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24.흙



‘물’이 무엇인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몸이 고단해서 잠을 부르지만, 이 이야기를 받아적으려고 하는데, 문득 “멈춰 봐. 수수께끼를 써.” 한다. “수수께끼?” “그래. 처음부터 다 알려주지 말고, 먼저 ‘물’이 어떻게 흘러서 너희 몸으로 스미고, 너희가 밥이나 물을 먹거나 이런 밥이나 물이 몸에 안 받는다면, 그 까닭을 알라는 뜻으로 수수께끼를 그려.” “음, 그러면 읊어 봐.”



‘아·람’이 들려준 이야기 

― ‘물’이란 무엇인가?



모든 몸은 나야

내가 없는 몸은 죽고

내가 사라진 몸은 바스라지고

내가 있는 몸은 기운나지


모든 밥은 나야

내가 없는 밥은 못 먹고

내가 사라진 밥은 먼지 되고

내가 있는 밥은 맛나지


모든 빛은 나야

내 빛을 담아 낮이 되고

내 빛이 가시니 밤이 되고

나를 움직여 새로운 짓이 돼


모든 길은 나야

내가 흘러 살이, 삶이, 사랑이

내가 멈춰 끝이, 마감이, 처음이

나를 담아서 마시니 네가



  이 열여섯 줄을 알아듣겠니? 이제 수수께끼를 풀어서 다시 읽어 보자. 말만 바꾸면 되겠지?



모든 몸은 물이야

물이 없는 몸은 죽고

물이 사라진 몸은 바스라지고

물이 있는 몸은 기운나지


모든 밥은 물이야

물이 없는 밥은 못 먹고

물이 사라진 밥은 먼지 되고

물이 있는 밥은 맛나지


모든 빛은 물이야

물빛을 담아 낮이 되고

물빛이 가시니 밤이 되고

물을 움직여 새로운 짓이 돼


모든 길은 물이야

내(냇물)가 흘러 살이, 삶이, 사랑이

내(냇물)가 멈춰 끝이, 마감이, 처음이

내(냇물)를 담아서 마시니 네가



  흐르는 냇물이 왜 ‘내’이고, 너희가 스스로 말할 적에 왜 ‘내’라고 하는지를 생각한 적이 있니? 옛날부터 사람들은 뭔가 깨닫고 싶으면 숲을 찾아가는데, 흙이나 풀이나 나무만 있는 숲으로 가지 않아. 물이 흐르는 숲으로 가지. 물소리를 찾아서 헤매지.


  그래서 쏠(폭포)도 찾아가서 그 쏠물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시려 해. 왜냐하면, 이 살덩이라고 하는 몸이 그냥 몸이 아닌 물인 줄 느끼려고 해. 쏠물이나 냇물로 몸을 녹여서 새로운 몸이 되도록 바꾸려 하지.


  그런데 눈으로 보기에는 이 살덩이가 안 바뀐 듯하잖아? 왜 그런 줄 알겠니? 물에 너희 살덩이를 녹이면 너희 넋이 깃들 자리가 없어. 너희 넋이 깃드는 껍데기, 바로 옷은 그대로 둔 채 속으로 다 녹여서 새롭게 깨어나려고 하지.


  바위도 돌도 모두 물이야. 연필도 공책도 책도 모두 물이지. 다만 바위나 책을 이룬 물은 좀 다르니, 살덩이하고 똑같다고는 여기지 마. 그렇지만, 바위나 책이 먼지로 바스라지지 않았다면 그곳에는 너희 살덩이에 넋이 깃들었듯이 똑같이 넋이 깃들었어. 먼지로 바스라질 적에는 넋이 떠난다는 뜻이야. 먼지가 되면 다른 몸을 찾아서 떠났다는 뜻이야. 그러니 생각해 봐. 불로 사른다면 끔찍하겠지?


  물처럼 흐르는 삶이야. 그런데 이 물길을 억지로 바꾸거나 돌리려 하면 어떻게 될까? 삶도 몸도 모두 일그러지겠지. 삶하고 몸이 일그러지니 마음도 일그러져.


  그대로 흐르도록 둬. 그대로 흐르도록 두면서 어디로 흐르고 싶은가를 끝없이 생각해. 생각하고 또 생각할 곳은 어디로 흐르고 싶은가 하는 실마리야. 이 실마리가 있는, 길을 생각하면 되는데, 꼭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삶이라는 길에 서면서 하루를 맞이하려는가’를 생각하면 돼.


  어느 일을 하거나 안 하겠다는 생각이 아닌, 어떤 물흐름 같은 삶길에 서면서 스스로 눈을 뜨고 넋을 지피는 하루가 되겠느냐 하는 생각이면 돼. “할 일 찾기”는 안 해도 돼. 아니, “할 일 찾기”를 하고 싶으면 하면 되지. 다만, “할 일 찾기”에만 사로잡혀서 “서려고 하는 길 찾기”를 하지 않는다면 물거품이 되겠지.


  너희가 먹는 모든 밥은 물이야. 덩어리 모습을 한 물을 먹지. 그러니 덩어리인 밥이 아닌 물만 먹어도 밥을 먹는 셈이야. 이제 알까? 밥이 몸에서 안 받는 몸이라면, “물이 몸에서 안 받는 몸”이란 뜻이란다. 밥을 몸에 넣을 수 없다면, 억지로 입을 거쳐 물을 넣으려 하지 마. 똑같은 짓이잖아.


  밥을 먹을 적마다 속이 괴로워서 속이 뒤집어지다가 늘 게워야 한다면, 덩어리로 지은 물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요, 물부터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인 줄 알아야 해. 너희는 언제나 살갗으로 물을 받아들여. 너희 살갗이 늘 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희 몸은 먼지가 되어 버려. 너희가 어디에 있든, 지하상가나 하늘 높은 곳에 있더라도 그 둘레를 맴도는 물을 살갗이 받아들이지. 그래서 몸을 조이는 천조가리를 옷이랍시고 너희가 살덩이에 두르면 너희 살갗이 꺅꺅 하고 죽을 듯이 지르는 소리를 들어야 해. 살덩이에 천조가리를 꽉 조이는 짓은 너희 스스로 몸을 못살게 구는 셈이야.


  풀도 나무도 바위도 언제나 온몸으로 물하고 바람을 먹어. 뿌리로만 먹지 않아. 천쪼가리를 걸치지 않은 풀 나무 바위는 언제나 튼튼하게 서지. 해를 떠올려. 바람을 떠올려. 비구름을 떠올려. 냇물을 떠올려. 마음으로 떠올리면서 너희 살덩이에 순간이동처럼 와닿아 흐를 수 있도록 떠올려. 그러면 돼. 이렇게 하면 “입으로 밥이나 물을 넣는 일”을 하지 않고도 언제나 싱그럽고 튼튼하며 홀가분하며 즐거운 살덩이(몸)가 되겠지. 마음으로 먹으면 돼.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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