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무형광 무표백 종이·휴지 : 글을 그렇게 써대느라 종이를 그렇게 써대고 살면서도 종이를 어떻게 빚는가를 제대로 살핀 지 얼마 안 된다. 곁님이 문득 이야기를 했기에 비로소 깨달았는데, 나한테 핀잔을 하더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책이며 글을 그렇게 껴안는 주제에 어떻게 연필 하나 종이 하나가 어떻게 태어나는가를 그렇게 안 쳐다볼 수 있었느냐고. 곰곰이 생각하니, 나 스스로도 놀라운 노릇이다. 어떻게 나는 종이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또 종이에 어떻게 형광물질이나 표백제를 비롯한 화학약품을 그렇게 써대는 줄 하나도 안 헤아렸을까? 아이가 태어나기 앞서 천기저귀를 살피며 이때에 이르러서야 형광물질하고 표백제가 우리를 곳곳에서 둘러싼 줄 알아챘다. 곁님이 덧붙이지 않아도 갸우뚱한 일이 있다. 여느 흰종이가 몽땅 형광물질하고 표백제 범벅이라면, 형광물질이며 표백제를 안 쓴 누런종이(크라프트지 또는 똥종이 또는 갱지)가 값이 눅어야 할 텐데, 오히려 누런종이가 흰종이보다 비싸다. 흰종이는 값이 싸다. 우리는 더 값이 싸고 ‘하얘서 보기 좋다’는 말에 휘둘린 채, 어느새 ‘숲에서 살던 나무하고 가까운 숨결’인 누런종이하고 멀어진 오늘이 되었구나 싶다. 2007.5.19.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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