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살림말


맑은 샘물 : 밥을 골고루 안 먹거나 못 먹어서 영양실조에 걸릴까? 어쩌면 그렇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런데 숲에서 자라는 나무를 보자. 숲은 빗물하고 바람하고 햇볕으로 살아간다. 숲을 이룬 흙은 가랑잎이 바뀐 몸이요, 나뭇가지가 바뀐 몸이다. 때로는 숲짐승이나 숲벌레나 숲새가 바뀐 몸인 흙도 있으나, 거의 모든 흙은 바로 풀이랑 나무가 바뀐 몸이라 할 만하다. 자, 풀하고 나무는 빗물하고 바람하고 햇볕‘만’ 먹기에 영양실조에 걸릴까? 이 세 가지를 먹는 갖은 풀하고 나무가 맺는 씨앗이나 열매가 허술할까? 똑같은 빗물하고 바람하고 햇볕‘만’ 먹는 푸나무이지만, 이 푸나무는 저마다 다른 맛난 열매를 사람이며 숲짐승이며 숲벌레이며 숲새한테 베푼다. 우리는 이 대목을 궁금히 여겨야지 싶다. 왜 능금하고 배하고 복숭아하고 앵두하고 살구하고 숱한 열매가 다 달리 맺을까? 왜 잣하고 호두하고 밤하고 도토리하고 갖은 열매가 다 다르게 열릴까? 이 수수께끼를 풀려고 마음을 기울인다면, 우리가 ‘영양소를 골고루’라고 하는 덫에 갇힌 채, 정작 맑은 샘물은 안 마시거나 맑은 바람은 안 먹거나 맑은 햇볕은 안 받아들이는 삶인 줄 알아챌 수 있다. 하루 가운데 얼마쯤 맑은 빗물에 바람에 햇볕에 우리 몸을 내맡길까? 우리는 샘물 아닌 수돗물하고 페트병에 가둔 물에 길든 철없는 몸이 아닐까? 2019.10.10.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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