고 두멧시골로 돌아오는 길도 한갓집니다. 서울이며 큰고장 사람들은 여느날에 일터로 가느라 이때에는 시골로 가는 길에 자동차를 구경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시외버스에서 누워 가도 되어요. 2016년 6월에 드디어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을 마무리짓습니다. 지난 석 달을 글손질로 꼬박 보냈습니다. 1월부터 6월까지 바깥일을 되도록 손사래치면서 하루 내내 사전엮기로 보내었고, 어제오늘은 ‘인쇄소에 넘기기 앞서 마지막 글손질’을 하러 서울마실을 합니다.
다른 책은 ‘엉덩이하고 싸운다’고 말합니다. 책상맡에 진득하게 앉아서 글을 갈무리한다지요. 사전은 ‘엉덩이하고 사귄다’고 말해야 합니다. 싸워서는 둘 다 죽어요. 사전짓기는 ‘진득하게 앉기’가 아닌 ‘쉬는 틈을 안 내고 눌러앉기’인 터라, 부엌일 집안일 바깥일을 마치고서 숨을 돌리지 않고 다시 눌러앉기를 하는 터라, 그저 사랑으로 엉덩이랑 사귈 적에 비로소 한 자락을 여미어 마무리를 해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숨어있는 책〉에서 처음 눈에 뜨이는 책은 《달려라 하니》(이진주, 바다그림판, 2001)입니다. 지난 2001년에 바다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만화책을 되살렸어요. 《꺼벙이》(길창덕), 《두심이 표류기》(윤승운), 《5학년 5반 삼총사》(박수동, 《철인 캉타우》(이정문), 《도깨비 감투》(신문수), 《로봇 찌빠》(신문수) 같은 만화책을 되살렸지요. 앞으로도 잘 되살리려나 하고 여겼더니 이 만화책은 어느새 줄줄이 판이 끊어졌어요. 버티기가 어려웠네 싶어요.
생각해 보면 그렇습니다. 지난날 널리 사랑받은 만화책 몇 가지를 되살리는 일도 좋은데 오늘날 새로 태어나는 만화책도 나란히 선보일 노릇이에요. 옛책하고 새책이 어깨동무를 하도록 여미어 꾸준히 낸다면 팔림새가 어려워 손을 떼는 일은 없으리라 봅니다. ‘만화꾸러미 1000자락’을 내다보면서 천천걸음으로 가면 되어요.
사진책 《공병우 사진집 1》(공병우, 삼화인쇄, 1980)를 보다가 《참나무는 내게 숯이 되라네》(김영재, 평민사, 1982)를 집어드니 겨울날 얼어붙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수도꼭지가 얼고 우리가 찍어 쓰던 잉크도 얼어 붙고 우리의 방을 지키던 불빛도 파랗게 떨고 있다. 성탄절이 가까와 오는데 왜 순순히 살아가지 못하느냐고 멍투성이 가슴에 꽃잎 같은 성에를 피우며 담장 밖에선 칼바람이 부끄러운 내 이름을 부른다. 작은 가슴 합하여 언 겨울 녹여가자던 우리의 꿈은 등을 돌리고 잠들지 못한 사내의 목발 하나, 온 도시를 깨우고 간다. (겨울밤)
이희재 님이 학습지에 그린 만화인 ‘웅진아이큐 마음문고’ 《김옥균 3 (국6년)》, 《김옥균 5 (국4년)》를 봅니다. 단편극화 〈용꿈〉하고 감동동화만화 14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만화잡지에서 오래낸 꾸러미입니다. 이희재 님 만화를 좋아하는 어느 분이 이래저래 그러모았구나 싶어요.
만화책 《남생이 1》(오세영, 서울문화사, 1998)를 반갑게 집습니다. 《부자의 그림일기》로 이름을 알린 오세영 님일 텐데, 《남생이》를 비롯한 만화로 ‘한국 근현대소설을 만화로 새로 그려낸 붓끝’으로 우리 만화 흐름에 새빛을 드리웠다고 할 만합니다. 참으로 놀랍고 아름다운 만화책인데 정작 문학판이나 배움판에서는 안 알아보더군요. ‘만화책’이라서 안 된다고, 만화책이라서 어린이나 푸름이한테 못 읽힌다고 했어요.
그러나 생각해 봐야지요. 1920∼40년대에 나온 글만 읽고서 그때 어떤 모습에 어떤 살림에 어떤 마을이었는가를 한국사람조차 얼마나 헤아릴 만할까요? 이러한 흐름을 만화로 거뜬히 담아내어 글·그림을 나란히 보여준다면 얼마나 대단하면서 값질까요?
1983년치 ‘연세대학교 구내서점’ 책싸개가 깃든 책을 하나 봅니다. 책싸개를 얻으려고 책을 고릅니다. 조선일보사 조사부에 있다가 나온 책 《세계아동문학독본 7 : 중국 아동문학독본(김광주 옮김)》(을유문화사,1968)을 쓰다듬습니다. 신문사에서 건사했다가 내놓은 책이 고맙습니다. 《룡정시 문학예술계련합회 엮음-민족시인 윤동주 50주기 기념 학술토론회 론문집》(1996)을 들추고, 사진책 《Buddhism, Japan's cultural identity》(Stuart D.B.Picken, kodansha, 1982)하고 《LIFE photographers》(TIME, 1957)를 고릅니다.
책값을 셈합니다. 〈숨어있는 책〉 책집지기님하고 몇 마디 섞습니다. “시골 가더니 얼굴 보기도 힘드네. 고창이던가? 어디였지?” “고흥이에요. 전라남도입니다.” “고흥, 그래 고흥이라고 했지. 애들은 잘 크고? 뭐 하고 놀아?” “하루하루 무럭무럭 크지요. 시골이어도 농기계하고 짐차가 다니니 밖에서 뛰놀기는 힘들지만, 마당하고 뒤꼍이 있고, 바다나 골짜기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요. 오랜만에 찾아와도 시골로 갈 버스를 타야 해서 그야말로 아주 살짝 머물다 가네요.” “올해에 또 볼 수 있나?” “그러게요. 한 해에 한 걸음은 해서 얼굴을 보기도 만만하지 않네요. 미리 한가위랑 설날 절을 해야 할까 싶네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