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

숲노래 우리말꽃 : ‘전쟁’하고 ‘평화’는 무엇일까요



[물어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또 우리가 사는 나라에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아요. 그래서 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끊이지 않는 전쟁하고, 바라고 싶은 평화를 생각하다가, ‘전쟁’하고 ‘평화’를 사전에서 풀이한다면 어떻게 다루시려는지 궁금해요. 새 뜻풀이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이야기합니다]

  말은 언제나 우리 삶을 드러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고스란히 말로 나타나요. 우리가 서로 사이좋게 지낸다면 말 그대로 ‘사이좋다’라 합니다. 우리가 서로 다투거나 싸운다면 이 말처럼 ‘다투다’나 ‘싸우다’로 나타나겠지요. 스스로 하지 않는 일이라면 스스로 말하지 못해요. 이웃을 돕지 않는 사람한테는 ‘이웃돕기’나 ‘이웃사랑’이란 말이 마음이나 머리에 남거나 맴돌 수 없습니다. 이웃을 미워하지 않고 시샘하지 않으며 따돌리지 않는다면 ‘미움’이나 ‘시샘’이나 ‘따돌림’이란 말을 모르면서 즐겁고 사랑스레 살아가지 싶어요.


  잘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하고 아버지가 저를 쳐다보면서 들려주는 말을 받아들이고서 따라해요. 갓난쟁이에서 두 살이나 네 살을 지나도록 아이 입에서는 거친 말이나 막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아이를 바라보며 거친 말이나 막말을 누가 하겠어요? 그러나 어린이가 거친 말이나 막말을 한다면, 또 푸름이가 거친 말이나 막말을 한다면, 어린이나 푸름이는 누구한테서 거친 말이나 막말을 듣거나 배웠을까요?


  처음부터 거친 말이나 막말을 머리에 담고서 태어난 사람은 없습니다. 열 살이 되니까 갑자기 거친 말을 쓰지 않아요. 열다섯 살이 되었으니 하루아침에 막말을 늘어놓지 않습니다. 우리 삶터, 바로 사회가 거칠기에 어른들이 거친 말을 써요. 우리 삶자락, 바로 사회이며 정치이며 문화에 아름답지 못한 일이 자꾸 불거지니 막말이 흐릅니다.


[표준국어대사전]

전쟁(戰爭) : 1. 국가와 국가, 또는 교전(交戰) 단체 사이에 무력을 사용하여 싸움 ≒ 군려·병과 2. 극심한 경쟁이나 혼란 또는 어떤 문제에 대한 아주 적극적인 대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평화(平和) : 1. 평온하고 화목함 2.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함


  국립국어원 사전에서 ‘전쟁·평화’ 두 가지를 찾아봅니다. 뜻풀이를 읽어 보니 좀 모자라지 싶습니다. 어딘가 풀이를 하다 만 느낌 아닌가요? 우리 삶터나 지구라는 별 테두리에서 일어나거나 마주할 만한 ‘전쟁·평화’ 이야기가 두 마디 뜻풀이에 제대로 스몄을까요?


  총칼을 손에 쥐고서 싸울 적에도 전쟁이라 합니다. 사전은 ‘전쟁 = 싸움’으로 풀이합니다. 모질게 겨루어야(경쟁) 하는 일도 전쟁으로 다룹니다. 아무래도 푸름이 누구나 맞닥뜨리는 ‘입시전쟁’이 있고, 대학교를 마친 뒤에도 ‘취업전쟁’이 있다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어른이 되어 사랑하는 짝을 만나서 기쁨이란 열매로 아이를 낳은 뒤에는 ‘육아전쟁’도 있다고 합니다.


  아, 우리는 이렇게 전쟁을 벌여야 할까 궁금합니다.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즐겁고 아름답게 다니면 안 되는지 궁금해요. 대학교에서 일자리를 놓고서 겨루거나 다투거나 싸우지 말고, 서로 슬기롭게 새로운 일거리를 지어서 어깨동무하는 길을 열면 안 되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는 틀림없이 사랑으로 낳을 텐데, 아이를 돌보는 살림도 전쟁처럼 싸움으로, 치고받으면서, 툭탁거리면서, 아웅다웅 힘들게 해야 할까 궁금해요. 우리는 어쩌면 전쟁이란 낱말을 아무렇게나 쓰면서 우리 삶을 스스로 힘든 수렁으로 내모는 셈 아닌가 싶기도 해요.


  이런 흐름이라면 말만 곱게 바꿀 수 없다고 느껴요. ‘입시싸움·입시겨룸’이나 ‘취업싸움·취업겨룸’이나 ‘육아싸움·육아겨룸’처럼, 낱말을 바꾼들 바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숲노래 사전]

전쟁 : → 싸움(싸우다). 서로 알고 싶지 않고, 사귀려는 마음이 없어, 부짖히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일·길·짓

평화 : → 사이좋다. 어깨동무.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제가 쓰는 사전에는 ‘전쟁·평화’를 이렇게 다루려고 생각합니다. 한자말을 한국말로 바꾼다기보다는, 두 마디에 흐르는 기운을 깊이 짚고서 이를 풀어내는 길을 이야기해야겠다고 여깁니다. 생각해 봐요. 서로 알고 싶은 사이인데 싸울 일이 있을까요? 서로 즐겁게 만나면서 어울리는 사이에서 싸울까요? 서로 반가이 만나고 사랑으로 돌보는 길에 어떤 기운이 흐를까요?


  오늘날 나라 곳곳에 워낙 ‘전쟁·평화’라는 말마디가 넓게 흐르거나 퍼지기에 열 살 어린이조차 이 한자말이 익숙합니다. 그렇지만 깊은 속내까지 알거나 짚기는 만만하지 않아요. 두 말마디에 흐르는 속내부터 짚고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일까를 바로 말로 새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숲노래 사전]

싸우다 : 1. 힘·총칼·주먹·말글·군대 들을 앞세워서 오는 쪽을 받아들이거나 그쪽에 넘어가거나 쓰러지지 않으려고, 똑같이 힘·총칼·주먹·말글·군대 들로 그쪽을 마주하면서 쫓아내거나 없애려고 하다 (서로 알고 싶지 않고, 사귀려는 마음이 없어, 부짖히거나 괴롭히려고 하는 일·길·짓) 2. 어느 자리·판·마당·놀이·경기에서 어느 쪽이 낫거나 모자라는가를 놓고서 마주하다 (솜씨·재주가 누가 낫거나 좋거나 앞서는가를 알아보려고 마주하다) 3. 세거나 크거나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괴로운 일·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기운·힘을 내다 4. 세거나 크거나 어렵거나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괴롭더라도 이루거나 누리거나 얻거나 되거나 하려고 기운·힘을 쓰다

사이좋다 : 사이가 좋다. 서로 즐겁거나 따스하게 지내다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어깨동무 : 1. 서로 어깨에 팔을 얹거나 끼면서 나란히 있거나 서거나 걷거나 노는 일 2. 나이·키·마음·뜻이 비슷하거나 같아서 즐겁거나 부드럽게 어울리는 사이 3. 마음·뜻·일·길이 비슷하거나 같다고 여겨서 돕거나 돌보거나 아끼거나 어울리는 사이 (서로 알고 싶고, 사귀려는 마음이 있어, 즐겁거나 따뜻하거나 반갑거나 넉넉하게 만나고 함께하려는 일·길·짓)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고 싶지 않으니 싸웁니다. 기꺼이 받아들이거나 맞아들이기에 사이좋을 뿐 아니라 어깨동무를 합니다. 한자말 ‘평화’뿐 아니라 ‘연대·연합·협동·협력’ 같은 결을 바로 ‘사이좋다·어깨동무’가 담아냅니다. 어렴풋한 느낌이 아닌,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면서 알 수 있는 말을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듣고서 생각하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오늘 이곳에서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싸움 또는 전쟁)를 낱낱이 헤아리면서, 이대로 그냥 갈는지, 아니면 새롭게 가꾸는 길(사이좋다·어깨동무 또는 평화)로 가고 싶은가를 말 한 마디로 나눌 만하지 싶습니다.


  사전 뜻풀이는 뜻을 풀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풀다’는 “밝혀서 알도록 이끌다”만 가리키지 않아요. 엉킨 실타래를 더는 안 엉킨 환한 모습이 되도록 이끌기에 ‘풀다’라는 낱말을 씁니다. 뜻풀이라면, 사전 뜻풀이라면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겉모습을 밝히는 구실을 한 가지 하면서, 우리가 마음으로 헤아려서 속내를 스스로 깨닫고 가꾸도록 씨앗을 심고 북돋우는 구실을 하나 더 하는 일이라고 여겨요.


  짤막하게 이야기하고 마치지 않는 마음을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삶은 그저 낱말 몇 가지로만 슬쩍 건드린 뒤에 지나갈 수 없다는 뜻을 헤아려 주시면 좋겠어요. 그냥그냥 쓰는 말에는 그냥그냥 스치는 삶이 흘러요. 가만가만 짚고서 생각하는 말에는 어제하고 오늘을 이어서 모레로 나아가려는 새로운 생각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살림을 짓는 바탕이 생겨요. 푸름이 여러분 마음으로 스스로 물어봐 주셔요. 여러분은 어떤 말길하고 삶길하고 마음길을 걷고 싶나요? 전쟁이나 싸움인가요? 평화나 사이좋다나 어깨동무인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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