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리 1 - S코믹스 S코믹스
이시이 아스카 저자, 김현주 역자 / ㈜소미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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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숲노래 만화책

- 타고난 마음은 오롯이 하나



《세상의 소리 1》

 이시이 아스카

 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19.7.25.



  우리 입에서 흐르는 말은 언제나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지 싶어요. 이야기이거나 핑계입니다. 또는, 참말이거나 거짓말입니다. 속말이거나 빈말입니다. 마음말이거나 겉말입니다. 삶말이거나 굴레말입니다.


  두 갈래로 흐르는 말길인 줄 느낀다면 스스로 어느 쪽으로 갈 적에 즐거운가 하고 헤아릴 만하겠지요. 가붓하게 이갸기나 참말이나 속말이나 마음말이나 삶말로 나아갈 만합니다. 눈치를 보면서 핑계나 거짓말이나 빈말이나 겉말이나 굴레말에 매일 수 있습니다.



“어째서? 당연히 알 수 있지 않나? 섬에서 태어난 아이니까.” (20쪽)



  새해 새봄으로 맞이한 사월 첫머리에 모과나무 곁에 섭니다. 사다리를 척 받칩니다. 모과꽃을 훑으면서 모과잎도 땁니다. 나무 한 그루에서 터지는 꽃은 어마어마합니다. 처음에는 작은 씨앗이었습니다만 어느새 어린나무로 자랐고, 이윽고 푸른나무로 빛나더니, 어느새 어른나무로 활짝 우거져요.


  어린나무일 적에는 꽃이 피지 않습니다. 푸른나무로 접어들며 한두 송이쯤 꽃이 터져요. 기다리고 지켜보고 쓰다듬고 말을 걸고 아낀 나날이 흐르며 비로소 꽃이 열 스물 쉰이 터지더니 이제는 가지마다 백이 넘는 꽃망울이 맺어요.


  그런데 이 꽃은 모두 열매로 이어가지 않아요. 생각해 봐요. 모과뿐 아니라 모든 열매나무가 매한가지인데요, 피어난 꽃이 모두 열매가 되면 나뭇가지가 찢어집니다. 나무 스스로 바람을 불러서 꽃을 떨굽니다. 벌나비나 새를 불러 꽃을 또 떨구지요. 그리고 사람을 불러 꽃을 새롭게 쓰기를 바랍니다.



“타츠미 군, 아까 하던 얘기 말인데, 소리라고 하면 섬은 소리로 가득해.” “조용하다 생각하는데요.” “맞아. 조용하기 때문에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더 가득한 거야. 파도와, 벌레, 바람의 소리.” (37쪽)



  모과꽃을 해말림으로 건사해서 찻물을 마시면 좋겠다고 느꼈어요. 처음부터 느끼지 않았고, 둘레에서 꽃차를 누리는 모습을 보다가 ‘우리 집 나무도 꽃을 잔뜩 피우’니까, 나무 한 그루에서 우리 집안에서 누릴 꽃차를 얻으면 되겠다고 깨달았어요.


  사람이 나무를 지켜보듯, 나무도 사람을 지켜보았으리라 생각해요. 사람이 어린나무를 두고두고 아끼듯, 나무도 사람이 자라는 결을 고이 바라보면서 오래오래 사랑하지 싶어요. 《세상의 소리 1》(이시이 아스카/김현주 옮김, 소미미디어, 2019)를 읽으며 온누리를 감도는 뭇소리를 떠올렸습니다.


  만화영화 〈포카혼타스〉에서 포카혼타스라는 아가씨는 언제나 ‘버드나무 할머니’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해요. 다른 사람은 버드나무뿐 아니라 돌이나 꽃하고 말을 섞지 못하지만, 포카혼타스만큼은 버드나무를 비롯한 뭇숨결하고 말을 섞고 웃음을 나눕니다. 자, 버드나무 할머니하고 이야기를 펴면서 마음을 살찌운 포카혼타스는 무어라고 노래하지요? “Can you paint with all the colors of the wind?”란 노랫말을 가만히 마음으로 담아 봐요.



“선생님, 완전 하얗네요.” “그런가요?” “네∼! 전 완전 새까만데!” “소우는 매일 바다에서 수영하니까. 그렇지. 머리까지 다 탔잖아.” “타츠미 선생님도 같이 가요, 바다!” (70쪽)



  우리 집 모과나무는 지난해하고 지지난해에 모과알을 우리가 훑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지 않습니다. 아니, 살짝 섭섭해 했어요. 어느덧 꽃을 잔뜩 맺고 열매를 주렁주렁 달았는데 무슨 다른 일이 그리 많아 이 열매를 못 보았느냐고 따지지는 않되, 다음해에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어요. 저는 모과나무한테 “하나 새로 배웠어. 네 꽃에 햇볕을 듬뿍 먹여서 말리면 겨우내 새삼스레 누릴 수 있더라. 사탕수수가루에 재우지 않더라도 오직 햇볕하고 네 꽃만으로 달콤하고 포근한 기운을 겨우내 누릴 만하겠더라.” 하고 속삭였습니다.


  낫으로 풀을 벨 적에는 풀한테 “우리가 너희를 먹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너희를 흙바닥에 눕혀 놓으면 너희 풀은 땡볕에 흙이 마르지 않도록 돌봐 줄 뿐 아니라, 너희 스스로 새롭게 까무잡잡한 흙으로 거듭나면서 이곳을 아름터로 북돋아 주지.” 하고 속삭여요.


  하루 내내 노래하는 새를 바라보면서 “이토록 고운 노래는 어떻게 배웠니? 이토록 아름다운 노래는 어떻게 너희 몸에서 깨어나니?” 하고 묻습니다. 이렇게 물으면 뭇새는 까르르 웃으면서 “너희한테도 언제나 마음 가득 노래가 흐르는걸. 너희도 너희 노래를 터뜨려 봐?” 하고 대꾸합니다.



“유물울, 토기든 옥돌이든 서적이든, 형태는 달라도 그 모든 게 손으로 만지면 그것들이 만들어진 아주 먼 옛날과 그것들을 만든 누군가와 이어지는 기분이 들어서요.” (76쪽)


“지금은 몰라도 돼. 말로만 알면 머리만 커지니까 말이야. 자신의 몸을 통해 얻은 것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언젠가 그곳으로 이끌어 줄 거야.” (103쪽)



  우리는 입으로만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한테는 입말만 있지 않아요. 글말하고 다른 입말도 대수롭습니다만, 입말을 넘어선 마음말이 더할 나위 없이 대수롭습니다. 마음말 곁에 있는 삶말이 대수롭고, 삶말하고 나란히 흐르는 사랑말이 대수로워요.


  우리가 어른이란 자리에서 살아가는 몸이라면, 아이라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이웃이며 동무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만할까요? 우리는 인문지식이 가득한 말을 물려주어야 할까? 일본 한자말이나 번역 말씨를 아이들한테 노래할 만할까요? 걱정이며 근심이며 두려움이며 조바심이 가득한 말을 들려줄 만할까요? 틀에 박히거나 쳇바퀴를 돌거나 수렁에 잠긴 말로 입시지옥에 내모는 말을 알려줄 만할까요?



“번개는 벼 이외에도 여러 작물을 키워 줘요. 밭에 떨어지기도 하고, 나무에 떨어지기도 하고, 그때 열매나 뭔가가, 번개의 알을 품는 경우가 있어요.” (123쪽)


“타츠미 선생님은 선생님인데도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우리가 선생님의 선생님이 되어 줘야겠다.” (124쪽)



  작은 섬에는 작은 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섬이란 얼마나 작을까요. 작은 섬은 참말로 작을까요. 구태여 다른 섬하고 겉크기를 대니까 작아 보이지 않을까요.


  크기란 처음부터 없지 않을까요. 잘생기거나 못생긴 얼굴도, 세거나 여린 몸도, 가멸차거나 가난한 주머니도, 처음부터 아예 없는 노릇 아닐까요. 《세상의 소리 1》는 여러모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온누리가 태어난 소리를 들려주고, 온누리가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들려주며, 온누리를 이룬 작은 조각인 ‘나’ 하나가 더더욱 작은 소리에서 깨어난 빛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치만 아침 바다는 완벽하단 말이야. 투명한 빛이 몸속을 지나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133쪽)



  온누리 모든 나라가 우뚝 멈춥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멈출는지 모르고, 이 멈춤길이 잦아들고 나서는 어떻게 다시 흐를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우리는 오늘길이나 앞길을 어느 만큼 헤아릴까요?


  이렇게 학교가 멈추고 하늘길이 멈춘 모습이 풀릴 앞날에 ‘예전하고 똑같이 다시 흐르도록 하면 될’까요, 아니면 ‘예전하고 확 다르게 우리 삶터를 싹 갈아엎으면서 아름다이 흐르는 새길을 찾으면 될’까요?


  어느 나라는 2020년 대학입시를 벌써 집어치우기로 했답니다. 대학입시가 대수롭지 않은 줄 알아챈 셈이겠지요. 한국은 오늘 뭘 할까요? 한국은 개학을 늦추고 입시 일정을 미루기는 하지만, 막상 앞길을 내다보는 눈이나 걸음이나 몸짓은 도무지 안 보입니다.


  찻길하고 시멘트집하고 자동차하고 가게로 그득한 큰고장 한복판을 치우고서 그자리에 ‘예전’처럼 숲이며 들이며 냇물이 푸르게 춤추도록 바꾸자는 생각을 내는 벼슬아치나 우두머리가 있을까요? 돌림앓이가 무서우니 집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만, 정작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만한 숲이며 들이며 바다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는 어른은, 아이들더러 아름답고 깨끗한 숲으로 가라고 말하는 어른은, 이 나라에 참말로 없을까요?



“나 말이야, 옛날부터 생각했어. 우리가 이렇게 내쫓으면, 여기 있던 벌레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하고.” (186∼187쪽)



  타고난 마음은 오롯이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은 숨결을 물려받아서 태어납니다. 이 숨결이란 그냥 밥을 먹고 그냥 숨을 쉬는 결이 아닙니다. 스스로 빛나고 이웃을 밝히는 숨결입니다. 스스로 사랑으로 반짝이면서 다같이 꿈날개를 펴면서 활활 날아오르는 숨결이에요.


  한국뿐 아니라 지구별 모든 나라가 숲·들·바다·가람을 깡그리 짓밟으면서 서울을 세웠습니다. 시멘트로 높다랗게, 아스팔트로 새까맣게, 가게로 빼곡하게, 자동차는 물결치도록 내몰았어요. 여기에다가 전쟁무기랑 군부대를 엄청나게 들여놓았지요. 이런 서울에서 아이들이 홀가분하게 뛰놀거나 어른들이 사이좋게 어우러지며 일할 틈이란 없습니다.


  이뿐인가요. 들풀이며 나무가 자랄 틈바구니마저 없어요. 자, 이런 서울 한복판에, 여러 나라 큰고장 한복판에 무엇이 불거질까요? 바로 시샘하고 다툼질이 불거지고, 시샘하고 다툼질 사이에서 ‘내가 이 쳇바퀴에서 밀려나거나 떨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근심·끌탕이 불거집니다. 걱정·근심·끌탕은 조바심으로 이어지고, 두려움이 되다가는, 이내 무시무시한 돌림앓이로 번져요.


  방역만 꼼꼼히 한대서 안 아플 수 없습니다. 벌나비가 춤추고 풀벌레가 노래하며 멧새가 하늘을 가르고 푸나무가 싱그럽게 우거진 곳에서 아이들이 맨발로 뛰놀고 어른들이 왁자지껄 수다를 펴며 일하는 살림자리일 적에, 비로소 아픈 사람이 사라지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꽃이 피어나리라 느껴요. 우리는 이제야말로 타고난 마음, 곧 사랑을 다시 찾아나설 때라고 생각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린다.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쓴 책으로 《우리말 수수께끼 동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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