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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시작한 열일곱 - 후지미 고등학교 양봉부 이야기
모리야마 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상추쌈 / 2018년 8월
평점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시렁 152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
모리야마 아미
정영희 옮김
상추쌈
2018.8.18.
눈을 감기고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하고, 두 팔을 크게 펼쳐 보기도 합니다. 꽃냄새, 뺨을 간질이는 바람, 물이 흐르는 소리. “아! 여기라면 살아 보고 싶어.” 부원들은 저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장소를 찾아 자기가 만든 벌통을 놓았습니다. (55쪽)
30분 정도 지나자 그릇에 꿀이 잔뜩 모입니다. 손가락으로 먹어 봅니다. “달콤하다.”는 말과 더불어 “따뜻해!”라는 탄성이 터져나옵니다. (92쪽)
일본에는 372개에 이르는 농업계 고등학교가 있습니다. 그 학교들에서 9만 명의 학생이 농업에 얽힌 것들을 배우고 있지요. (151쪽)
우리가 사는 동네에 어떤 꽃이 피고 지는지 알고 있을까요? 양봉부원들은 길거리에 피어 있는 꽃을 관찰하고 꿀벌이 어떤 꽃을 찾는지 살피며 천천히 거니는 것을 ‘벌꿀 산책’이라고 불렀습니다. (225쪽)
한국에는 농업 고등학교가 몇 곳이 있을까요? 농업 중학교나 농업 초등학교는 있을까요? 오늘날 한국은 농업을 다루는 고등학교가 몇 곳쯤 남았을까요? 홍성, 청주, 충주, 홍천, 여주, 이렇게 다섯 곳쯤은 ‘농고’란 이름을 씁니다. ‘생명과학고’란 이름으로 고친 곳이 여럿 있습니다. 그러나 다 더해도 열 곳이나마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이란 이름인 고장에서 마을 어린이가 마을 푸름이로 자랄 즈음 ‘농업을 익히며 펴는 길’보다는 ‘도시 노동자나 회사원’이 되도록 하는 길을 가르치려 합니다.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모리야마 아미/정영희 옮김, 상추쌈, 2018)이란 책을 읽으며 놀란 대목은 ‘372곳에 이르는 농업 고등학교’ 이야기를 적은 한 줄입니다. 9만이란 숫자는 일본에 사는 사람을 대면 매우 작다고 할 테지만, 이 작은 숫자를 줄이지 않으면서 땅이며 들이며 숲을 건사하는 길을 익히거나 나눌 수 있구나 싶어요. 비록 일본 우두머리는 핵발전소에서 쌓인 방사능 쓰레기를 바다에 함부로 버리는 짓을 하려 들지만 말이지요.
열일곱 푸름이는 고등학생으로서 일본 꿀벌을 돌보면서 손수 꿀을 얻는 길을 익히려 합니다. 열일곱 푸름이를 지켜는 열넷이나 열다섯 푸름이는 ‘나도 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꿀벌 동아리에 들어가서 언니들하고 꿀벌을 아끼는 길을 배워야지’ 하고 다짐한답니다.
줄거리만 살핀다면 《꿀벌과 시작한 열일곱》은 대수롭지 않습니다. 꿀벌 동아리를 연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마치기 앞서 동생들한테 동아리를 물려주고, 동생들은 어느덧 언니가 되어 새로운 동생을 맞이하는데, 저마다 다른 고비를 맞닥뜨리고 보람을 누리면서 ‘벌 한 마리가 마을이며 숲을 지키는 살림’을 온몸하고 온마음으로 느낀다고 해요. 이 단출한 줄거리를 책 한 자락으로 담을 뿐입니다.
한국에서 푸름이는 무엇을 바라볼까요? 시골이란 고장에서 학교를 다니는 푸름이는 제 고장하고 얽힌 어떤 흙살림이나 들살림이나 바다살림이나 숲살림을 배우고 익혀서 제 고장을 새롭게 사랑하는 길을 닦을 만할까요?
꿀벌하고 여는 열일곱처럼, 갑오징어하고 여는 열일곱을, 고사리랑 여는 열일곱을, 염소하고 여는 열일곱을, 돼지이며 닭하고 여는 열일곱을, 보리이며 밀하고 여는 열일곱을, 들꽃이며 무화과하고 여는 열일곱을, 갖가지 다른 열일곱을 온나라 작은 고장 작은 배움터에서 이제라도 처음부터 다시 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하고 똑같은 교과서만 쓰는 시골 초·중·고등학교가 아니라, 시골에 남다르게 짙푸른 숲이며 바다이며 들을 고이 품는 ‘싱그러운 길잡이’를 푸름이가 즐겁게 맞아들이도록 이끌기를 바라요.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