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의 그림자 철학하는 아이 14
크리스티앙 브뤼엘 지음,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 이마주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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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책읽기 

- 또래 아닌 ‘마음동무’를 바라는 아이들



《줄리의 그림자》

 크리스티앙 브뤼엘 글

 안 보즐렉 그림

 박재연 옮김

 이마주

 2019.7.15.



“말 좀 해 봐. 도대체 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책을 읽니?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굴 수는 없어?”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요, 엄마. 나는 줄리라고요!” (5쪽)



  장갑이 마음에 들면 안 추운 곳에서도 장갑을 끼고서 책을 읽습니다. 좋아하는 인형이 있으면 곁에 인형을 앉혀서 같이 책을 읽습니다. 바지가 좋으니 바지를 꿰고, 치마가 좋으니 치마를 두릅니다. 꽃이 좋아 꽃을 보며, 자동차가 좋아 자동차를 봅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같아요. 아이도 어른도 스스로 마음에 드는 길을 가고, 좋아하는 일을 찾으며, 반가운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른 자리에 서면 으레 아이를 쳐다보다가 따지지요. “넌 왜 그렇게 하니?” 하면서.



줄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어요. 그걸 고양이에게만 살짝 털어놓지요. 둘은 엄마 아빠가 싫어하는 재미난 놀이를 몰래 즐겨요. 그래도 줄리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어 한답니다. (7쪽)



  사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났으니 사내스러워야 한다고, 가시내라는 몸을 입고 태어난 만큼 가시내스러워야 한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내스러움이나 가시내스러움은 누가 틀을 세울까요. 아이 스스로 세울까요, 아니면 나라나 마을이나 다른 사람들이 세울까요.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크리스티앙 브뤼엘·안 보즐렉/박재연 옮김, 이마주, 2019)는 줄리라는 아이가 맞닥뜨려야 하는 ‘하나도 마음에 안 드는데 모조리 어른 말을 따라서 해야 하느라 마음이 엉키고 힘들며 지친 모습’을 하나하나 보여줍니다. 언제나 재미나게 노래하고 수다쟁이에 마음껏 뛰놀던 아이가 어느 때부터인가 시커먼 구름을 껴안더니, 이 기운을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이때에 아이 둘레에 있는 어른은 ‘아이가 떠안고 만 시커먼 기운’을 알아차리지 못해요. 아이를 돕지 못합니다. 더구나 ‘아이가 이제 얌전해졌다’면서 반기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답지 않게 머리를 빗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보다 더 얌전하게 앉아 있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사람들은 줄리가 줄리만큼 떠들지 않을 때만 줄리를 사랑해 줘요. 이제 줄리는 자기가 누구를 닮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거울조차도 줄리를 못 알아봐요.  (25쪽)



  온누리 모든 아이는 얌전하거나 조용히 있으려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우는 아기를 억지로 울지 말라 할 수 없습니다. 어른처럼 또박또박 말을 할 수 있는 몸이 아닌, 아직 ‘어른처럼 하는 말’을 하나도 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났으니, 울거나 웃는 낯빛으로 마음을 드러내요. 게다가 무엇이든 낯설거나 새로우니, 무엇이든 만지고 싶고 해보고 싶어요. 뒤집기도 못하던 몸으로 기다가 서다가 걷는 기쁨에 날마다 무럭무럭 크는 재미를 누리려고 신나게 뛰거나 달리는 아이입니다.


  이런 아이더러 ‘조용하’라고, ‘얌전하’라고, ‘뛰지 말’라고 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아이가 실컷 노래하고 떠들고 뛰놀 자리를 넉넉하면서 느긋이 마련해 주고 나서야, “자, 이제 차분히 뭘 하나 배울까?” 하고 물어야 앞뒤가 맞지 싶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모름지기 마음껏 뛰놀거나 구르거나 까르르거리면서 스스로 배우기 마련입니다.



“나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여기 와서 울어. 이곳에는 나를 놀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거든. 다들 내가 여자아이처럼 운대. 생긴 것도 여자아이 같고. 근데 네 삽 말이야. 땅을 파기에는 좀 작은 거 같은데!” (38쪽)



  그림책 《줄리의 그림자》에 나오는 줄리는 시커먼 기운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다스릴 길이 있을까요?


  갑갑한 아이는 어느 날 문득 집 바깥을 헤맵니다. 이때에 줄리 못지않게 시커먼 기운이 휩싸여서 괴로운 또래를 만납니다. 줄리는 가시내라는 몸 때문에 괴롭다면, 또래는 사내라는 몸 때문에 괴롭습니다. 둘은 마음이 맞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난 셈입니다.


  흔히 말하기를, 아이한테 또래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만, 아이뿐 아니라 어른한테도 마찬가지라고 느껴요. 아이나 어른한테는 ‘나이가 비슷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맞는 사람’이 곁에 있어야지 싶습니다.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한곳에 우르르 몰아넣는 자리가 아닌, 서로 아끼거나 돌볼 줄 아는 따스한 마음이 흐르는 사이가 되어서 어우러지고 놀고 일하는 터전이 되어야지 싶어요.


  마음이 맞지 않기에, 아니 마음을 읽으려 하지 않기에, 시커먼 기운이 자랍니다. 마음이 맞기에, 아니 마음을 읽으면서 즐거이 어우러지려고 하기에, 우리 곁에 밝으면서 맑은 기운이 샘솟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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