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타카코 씨 4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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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푸른책

- 콕콕 콩콩 찾아드는 노랫소리



《행복한 타카코 씨 4》

 신큐 치에

 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18.12.15.



  겨울에 매우 포근한 고장에서 살면 함박눈뿐 아니라 싸락눈을 만나기도 어렵습니다. 겨울에 더없이 포근한 고장에서 살면 잎눈이나 꽃눈을 수두룩하게 만날 뿐 아니라, 아직 겨울바람이 가시지 않을 무렵에도 꽃내음을 맡기 좋아요.


  어느 쪽이 더 낫거나 좋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온누리를 하얗게 덮는 하늘눈도 좋고, 푸나무에서 피어나려는 풀눈·나무눈도 좋거든요.



“자신감을 갖고 언제든지 관둘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 타카코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있었더니 결심이 굳어졌어.” 마음을 달래 주는 건, 언제나 누군가의 숨결. (120쪽)



  지난겨울에는 고흥이란 고장에서 하늘눈을 하루도 만나지 못했는데, 밤새 매우 고요했어요. 왜 이렇게 고요한가 싶어 새벽에 마당을 내다보았더니, 어라 흰눈이 마당을 가볍게 덮었군요. 해가 들면 모두 녹을 듯했고, 참말로 아침이 되자마자 흰눈은 녹습니다. 그러나 낮에도 저녁에도 눈발은 이어가더군요. 비록 고흥이란 고장에서는 저녁에 날리는 눈발도 바로바로 녹습니다만, 아이들은 하루 내내 오랜만에 눈을 구경할 수 있어서 손이며 볼이며 몸이 얼도록 눈놀이를 즐깁니다.


  그래요,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은 고요합니다. 눈은 온누리를 하얗게 덮을 뿐 아니라, 온갖 소리도 차분히 잠재워요. 새롭게 피어날 철을 그리면서 하얀 이불이 된달까요. 깊이깊이 꿈을 꾸라는 뜻으로 소리를 다독인달까요.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힘든 내색을 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어. 좋아하는 일이 직업인 건 멋진 일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불만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현실과의 괴리 때문에 더 힘들지 않아?” (115쪽)



  2018년에 세걸음이 나오고 2020년에 드디어 네걸음이 나온 《행복한 타카코 씨 4》(신큐 치에/조아라 옮김, AK커뮤니케이션즈, 2020)입니다. 썩 널리 읽히거나 사랑받지는 못하는구나 싶은데요, 이 만화를 그린 분이 선보인 다른 만화 《와카코와 술》은 퍽 읽히고 사랑받는구나 싶은데요, 저는 ‘혼술놀이’를 즐기는 이야기보다 ‘소리놀이’를 누리는 이야기가 어쩐지 끌립니다.


  숲에서라면 숲이 들려주는 소리를 노래로 맞아들이고, 서울에서라면 서울에 퍼지는 소리를 노래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이야기가 감도는 《행복한 타카코 씨》예요. 서울(일본 도쿄) 한복판에서 살며 갖가지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는 타카코 아가씨인데, ‘다른 사람은 시끌벅적하다’고 여겨도, 타카코 아가씨는 ‘사람이 저마다 다른 살림자리를 가꾸면서 살아가는 소리, 사랑하는 소리, 생각하는 소리’라고 여깁니다.


  소리에 깃든 마음을 읽는다고 할 만해요. 소리에 담는 생각을 느낀다고 할 만하지요. 소리로 나누려는 사랑을 헤아린다고 할 만하고요.



‘어째서인지 웃음이 나온다. 그 정체는 밝은 웃음소리가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것처럼, 아이의 울음소리에도 똑같은 힘이 있어. 어른은 도저히 불가능한, 있는 힘껏 드러내는 공포나 아픔, 악에 받친 응석.’ (68∼69쪽)



  우리 입에서는 어떤 말소리가 흐르나요. 우리 눈은 어떤 말소리를 알아보는가요. 우리 손으로는 어떤 소리를 짓는가요. 연필을 사각이는 소리인가요. 눈밭을 사그락사그락 밟는 소리인가요. 농약을 피이이 뿌리는 소리인가요, 들풀 곁에 쪼그려앉아 잎줄기를 톡톡 훑는 소리인가요.


  아이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넘기는 소리인가요, 악을 쓰면서 치고받는 소리인가요. 콩콩 폴짝폴짝 사뿐사뿐 날아가듯 걷는 소리인가요, 쿵쿵 씩씩 흥흥 골을 부리는 소리인가요.


  통통 톡톡 도마를 두들기는 칼놀림이 노래가 되는 소리인가요, 쾅쾅 퍽퍽 도마를 내리찍는 칼부림이 짜증스럽거나 지겨운 소리인가요. 우리는 늘 소리를 내지만, 언제나 우리 마음결에 맞추어 다 다른 소리가 되어요.



‘들려오는 소리로는 느낄 수 없었다. 직접 보고 처음으로 알게 된 서글픔. 분명 그곳에는 나의 상상이 미치지 못한 사정이 있었을 터. 지레짐작은 하지 말자고 맹세한 아침 풍경이었다.’ (40쪽)



  한국말로 옮긴 이름은 《행복한 타카코 씨》입니다만, 일본책에는 “타카코 상”이란 수수한 이름입니다. 타카코 아가씨는 소리에서 즐거운 빛도 서운한 빛도 느끼고, 반가운 빛도 아쉬운 빛도 느껴요.

  가만 보면 그렇지요. 우리 귀는 ‘소리라고 하는 빛’을 받아들이는 곳이지 싶어요. 살갗이나 눈이나 코는 ‘소리라고 하는 결’을 새삼스레 느끼는 곳이지 싶고요.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란 무엇일까요? 키득키득하는 소리란 즐거운 웃음인가요, 놀리는 웃음인가요. 킬킬대는 소리란 좋아 죽겠다는 웃음인가요, 비웃으려는 몸짓인가요.


  얼핏 듣는 소리는 같을는지 몰라도, 소릿값만 같을 뿐 마음빛은 달라요. 글로 옮기는 소리마디는 같아 보일는지 몰라도, 글씨만 같을 뿐 마음차림은 다르지요.



눈에 보이는 리액션이 똑같으면 왠지 안심이 돼. 이 사회에서 어른으로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것 같아. 그러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싶다. (30쪽)


설령 결과적으로 어지럽힌 것이 될지라도, 평소의 사소한 행동이 이렇게나 그 사람의 인상을 좋게 만든다. 이러한 소소한 것들이 쌓여, 좋은 세상을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10쪽)



  어버이나 어른 자리에 있는 분들이 그리 살갑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때에 어린이나 푸름이는 어떻게 마주하면 즐거울까요? ‘즐거울까?’라는 대목을 헤아려 봐요. 똑같이 받아치는 싸움판이 아닌, 누가 더 낫거나 뛰어나다는 다툼판이 아닌, 서로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는 즐거운 놀이판을 헤아리면 좋겠어요.


  눈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까요? 비오는 소리에 발장단을 맞추어 춤을 추어 볼까요? 꽃이 지는 소리에, 또 꽃이 피는 소리에, 잎이 지는 소리에, 또 잎이 돋는 소리에, 하나하나 우리 마음을 바람에 실어서 띄워 볼까요?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수다잔치가 벌어집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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