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민들레 곁에 어떤 들꽃이? (2019.12.23.)

― 경북 포항 〈민들레글방〉

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길 6번길 38, 1층

https://www.instagram.com/dandelionbookshop



  마을책집이 태어나서 뿌리내리는 자리는 사뭇 다릅니다. 마을사람이 찾아가는 곳이기에 마을책집이면서, 둘레 여러 고장에서 찾아갈 수 있기에 마을책집입니다. 책집은 숱한 마을가게하고 참 다릅니다. 여느 마을가게라면 마을사람이 드나드는 쉼터이자 이웃일 텐데, 이 가운데 책집만큼은 나라 곳곳에서 일부러 찾아가는 쉼터이자 이웃이 되어요.


  포항 효자동에 2014년에 둥지를 튼 〈달팽이책방(달팽이 books & tea)〉이 있습니다. 마을책집 한 곳은 조용하던 효자역 둘레를 찬찬히 바꾸어 냈다고 느낍니다. 책집 하나가 들어서기 앞서도 마을은 있고 사람들이 오갑니다. 그런데 책집 하나가 들어선 다음부터 ‘오가는 발길이 마을에 머무는 틈’이 길어지고 늘어납니다. 이러면서 이웃이 다른 마을가게가 들어서는 틈까지 넓어져요.


  2019년에 이르러 이 효자동 골목에 마을책집이 새로 태어납니다. 〈달팽이책방〉을 즐거이 드나들던 분이 한 땀씩 엮는 손길로 〈민들레글방〉을 엽니다. 달팽이 곁에 민들레입니다. 민들레 옆에 달팽이입니다.


  포항 버스나루에 내려서 시내버스를 타고 찾아갑니다. 전남 고흥에서 경북 포항으로 달리자면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갈아타며 일곱 시간쯤 걸립니다. 버스나루 앞에 길알림터에서 효자역 둘레로 가는 시내버스를 어디서 타느냐고 물어봅니다. 길알림터 일꾼은 어디를 가느냐고 되묻고, 그곳에 있는 ‘달팽이책방’에 가는 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민들레글방’을 말할까 하다가, 아직 모르실 수 있지 싶어 이웃 책집 이름을 들었습니다. 길알림터 일꾼은 109번 시내버스를 타라고 말합니다. ‘효자 건널목’에서 내리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시내버스 타는곳에 와서 버스길을 살피니 100번 버스도 그쪽으로 갑니다. 시내버스에 오른 다음 버스일꾼한테 또 물어보았어요. 그러니 버스일꾼은 ‘효자 건널목’까지 가지 말고 ‘SK 1차’에서 내리면 된다고 알려줍니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며 “고맙습니다” 하고 절을 합니다. 아무래도 길알림터 일꾼이 모든 길을 다 알지는 않겠지요. 아마 요새는 시내버스를 안 타고 자가용으로 다녀 버릇하면서 길을 모를 수 있을 테고요.


  포항에 세 해 만에 오느라 골목을 살짝 헤매 이곳저곳 돌고돕니다. 좀 헤매느라 엉뚱한 골목을 다 누벼야 했는데, 이렇게 누비면서 효자동이라는 터를 한결 넓게 읽을 수 있습니다. 바쁜걸음이어야 하지 않으니 나무를 바라보고 하늘빛을 올려다보고, 다리를 쉬다가, 다시 걷고 한 끝에 〈달팽이책방〉을 찾았고, 월요일은 쉰다는 알림글을 뒤늦게 알아봅니다. 다시 골목을 이리 누비고 저리 걷다가 〈민들레글방〉을 찾습니다. 책집 곁에 빈집이 있습니다. 책집 앞에서 기다리다가 빈집을 가만히 돌아봅니다. 비록 빈집이어도 마루나 문살이 모두 멀쩡합니다. 더구나 꽤 오랜 이야기가 묻은 빈집이로군요. 이 빈집 겉을 손질해 놓으면 멋진 자리로 바뀌겠네 싶습니다.


  포항 〈달팽이책방〉은 어른 인문책이 바탕이 되면서 찻내음이 향긋한 마을쉼터라면, 〈민들레글방〉은 어린이책하고 그림책을 한복판에 놓으면서 아이들 목소리가 웅성거리는 마을놀이터이겠네 싶습니다. 결이 다르면서 맞물리는 책집이 골목을 사이에 두고 있으니 이곳은 무척 살 만한 데로 피어나겠다고 느낍니다.


  여러 그림책을 구경하다가 《굴렁쇠랑 새총이랑 신명나는 옛날 놀이》(햇살과 나무꾼 글·정지윤 그림, 해와나무, 2017)를 고릅니다. 동화책 《미운 멸치와 일기장의 비밀》(최은영 글·양상용 그림, 개암나무, 2014)도 고릅니다. 멸치 이야기를 다루네 싶은 동화책인데 이름에 붙은 “미운 멸치”란 말이 영 걸렸는데, 뭔가 줄거리를 짜려고 억지를 부린 티가 많이 납니다. 요새는 동화책도 마치 아침연속극처럼 싸움판을 줄거리로 엮는구나 싶어 쓸쓸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고는 동화를 쓸 수 없을까요?


  동화가 아름답게 이야기를 여며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러나 구태여 어른들이 하듯 싸움박질이나 미움질이나 투정질을 바탕으로 줄거리를 짜야 하는지 아리송합니다. 굳이 그래야 할까요?


  들판에서 피고 지는 들꽃은 싸우지도 다투지도 않아요. 잘 모르는 이들은 으레 ‘들꽃도 서로 경쟁한다’고 말합니다만, 제가 보기로는 들꽃 가운데 어느 아이도 겨루거나 다투지 않아요. 서로 뿌리를 맞잡으면서 저마다 다른 때에 저마다 알맞게 싹을 틔우고 줄기를 올려요. 들꽃은 어우러지면서 핍니다. 홀로 피지 않습니다. 민들레 곁에 냉이가 있고, 냉이 곁에 꽃다지가 있고, 꽃다지 곁에 코딱지나물이 있고, 코딱지나물 곁에 곰밤부리가 있고, 곰밤부리 곁에 봄까지꽃이 있고, 봄까지꽃 옆에 갈퀴덩굴이 있고, 갈퀴덩굴 곁에 달걀꽃이 있고, 달걀꽃 곁에 쑥이 있고, 쑥 곁에 달래가 있고, 달래 곁에 돌나물이 있고, 돌나물 곁에 도깨비바늘이 있고, 도깨비바늘 곁에 소리쟁이가 있고 …….


  두툼한 그림책 《염소 시즈카》(다시마 세이조/고향옥 옮김, 보림, 2010)가 듬직해 보여서 한참 뒤적이다가 골라듭니다. 여러모로 알찬 그림책이기는 한데, 출판사에서 무게나 값을 낮추면 한결 나았지 싶어요. 책값이 비싸다는 뜻이 아니라, 이 그림책을 알아볼 이웃을 덜 헤아렸다는 뜻입니다. 얼마든지 단출하면서 고운 결로 꾸밀 수 있거든요.


  책집 곁에 김밥집이 있습니다. 김밥집 곁에 빨래집이 있습니다. 빨래집 곁에 찻집이 있습니다. 찻집 곁에 술집도 밥집도 있습니다. 술집이나 밥집 곁에 오랜 저잣거리가 동그마니 있습니다. 이 여러 가게를 둘러싸고서 살림집이 있습니다. 모두 고루고루 햇볕을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온누리를 밝히는 도란도란 수다꽃을 주고받습니다. 몇 해쯤 뒤에 포항 효자동 책집골목에 만화책을 다루는 작은 쉼터도 태어날 수 있으려나 하고 꿈꿉니다. 만화책도 사진책도 좋고 시집도 좋겠지요. 마을길을 환하게 보듬는 빛살이 저 쪽빛바다에서 불어오다가, 저 멧골숲에서 불어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한국말사전을 쓰고 “사전 짓는 책숲(사전 짓는 서재도서관)”을 꾸리는 숲노래(최종규). 1992년부터 이 길을 걸었고, 2019년까지 쓴 책으로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