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말꽃

우리말 이야기꽃



순수한 우리말을 알려면?


[물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며 매우 많은 쓰지 말아야 할 말을 쓰고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특히, 이름 난 시인이 쓰신 책이나 교과서뿐 아니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이나 우리말 큰사전과 같이 모두가 인정하는 곳에서조차도 그러한 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놀라웠습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순수한 우리말이란 무엇인지를 알기란 몹시 어려웠을 듯 싶은데, 최종규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순수한 우리말을 처음 알고 새롭게 살려내실 수 있으셨습니까?


[이야기합니다] 저는 “순수한 우리말(한국말)”을 알지 않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말”을 찾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쓸 말을 생각해요. 제가 살아가는 이 터에서 태어나고 흐르면서 사랑이 깃든 말이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지요.


  제가 사전을 짓는 터전으로 삼는 곳은 제 책마루이자 책숲인데요, 책마루란 ‘서재’이고 책숲이란 ‘도서관’을 가리키려고 제가 새로 지은 이름입니다만, 아무튼 제 책마루이자 책숲을 놓고 〈사전 짓는 책숲, 숲노래〉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자, 이 책마루이자 책숲에 붙인 ‘숲노래’란 이름으로 실마리를 풀어 볼게요.


  이웃님은 ‘숲’이나 ‘노래’라는 말을 참으로 언제부터 썼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모르시겠지요? 저도 잘 모릅니다. 2만 해나 20만 해가 된 말일 수 있으나,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숲’을 가리키는 한자 ‘林’을 한국이란 터에서 언제부터 받아들였는지는 얼추 어림할 수 있어요. ‘노래’를 가리키는 한자 ‘歌’도 한국이란 터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어요.


  더 오래되었다고 더 이 터에 어울리는 말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얘기를 왜 하느냐 하면, ‘숲’이나 ‘노래’란 낱말은 “순수한 한국말”이라기보다는, “이 터에서 사랑으로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슬기롭게 돌보고 즐겁게 살아간 사람들이 저절로 입으로 터뜨려서 아름답게 써서 나누다가 물려준 낱말”이라고 할 만합니다.


  거듭 말씀하지만, 저는 “순수한 한국말”을 쓸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쓰는 말은 오로지 ‘살림말’이나 ‘사랑말’이나 ‘삶말’입니다. 바로 앞에서 밝혔습니다만, 다시 밝혀 볼게요. “이 터에서 사랑으로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슬기롭게 돌보고 즐겁게 살아간 사람들이 저절로 입으로 터뜨려서 아름답게 써서 나누다가 물려준 낱말”인 살림말이나 사랑말이나 삶말을 쓰려고 생각합니다.


 작은짜·가운짜·큰짜


  엊그제 세 가지 말씨를 새로 지어서 우리 집 아이들하고 써 보았습니다. 저는 거의 집에서만 밥을 먹습니다만, 어쩌다가 바깥에 나가야 할 일이 있으면, 길가에 있는 밥집에 들어가는데요, 이때에 차림판을 보면 으레 ‘대·중·소’로 가르고, 밥집 일꾼은 ‘대짜·중짜·소짜’란 이름으로 묻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바로 이 ‘대짜·중짜·소짜’를 못 알아듣고 툴툴거려요. 아이들 말을 고스란히 옮길게요. “‘큰것·가운뎃것·작은것’이라 하면 알아듣기 쉬운데 왜 저런 말을 써?” 아이들 툴툴거림을 듣고서 빙그레 웃었어요. 이러면서 문득 생각했지요. ‘가운뎃것’은 좀 긴 듯해서 ‘-뎃-’을 덜어 볼까 싶더군요. 그리고 ‘-짜’라 붙이는 말씨는 재미있으니 “작은짜·가운짜·큰짜” 또는 “큰짜·가운짜·작은짜”처럼 말해도 어울리려나 하고요.


  “작은짜·가운짜·큰짜”라 말하면 처음에는 낯설다 여길 분이 틀림없이 있겠지만 이내 스스로 알아채리라 느껴요. 이와 달리 ‘대·중·소’는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외국사람도 ‘대·중·소’가 뭘 나타내는지 도무지 종잡지 못하겠지요.


  저는 그저 생각을 합니다. 사랑스럽게 살림을 지으며 살아가는 동안에 활짝 웃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쓸 만한 말을 생각합니다. 여기에 하나를 보탠다면, 다섯 살 아이나 열 살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할 만한 말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국을 좋아해서 찾아오려는 이웃나라 분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순수한 한국말”이 아닌, “즐겁게 사랑으로 함께 나눌 말”을 늘 생각하면서 하나하나 혀에 얹고 글로 실어 본다고 할 만해요. 이웃님도 해보실 수 있어요. “순수한 한국말”을 찾기는 어려울 뿐 아니라 지끈지끈할 만해요. 그러나 즐겁게 노래할 말을, 숲을 사랑하는 말을, 아이하고 어깨동무하는 말을, 이런 살림말을 헤아리는 일은 누구나 쉽고 재미나게 할 수 있으리라 여깁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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