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우리말 이야기꽃 : 청소년은 언어 파괴를 할까?



[물어봅니다]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이 쓰는 급식체나 신조어나 준말이 우리 언어를 파괴하는 현상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야기합니다]

  먼저 이렇게 되물어 볼게요. “참말로 요즘 푸름이나 어린이가 쓰는 말이 말썽이나 잘못이라고 여기는가요? 우리 삶터에서 어른들이 쓰는 말은 어떤가요? 어른들은 말을 얼마나 이쁘거나 곱거나 바르거나 참하거나 착하거나 옳거나 슬기롭거나 아름답거나 사랑스럽거나 훌륭하거나 멋지거나 어질거나 상냥하게 쓰나요?”


  어린이나 푸름이(청소년)는 어른 곁에서 배워요. 어린이나 푸름이는 또래끼리 어울리면서도 배우거나 물들 테지만, 누구보다 곁에 있는 어버이랑 어른한테서 배우거나 물듭니다. 이렇게 ‘어버이랑 어른한테서 먼저 배우거나 물든’ 뒤에 이 모습이 또래 사이에서도 퍼져요.


  쉽게 생각하면 되어요. 어린이나 푸름이가 쓰는 말씨가 안 곱고 안 사랑스럽다면, 거칠거나 사납다면, 뭇 어버이하고 어른부터 안 곱고 안 사랑스럽게 말하며 산다는 뜻이고, 숱한 어버이하고 어른부터 거칠거나 사납게 삶하고 살림을 꾸린다는 뜻이에요.


  차분하게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고운 말을 늘 듣고 배울 수 있도록 어른부터 거듭나야겠어요.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사랑스럽게 생각해서 마음에 이 사랑 씨앗을 심을 수 있도록 어버이부터 날갯짓하는 마음으로 달라져야겠어요.


  가만히 보면 어른들은 으레 끼리말을 써요. ‘끼리말’이란 끼리끼리 쓰는 말이에요. 어른들은 ‘전문용어·업계용어’ 같은 말을 쓰는데요, 이런 끼리말을 쓰는 어른들 흉내를 어린이하고 푸름이가 내지요. 둘레를 보셔요. 어른이 짓는 사회나 정치나 문화나 예술이나 교육이나 산업현장이나 교통하고 통신이나 군대나 학교나 …… 다들 끼리말을 써요. 쉽게 어우러지거나 즐겁게 어울릴 만한 부드럽고 수수한 말을 좀처럼 안 쓰려고 합니다.


  퍽 옛날인 일제강점기에는 일본말을 그대로 딴 ‘원족’이란 말을 썼고, 해방 뒤에는 ‘소풍’이란 한자말을 썼는데, 요새는 ‘현장학습·체험학습’이란 말을 씁니다. 저는 아직도 ‘현장학습·체험학습’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여덟 살 어린이나 열 살 어린이가 잘 알아들으리라 여겨서, 학교에서 여태 이 말을 그대로 쓰는지 궁금해요. 왜 어른끼리 알아들을 만한 말을, 또 어른 가운데에서도 어느 무리에 있는 어른끼리 알아듣거나 나누는 말을 함부로 쓸까요?


  어른이 어른이라면, 이름만 어른이 아닌 슬기로운 어른이라면, 나이만 먹은 어른이 아닌 참어른이라 한다면, 아무 말이나 섣불리 쓰지 않습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한테서 배울 줄 아는 어른이라면, 억지로 낮추는 말이 아닌, 아이하고 함께 생각을 북돋우고 살찌우는 말을 새롭게 지어서 쓸 줄 아는 마음이 되리라 봅니다.


  예부터 이 땅에서 태어나 살아온 사람은 ‘마실’을 다녔고 ‘나들이’를 했습니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면 ‘마실’을 잘 모를 수 있는데, 요새는 도시에서도 ‘마실’을 꽤 널리 써요. 무슨 소리인가 하면, ‘원족·소풍·현장학습·체험학습’이란, 마실이거나 나들이란 뜻입니다.


  ‘학습’이란 말은 안 붙여도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 늘 배우기 마련이니 억지로 ‘학습’을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학교라는 곳에서는 모두 배움하고 얽힌 일을 하니, 구태여 붙일 일이 없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정 붙여야겠다고 여기면 ‘배움마실·배움나들이’쯤 쓸 수 있습니다. 무엇인가 해보는 곳에 다녀온다면 ‘해보기마실·해봄마실’처럼 새 이름을 지어도 됩니다. 이름을 붙이거나 지을 적에는 어른끼리 알아듣는 말이 아닌, 처음 들을 어린이도 알아들을 만한 자리를 살펴서 지어야 합니다.


  삶터가 상냥하면 말은 저절로 상냥해요. 마을이 아름다우면 말도 저절로 곱지요. 보금자리가 사랑스러우면 말도 저절로 사랑스럽답니다. 말을 말대로 찬찬히 보고 가다듬을 노릇이면서, 말에 앞서 우리 삶을 짓는 이 터를 함께 살피면 좋겠어요. 우리 삶자리부터 ‘삶을 부수는(사회 파괴)’ 흐름이 깃들지 않도록 한다면, ‘말을 부수는(언어 파괴)’ 흐름도 저절로 사라지리라 여깁니다. 그러니까 ‘어른부터 스스로 말을 부수니까, 어린이랑 푸름이가 말을 부수는 일을 따라합’니다. 어른부터 말을 사랑하고 가꾸면, 어린이랑 푸름이도 말을 사랑하며 가꾸겠지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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