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새롭게 읽는 눈 (2016.6.29.)
― 서울 〈정은서점〉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21길 38, 1층
02.305.9201.
http://www.jbstore.co.kr
도서관이라는 곳은 가난하든 가멸차든 누구나 책을 만나서 누리는 터전입니다. 책집은 책을 사고파는 터전입니다. 도서관에서든 책집에서든 ‘나 혼자 볼 책이 아니’라는 대목을 헤아리면서 깨끗하게 만지고서 제자리에 둘 노릇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이 책을 만난다면, 우리가 떠난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찾아와서 이 책을 만나고 싶거든요.
책집에는 새책집하고 헌책집이 있어요. 아직 아무도 손을 대지 않은 책을 처음으로 손대는 새책집이라면, 이미 손을 탄 책을 새롭게 만나는 헌책집입니다. 헌책집에서도 새책집이나 도서관에서하고 마찬가지로 책을 정갈하게 다룰 노릇입니다. 새책에 처음 손을 대는 사람도, 헌책집에서 새롭게 손을 대는 사람도, 두고두고 흐를 책이라는 숨결을 읽을 적에 아름답지 싶어요.
서울 연세대학교 건너쪽에서 오랫동안 헌책살림을 잇던 〈정은서점〉은 연희동 쪽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내로라하는 대학교가 코앞이었다 하지만, 그곳을 다니는 교수하고 학생이 책을 그리 가까이하지 않은 탓이라 하겠습니다(2018년 7월에 북가좌동으로 다시 옮겼습니다).
책이란 어떤 사랑일까요. 종이꾸러미가 기꺼이 된 나무는 새몸에 글씨하고 그림을 까맣게 입으면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길가에 방울나무가 푸르고 넓적한 잎을 찰랑거립니다. 디딤턱을 밟고 들어선 새로운 〈정은서점〉에는 책탑이 가만히 물결칩니다.
사진책 《탄생》(윤여정, 관점, 1990)은 의사인 곁님하고 부산에서 살며 병원에서 아기가 태어나는 흐름을 담아냅니다. 1990년에 이러한 눈으로 사진을 담아낸 분이 있군요. 한 치 틈을 내기가 만만하지 않을 돌봄집일 수 있지만, 아기를 받는 돌봄집이라면 누가 곁에서 사진을 찰칵 담아서 나중에 아기하고 어버이한테 남겨 주어도 무척 좋겠구나 싶습니다.
사진책 《Olympic Photograph Collection, Xth Olympiad Los Angeles 1932》(George R.Watson·Delmar Watson·Miseki L.Simon, 旺文社, 1984)를 보면서 일본이 사진으로 갈무리하는 자취란 남다르다고 새삼스레 느낍니다. 1932년에 미국에서 연 올림픽을 보여주는 사진을 1984년에 갈무리를 해서 묶는군요. 그러고 보니 1984년은 미국에서 새로 올림픽을 연 해이기도 합니다.
사람한테 개는 어떤 이웃이거나 숨결일까요. 《Man's best friend》(William Wegman, Abrams, 1982)는 사람 곁에 더없이 가까운 벗을 개로 여기면서 담아낸 사진을 보여줍니다. 요즈막에는 ‘반려’란 한자말을 붙인 ‘반려견·반려묘·반려동물’이란 이름을 흔히 쓰는구나 싶은데, ‘반려’가 뜻이 나쁘지 않습니다만, 어린이한테는 어렵습니다. ‘벗’이나 ‘동무’ 같은 쉬운 이름을, 또는 ‘곁’ 같은 살가운 이름을 붙이면 한결 나으리라 생각해요. ‘벗개·동무냥이’나 ‘곁개·곁짐승’으로 삼을 만합니다.
사랑받는 도라에몽이기에 《トラえもん ハ-トフルに喜怒哀樂 編》(小學館, 2010)을 엮기도 하네 싶어요. 《눈송이의 비밀》(케네스 리브레히트/양억관 옮김, 나무심는사람, 2003)을 보니 어릴 적에 눈이 오는 날마다 손바닥에 눈송이를 받아서 가만히 들여다보던 일이 떠오릅니다. 그때엔 방학숙제 가운데 하나로 ‘눈무늬 그리기’가 있어서 돋보기를 들고서 유리판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보며 바로바로 옮겨그리기도 했어요.
입센이란 분이 쓴 ‘인형집’이란 글만 알다가 《인형의 집》(루머 고든/햇살과나무꾼 옮김, 비룡소, 2008)을 보고는 놀랍니다. 말 그대로 인형이 모여서 사는 집을 인형 마음을 읽고서 담아낸 이야기예요. 꽤나 오랜 이야기인데 오늘 읽어도 새롭고, 무엇보다도 ‘인형은 사람이 안 보는 곳에서 어떤 말을 섞고 생각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대목을 잘 그렸구나 싶습니다. 글쓴이 책이 뜻깊으면서 아름답구나 싶어 이분 다른 책 《튼튼 제인》하고 《캔디클로스》는 새책집에서 장만해야겠어요. 두고두고 읽고 나눌 이야기라고 느껴요.
다 다른 사람이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르게 살면서 다 다른 이야기가 피어납니다. 다 다른 이야기는 다 다른 나무가 거듭난 종이에 다 다른 무늬하고 숨결로 깃들면서 다 다른 책으로 태어납니다. 다 다른 책이 가득한 헌책집에는 웬만해서는 똑같은 책을 구경하기 어렵습니다. 언제나 다 다른 책이 드나들면서 다 다른 곳에 흐르는 다같은 새로운 눈빛을 넌지시 알려주지 싶어요. 다음에 여름바람을 물씬 느끼면서 〈정은서점〉을 새로 마실할 날을 손꼽으며 돌아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