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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과 취향 - 철학의 현장에서 기록한 불화의 목소리
김영건 지음 / 최측의농간 / 2019년 9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인문책시렁 99
《변명과 취향》
김영건
최측의농간
2019.9.5.
우리가 원하는 것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며, 답답하고 추상적인 논리 풀이나 말장난도 아니다. (17쪽)
나는 우리의 철학을 공부하고 싶다. 나는 외국어가 주인이 되는 그런 철학이 아니라, 우리말로 된 철학을 하고 싶다. (23쪽)
이런 멋부리는 문장이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준다면 그것은 괜찮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종류의 문장은 우리 자유를 몽롱하고 멍청하게 만든다. (80쪽)
도道라는 한자어는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획득하는 데 반하여 도道의 우리말 표현인 ‘길’은 심오한 의미가 없는 사소한 일상어로서 낮게 취급된다. 그냥 ‘생각’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사고思考’라는 한자어로 표현한다. ‘나’라고 표현하면 될 것을 ‘자아自我’라고 표현한다. (189쪽)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학문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한다. (354쪽)
한국에서 가르치거나 배우는 역사를 살피면, 한국은 꽤 옛날부터 일본에 이것저것 이어주거나 물려주거나 알려주곤 했다고 합니다. 일본은 가장 가까이에 한국이 있는 터라 으레 한국한테서 얻거나 받거나 배우는 살림이었다고 해요. 요새야 비행기나 인터넷이 있으니 나라하고 나라 사이가 훨씬 가깝다지만, 예전에는 아니었겠지요. 그래서 일본은 옛날부터 한국말을 배우는 사람이 무척 많았고, 한국말을 일본말로 옮기는 일을 참으로 오랫동안 했답니다.
오늘날은 어떠할까요? 오늘날 일본은 한국 문학이나 문화나 과학을 얼마나 받아들이거나 배우는 길일까요? 어쩌면 오늘날 일본은 한국한테서 배우는 길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 않나요? 거꾸로 오늘날 한국은 거의 일본 것을 옮기거나 배우는 길이 되지 않았을까요?
책만 놓고 보아도 일본 문학책이며 그림책이며 만화책이며 인문책이며 과학책이며 …… 갖은 책을 엄청나게 한국말로 옮깁니다. 이제는 한국이 일본한테서 배우는 때라고 할까요? 밉거나 못된 짓을 많이 한 옆나라인 일본이라지만, 한국은 한국 나름대로 더 나아가거나 뻗는 길을 제대로 갈고닦지 못했다고 여겨야지 싶어요.
《변명과 취향》(김영건, 최측의농간, 2019)을 읽으며 ‘철학자가 늘 부대껴야 하는 근심걱정’을 낱낱이 읽습니다. 틀림없이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말’을 쓴다고 하지만, 무늬로만 한글이기 일쑤라지요. 요새는 한자말을 한자로 새까맣게 쓰는 사람이 없다시피 합니다. 한자말이건 영어이건 그냥 한글로 적습니다. 그런데 철학이란 자리에서 본다면 ‘무늬만 한글’로는 깊거나 넓게 파고들기 어려워요. 한자나 한문이나 영어나 라틴말은 바로 이 나라 한국이라는 터전에 뿌리를 내리고서 태어난 말이 아니니까요.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기에 철학을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자나 한문이나 영어는 한국에서 태어난 글이나 말이 아니란 뜻입니다. 우리는 ‘땅’이란 낱말을 종이에 적거나 마음에 띄우면서 이 말이 태어난 깊이하고 너비를 헤아릴 수 있어요. 그러나 ‘地’나 ‘earth·ground’ 같은 낱말을 코앞에 둘 적에는 이 한자나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그곳 사람들이 닦아 놓은 깊이하고 너비를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슬기를 가꾸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철학하는 글쓴님은 책이름 《변명과 취향》으로 여러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무래도 핑계(변명)를 댈밖에 없는 일이 많습니다. 여러모로 좋아하기(취향)에 따라 다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핑계를 대면서 그 길을 가고, 좋아한다면서 끊지 못한다지요.
더 돌아보면 ‘철학’이란 이름도 한국사람 스스로 지어서 쓰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생각·셈·슬기·헤아림·살핌·봄·여김’ 같은 낱말로 삶을 읽는 길을 안 찾으면서 그냥그냥 쓰는 한자말 이름입니다. ‘철학’ 같은 낱말은 깊거나 넓은 듯 여기면서도 막상 한국 철학자 가운데 ‘생각·셈·슬기·헤아림·살핌·봄·여김’이 어떻게 태어난 말이며, 이 말마다 서린 넋하고 숨결이 얼마나 깊거나 너른가를 따지거나 짚거나 찾아내거나 캐내거나 밝히거나 알아보는 사람은 없다시피 해요.
여기에서 살아가려고 생각을 합니다. 새롭게 키우려고 생각을 합니다. 사랑으로 살림을 짓고 싶기에 생각을 합니다. 이 생각길을 걷는 학자도, 수수한 이웃도, 이제는 우리 두 손으로 가꾸면서 빛내는 길로 접어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