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우리말

우리말 이야기꽃



익숙하지 않은 말


[물어봅니다] 숲노래님의 글은 언제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야 해요 그만큼 우리말에 익숙하지 않아서일 꺼예요.


[이야기합니다] 물음을 한참 되읽었어요. 그럴 수 있겠네 싶으면서 아닐 수 있기도 하겠지요. 다만 먼저 이 한 마디는 여쭐 수 있어요. 제가 쓴 글이건 이웃님이 쓴 글이건, 우리는 글을 제대로 읽자면 매우 천천히 읽어야 합니다. 빨리 읽어서는 놓치거나 건너뛰거나 잘못 짚기 일쑤예요. 이는 말에서도 같아요. 빨리 말하면 빨리 알아듣기 나쁘겠지요? 빨리 말하고 빨리 들으려 하면 너무 바빠서 어지럽거나 허둥거릴 수 있어요. 누가 쓴 글이든 천천히 읽지 않으려 하면 그만 우리 마음까지 허둥지둥하면서 헤매기 쉽습니다.


  그리고 낱말을 살짝 바꾸어 볼게요. ‘천천히’는 ‘찬찬히’하고 맞물립니다. ㅓ하고 ㅏ가 다른 낱말이지요. 뜻은 거의 같다고 할 두 낱말이면서 결하고 무늬가 다른 낱말이랍니다.


  자, “찬찬히 읽기”라 하면 어떤 느낌인가요? 이때에는 ‘서두르지 않으면서 한결 깊이’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요? 이와 매한가지로 “천천히 읽기”도 ‘서두르지 않으면서 더 깊이’ 읽으려는 느낌이 깃듭니다. ‘천천히’는 ‘느리게’하고 비슷하지만 달라요. ‘느리게’는 빠르지 않도록 움직이는 몸짓이라면, ‘천천히·찬찬히’는 깊고 넓게 헤아리거나 살피려고 하는 몸짓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깊고 넓게 헤아리거나 살피려고 하면, 서두르거나 바쁘게 움직이지 않아요. 이런 몸짓은 얼핏 느리다고 여길 수 있지만, 그냥 느린 몸짓은 아니지요.


  제가 쓴 글을 천천히 읽어 주신다면, 제가 글을 쓸 적에 다루는 모든 낱말에 숨결을 불어넣으려 하는 마음을 느끼신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참 고마운 일입니다. 참말로 저는 제가 글이나 말로 나타내는 모든 이야기에 숨결을 담으려고 해요. 어떤 숨결인가 하면, ‘스스로 사랑하는 살림을 새로 세우는 숲으로 숨쉬는 슬기롭고 상냥하면서 사이좋게 살뜰한 삶으로 서로서로 생각하는 씨앗을 심는 싱그러운 숨결’이라 할 만합니다.


  모두 ㅅ으로 이어 보았어요. 저는 어쩐지 ㅅ이 마음에 들어요. ㅅ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제 사랑을 오롯이 담아서 쓰는 글이니, 더욱 천천히 한결 찬찬히 읽어 주시면, 더욱 깊으며 한결 새롭게 사랑어린 빛을 받아들이시리라 하고 여겨요.


  그러니까 이웃님은 ‘우리말에 덜 익숙하다’기보다 ‘우리말로 쓴 글에 담은 사랑을 듬뿍 누리고 싶다’는 마음이 저절로 일어나서 제가 쓴 글을 천천히 읽어 주시는구나 싶습니다.


  저는 말을 빨리 하고 싶지 않아요. 느긋하게 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야기꽃이란 이름으로 강의나 강연을 가면, 반드시 뜸을 들여요. 첫머리를 열 적이든, 한창 말을 하다가든 뜸을 들이지요. 그렇다고 뜸을 오래 들이지 않아요. 얼추 5초∼10초쯤 문득 서고 입을 살며시 다물고서 뜸을 들이는데요, 다들 이 5초∼10초가 엄청 길다고 느낀대요. 고작 5초∼10초인데 말이지요.


  이야기꽃을 펴다가 들이는 이 뜸은, 제가 들려주려는 이야기를 더욱 천천히 한결 찬찬히 마음으로 받아들이실 수 있는 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뜸을 들여야 밥이 맛있게 익듯, 이야기를 함께하는 자리에서도 틈을 주어야 마음 깊이 사랑어린 숨결이 춤추듯 스며든다고 느껴요.


  우리 삶도 이와 같겠지요? 서두르면 얼마나 힘든데요. 아이들더러 왜 이렇게 늑장 부리느냐고 다그치면 아이도 어버이도 같이 고단해요. 우리가 어디로 마실을 갈 적에 서두르지 않는 바람에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를 놓칠 수 있어요. 그러나 놓쳤으면 다음에 오는 대로 타면 되어요. 서두르지 않기로 해요. 길을 갈 적에도, 일을 할 적에도, 말을 할 적에도, 글을 쓸 적에도, 또 책이나 글을 읽을 적에도 서두르지 않기로 해요.


  간추리자면, 서둘러서 읽어야 할 글이나 책이라면 처음부터 아예 안 읽으면 더 좋아요. 천천히 읽거나 찬찬히 새길 만한 글이나 책을 가려서 읽으면 참 좋아요. 이렇게 함께 걸어가면 좋겠어요. 천천히, 찬찬히, 다르면서 비슷한 두 낱말을 혀에 얹고서 기쁘게 노래하면 좋겠어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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