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책을 읽으라는 말 (2015.11.23.)

― 서울 낙성대역 〈흙서점〉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1916

02.884.8454.



  나라 곳곳에서 “책을 읽자”는 말은 넘칩니다. 다만 “어떤 책을 읽으며 어떤 사람이 되자”는 말은 좀처럼 안 나오지 싶습니다. “어떤 책을 어떤 책집에서 어떻게 살펴서 어떻게 읽어, 어떤 삶으로 어떻게 거듭나는 어떤 사랑이 되어 어떤 꿈을 짓는 어떤 사람이 되자”는 데까지는 더더욱 안 나아가지 싶어요. 이제는 ‘읽자’보다 ‘어떻게’나 ‘무엇을’을 말할 때이지 싶어요.


  가을이면 새삼스레 듣는 “책을 읽자”란 말이 너무 따분하구나 싶다고 느끼면서 서울마실을 하고, 전철을 갈아타고서 낙성대역에 이릅니다. 언제나처럼 이 마을 한켠에서 책꽃을 피우는 헌책집 〈흙서점〉 앞에 섭니다. 전철역에는 낙성대란 이름이 붙습니다만, 저는 이곳을 ‘아름다이 책꽃을 피우는 헌책집이 있어서 더없이 상냥하며 따사로운 마을’이라고 느낍니다.


  책집 앞에 그득그득 쌓은 책부터 살피고 안쪽으로 들어섭니다. 안쪽 골마루하고 책꽂이를 살피며 책내음을 맡다가, 햇볕이 드리우는 마당으로 나와서 햇볕하고 바람을 나란히 느끼면서 책내음을 맡습니다. 《North American Indian》(Christopher Davis, Hamlyn, 1969)을 먼저 집어듭니다. 어느 책을 만나든 이러한 책을 지어서 펴낸 사람들 숨소리를 느끼며 고맙습니다. 《자연속의 새》(김수만, 아카데미서적, 1988)는 그동안 여러 자락 장만해서 우리 책숲에 두 자락 건사하기도 했고, 이웃님한테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요즈음은 새를 사진으로 찍는 분이 무척 늘었는데, 이 책이 나올 무렵만 해도 참 드물었어요.


  나오미 캠벨, 헬레나 크리스텐센, 신디 크로포드 같은 이들을 담은 《Ten women by Peter Lindberg》(Schirmer, 1996)를 천천히 넘깁니다. 이 책 곁에 함께 있는, 퍽 묵은 어린이책인 《insect society》(Berta Morris Parker·Alfred E.Emerson, Row Peterson com, 1941)하고 《toads and frogs》(Berta Morris Parker, Row Peterson com, 1942)를 집어듭니다. 1940년대에 이런 어린이책을 펴내어 어린이가 삶하고 삶터를 한결 깊이 배우도록 이끈 손길이 있네요. 이 나라에서 1940년대를 살던 어른들은 그무렵 어린이한테 어떤 책을 써서 나누었을까요.


  그림책 《Brillinat Boats》(Tony Mitton·Ant Parker, kinghisher, 2002)를 펼치다가, 손바닥책 《Germinal(extraits)》(Emile Zola, Larousse, 1953)을 집습니다. 꾸밈새가 매우 곱습니다. 손바닥책을 이처럼 가볍고 단단히 엮는 매무새가 훌륭합니다.


  가만히 보면 책이란, 아름다운 책이란, 알맹이부터 엮음새에 꾸밈새를 비롯해서 팔림새까지 모두 아름답게 흐를 적에 우리가 함께 아름다운 빛을 누리는 징검돌이 되지 싶습니다. 알맹이가 알차지만 빛을 못 보는 책이라든지, 알맹이는 허술한데 꾸밈새만 멋진 책이라든지, 알맹이가 비었으나 꾸밈새에 이름값을 내세워 팔림새만 높이는 책이라면, 어딘가 허술합니다.


  작아도 알찬 손길이 곱습니다. 작으면서 듬직한 책집이 반갑습니다. 다음에 마실할 날을 손꼽으면서 오늘 마주하는 뭇책을 쓰다듬습니다. 책집지기가 단단히 꾸려 주는 책짐을 받고서 묵직한 등짐을 짊어지고 새길을 나섭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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