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무슨 책을 읽을까 (2019.6.8.) 

― 인천 배다리 〈삼성서림〉

인천 동구 금곡로 9-1

032.762.1424.



  책을 놓고서 언제나 한 가지입니다. 무슨 책을 읽을까입니다. 그러나 무슨 책을 읽을까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무슨 책을 읽어 무슨 생각을 할는지, 또 무슨 삶으로 나아가려는 몸짓이 될는지, 또 무슨 슬기를 스스로 길어올려 무슨 사랑이 되도록 스스로 일어서려는 하루가 될는지로 차근차근 잇습니다.


  눈에 뜨이는 책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널리 알려지거나 많이 읽히는 책을 우리도 손에 쥘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눈에는 뜨이되 속이 비었다면? 널리 알려졌으나 알맹이가 허술하다면? 많이 읽힌다지만 숲을 노래하는 사랑이 하나도 없다면?


  고등학교를 다니며 〈삼성서림〉을 처음 만나던 때부터 느꼈는데, 이곳에는 예전이나 요즘이나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이 한켠에 곱상히 있습니다. 한창 읽히는 그림책도 있고, 제법 묵은 그림책도 있습니다. 어떤 그림책이든 반갑게 들여다보면서 살살 쓰다듬습니다. 1980년대 첫머리에 ‘백제’ 출판사에서 꾸러미로 낸 그림책이 ‘문선사’로 옮겨서 다시 나온 적 있어요. 헌책집에서 이 그림책을 만날 적마다 얼마나 새삼스러운지 몰라요. 《암소 브코트라》(프링거 요한네슨/김훈 옮김, 문선사, 1984)를 펼칩니다. 투박하면서 살가운 그림결입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문화수준은 당시의 유럽 제민족 사이에서 아주 높았고, 건국 수백년의 12세기 후반부터는 자기 국어를 사용하는 대학이 세워졌는데, 그것은 유럽 문화사상 하나의 빛나는 금자탑이었던 것입니다. (그림책 풀이글)


  이 그림책 곁에 《작은 동물 세 마리》(마가릿 와이즈 브라운/양평 옮김, 문선사, 1984)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도 투박하면서 살갑습니다. 그래요, 이렇게 이야기로 꽃을 피우니 아름다이 그림책이지 싶습니다. 이러한 그림책은 아기부터 할머니까지 나란히 둘러앉아 읽을 만합니다.


  옛이야기 숨결이 그림책에서 새롭게 흐른다고 할 만합니다. 옛날 옛적부터 온 집안이 조그마한 칸에 둘러앉아서 이야기밥을 먹었어요. 그림책이란 이야기밥 같다고 느껴요. 요즘은 너무 어른스러운 그림책이 많은 듯합니다. 아무래도 어른으로서 서울살이가 팍팍하거나 고단한 나머지 빈자리가 넉넉한 그림책으로 마음을 달래려 하네 싶은데, 팍팍하거나 고단한 나날을 어른스러운 줄거리나 흐름으로만 담기보다는, 앞으로 새롭게 가꾸고 싶은 꿈까지 헤아리면서 아이들한테 빛이라는 씨앗을 심도록 더 다스린다면 좋겠어요.


  그림책 《암소 브코트라》나 《작은 동물 세 마리》가 왜 아름다울 뿐 아니라 두고두고 읽힐 만할까요? 아주 투박하게 이야기를 엮거든요. 아주 투박한 이야기를 듣고 들려주면서 어느새 즐거운 기운이 솟거든요.


  조그마한 《밤과 낮 사이의 기나긴 독백》(L.린저/홍경호 옮김, 삼중당, 1975)을 눈여겨보다가 《니진스키의 고백》(바슬라브 니진스키/이덕희 옮김, 문예출판사, 1975)이란 책을 슬쩍 집어드는데, 책 귀퉁이에 ‘책은 만인의 것, 부광서림, 부산대 신정문 앞, T96-4030, 항상 감사합니다’라 적힌 팔림띠가 있습니다. 아. 1970년대 끝자락에 부산 한켠에 있던 책집에 꽂혔다가 ‘팔리지 못한’ 채 어느 창고에 묵혔던 책이 곳곳을 돌고 돌아서 인천까지 온 셈입니다.


  팔리지 못한 책은 반품이란 길을 지나서 으레 종이쓰레기터(폐지처리장)로 갑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종이로 다시 태어나는 길을 가기도 할 테고, 그곳에 갔다가 고마운 손길을 타고서 새로 숨을 더 잇는 길을 가기도 합니다. 헌책집이란 책에 새숨을 불어넣어서 ‘넌 아직 더 읽을 값이 있단다’ 하고 속삭이는 살림터라고 느껴요. ‘넌 앞으로 더 빛날 수 있단다’ 하고 귀띔하는 보금자리이기도 하겠지요.


  무슨 책을 읽으면 즐거울까요? 빛나는 책을 읽으면 즐겁겠지요. 무슨 책을 읽으며 마음이 빛날까요? 사랑을 꿈꾸는 슬기로운 사람들 살림살이를 숲바람으로 노래하는 책을 읽기에 우리 마음이 빛나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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