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꽃 : 촉각, 안테나, 더듬이



[물어봅니다]

  선생님은 ‘안테나’란 말을 안 쓰시고 ‘더듬이’라고 쓰시던데, 안테나하고 더듬이는 좀 다르지 않을까요? 안테나는 그냥 ‘안테나’라고 쓰는 쪽이 더 나을 듯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궁금한 생각이 들 적에는 사전을 먼저 펴 보셔요. 저도 사전에 나온 뜻풀이부터 옮길게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뜻풀이입니다.


더듬이 :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안테나·촉각

촉각(觸角) : 1.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더듬이 2. [생명] 주위에서 일어나는 각종 변화를 감지하는 능력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안테나(antenna) : 1. [동물] 절지동물의 머리 부분에 있는 감각 기관. 후각, 촉각 따위를 맡아보고 먹이를 찾고 적을 막는 역할을 한다 = 더듬이 2. [물리] 공중에 세워서 다른 곳에 전파를 내보내거나 다른 곳의 전파를 받아들이는, 도선(導線)으로 된 장치. 무선 전신, 무선 전화, 라디오, 텔레비전 따위에 쓴다 ≒ 공중선


  ‘더듬이·촉각·안테나’ 세 낱말을 찾아봤어요. 자, ‘동물’이란 앞머리를 붙인 뜻풀이는 모두 같아요.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먼먼 옛날부터 ‘더듬이’라 했고, 한자를 쓰는 이웃나라에서는 한자말 ‘촉각’이라 했고, 영어를 쓰는 이웃나라에서는 영어 ‘안테나’를 썼다는 뜻이에요. 나라마다 쓰는 말이 다르니, 똑같은 무엇을 바라보며 나타내는 말씨도 이처럼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를 눈여겨보면 좋겠어요. 한국말 ‘더듬이’는 한 가지로만 뜻풀이를 하고 그칩니다. 한자말 ‘촉각’은 “감지 능력”을 나타내는 자리로 쓰임새를 넓히고, 영어 ‘안테나’는 “전파 송수신 장치”를 나타내는 자리로 쓰임새를 넓히네요.


  생각해 봐요. “무엇을 느끼는 힘”을 가리킬 자리에 한국말 ‘더듬이’를 얼마든지 쓸 수 있어요. “전파를 보내거나 받는 틀”을 가리킬 자리에 한국말 ‘더듬이’도 즐겁게 쓸 만해요. 한자를 쓰는 이웃나라는 그 나라 수수한 말에 새 쓰임새를 보태었고, 영어를 쓰는 이웃나라도 그 나라 수수한 말에 새롭게 쓰임새를 덧붙였습니다.


  한국에서는 왜 오랜 한국말을 오랜 쓰임새 하나로 그치게 하고, 새로운 쓰임새를 보태거나 덧붙이지 않을까요? 한국사람은 왜 한국말을 새롭게 살려서 쓰는 길을 생각하지 않을까요? 영어 ‘안테나’는 처음부터 “전파 송수신 장치”를 가리키는 이름이 아니라는 대목을 읽으면 좋겠어요. 수수하게 쓰던 영어에 새롭게 쓸 길을 밝힌 마음을 잘 읽으면 좋겠습니다.


  생물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리에서 쓰는 이름이라면 어린이나 푸름이가 아닌 어른이 짓거나 붙입니다. 그렇지요? 푸른 벗님도 생각해 보셔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푸른 벗님이 “감지 능력”이나 “전파 송수신 장치”를 가리킬 새로운 이름을 오래된 수수한 말에서 찾으려 한다면 한국말에서 찾겠지요. 그러나 학문을 하는 어른들은 그만 외국말로 학문을 하던 버릇에서 못 벗어나면서, 어른한테 익숙한 외국말을 그냥 쓰고 말아요. 누구보다 어른이 앞장서서 한국말로 새말을 짓거나 새로운 쓰임새를 넓혀 줄 노릇이지만, 막상 한국에서는 어른이 수수한 한국말을 싱그러이 가꾸는 일을 잘 해내지 않았어요.


  익숙한 말씨를 그냥 쓰는 모습이란, 길든 버릇을 그대로 잇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더 좋은 말 쓰기’가 아닌 ‘마치 쇠사슬처럼 길든 버릇을 풀어내어 홀가분하면서 새롭게 생각을 살리기’를 할 줄 아는 마음이 되기를 바라요.


  비슷한 얼거리로 ‘길잡이·안내인·가이드’가 있어요. 한국말하고 한자말하고 영어입니다. 셋은 모두 같은 사람을 나타내지만, 정작 한국말로 일자리를 나타내지 않고 으레 한자말이나 영어를 앞장세우곤 해요. ‘채식’을 하거나 ‘비건’이라고 밝히는 사람이 늘지만, 정작 ‘풀사랑’이나 ‘풀밥먹기’처럼 한국말로 수수하게 살림길을 밝히는 사람은 잘 안 보여요.


  삶을 새롭게 가꾸는 길에 생각부터 새롭게 추스르기를 바라요. 우리 곁에 있는 수수한 말이 새롭게 빛나도록 슬기롭게 마음을 기울일 줄 안다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새로 쓰는 우리말 꾸러미 사전》,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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