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이야기꽃
우리는 서로 이슬떨이
[물어봅니다] 숲노래 님이 쓴 책을 읽다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을 드려도 될지요? ‘이슬떨이’라는 뜻을 조금 더 알고 싶습니다. 사전에서의 뜻을 살펴보지 못해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이 낱말을 언제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문득 어떤 느낌일지 상상은 되지만 몸에 길들여진 말이 아니라 그런지 겉핡기 식으로 느껴져서요.
[이야기합니다] 물어보신 말씀을 듣고서 사전을 뒤적여 보았어요. 사전을 보니 ‘이슬떨이’를 올림말로 삼기는 하지만, 막상 보기글을 하나도 안 붙였네요. 보기글 없이 뜻풀이만 달랑 있으니, 어쩌면 사람들은 이 낱말을 여느 자리에서 어떻게 쓰는가를 모를 수 있고, 배우기 어렵다고 느낄 수 있겠어요.
‘이슬떨이’라는 낱말하고 닮은 ‘이슬받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사전은 ‘이슬받이’도 올림말로 삼아서 뜻풀이를 하지만, 이 낱말에도 보기글이 하나도 없네요. 이는 두 가지로 읽을 만해요. 첫째, 뜻풀이는 있되 보기글이 없는 사전이라면, 이 사전을 엮은 분들이 낱말 쓰임새를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는 소리예요. 둘째, 문학이나 언론이나 학문에서 어느 낱말을 어떻게 쓰는가를 찾아내지 못했으면, 사전을 엮는 분들 스스로 보기글을 붙이면 돼요. 그러나 그 사전을 엮은 분은 스스로 보기글을 붙일 생각을 안 했거나 못 한 셈입니다.
사전이라면 뜻풀이 곁에 보기글을 두어야 해요.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비로소 사전이라는 책답게 밑꼴을 갖추는 셈이에요. 보기글은 낱말이 태어나고 자라면서 흐르는 결을 어린이부터 누구나 느낄 수 있도록 알맞게 붙일 수 있어야 하고요.
㉠ 네가 어제 이슬떨이가 되어 주었지. 오늘은 내가 이슬떨이가 될게.
㉡ 어머니는 언제나 이슬을 떨어 주면서 앞장서서 씩씩하게 가셔요.
㉢ 앞에서 이슬을 모조리 맞으며 옷자락이 젖었어도 걱정이 없대요.
㉣ 이슬을 머금은 푸나무는 싱그럽게 자란단다. 이 이슬을 온몸에 받았으니 한결 싱그럽겠지. 곧 떠오르는 해는 젖은 곳을 모두 따뜻이 말려 준단다.
‘이슬떨이’는 이슬을 앞에서 먼저 떨어 주어서 뒤따르는 이는 이슬에 젖지 않도록 하는 모습을 나타내요. ‘이슬받이’는 이슬을 앞에서 모두 받아 주면서 뒤따르는 이가 이슬에 안 젖도록 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이런 얼거리를 살펴서 ㉠ ㉡ ㉢ ㉣ 같은 글을 새로 써 봅니다. 이슬은 나쁜 것이 아니에요. 밤새 고요히 잠든 푸나무는 이동안 천천히 맺은 이슬을 머금으면서 아무리 뜨거운 한낮에도 시원하게 하루를 나요. 푸나무는 새벽이슬을 품고서 후끈후끈 더운 불볕에 조금씩 물기운을 밖으로 내보내는데, 이렇기에 풀밭이나 숲은 더운 날씨에도 참으로 상큼하고 시원하지요.
가만히 보면, 앞에서 가는 사람이 이슬이라는 물을 온몸으로 떨거나 받으면 이이는 몸이나 옷이 젖으니, 뒷사람은 옷이 안 젖어요. 성가신 일을 기꺼이 받아들일 뿐 아니라, 어느 길을 가야 알맞은가를 온몸을 던져서 찾아내는 노릇을 한달 수 있어요. 그런데 이슬이란 푸나무를 살리는 아름다운 숨결이에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 노릇을 하는 사람은, 이녁이 맞아들일 낯설거나 고되거나 만만찮은 일을 싫어하지 않아요. 멀리하거나 꺼리지도 않아요. 모두 이녁을 살찌우는 마음밥으로 삼지요. 그렇기에 ‘이슬떨이·이슬받이’를 멋지면서 야무지고 아름다운 길잡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쓸 수 있어요.
이슬동무 : 새벽을 여는 이슬을 맞이하는, 또는 새벽을 여는 이슬을 떨어 주듯 먼저 나아가는 길에 같이 있는 사이
이슬벗 : 새벽을 여는 이슬을 맞이하는, 또는 새벽을 여는 이슬을 떨어 주듯 먼저 나아가는 길에 같이 있는 가까운 사이
사전에 ‘이슬동무·이슬벗’ 같은 낱말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 두 낱말을 새롭게 지어서 써요. 이슬떨이나 이슬받이는 한 사람일 텐데, 둘이나 셋이 나란히 이슬떨이로 나설 수 있어요. 서로 즐거이 웃으며 어깨동무하며 앞장서서 나아가기에 이슬동무랍니다. 자, 그러면 더 생각해 봐요. 우리는 이런 여러 낱말을 바탕으로 또 새로운 말을 지을 만해요. 어떤 말을 더 지을 수 있을까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