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소녀 카르페디엠 8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박근 그림 / 양철북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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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이름 : 나무소녀
- 글쓴이 : 벤 마이켈슨
- 옮긴이 : 홍한별
- 펴낸곳 : 양철북(2006.6.7.)
- 책값 : 8500원


 이 책 하나 15 : 나무소녀
 - ‘기록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는가요

 
 - 1 -


 충주에서 인천으로 살림을 옮겼습니다. 3.5톤 짐차 석 대에 가득 실리는 책짐과 책꽂이를 옮겼습니다. 책을 묶는 데에 보름이 넘는 시간을 썼습니다. 책을 풀 때에는 하나하나 닦아서 꽂아야 하는 만큼 더 긴 시간이 들어갈 듯합니다. 3.5톤 짐차에는 책 만 권쯤 실린다는데, 얼추 3만 권이 조금 못 되는 책짐입니다. 책을 가까이한 때는 고등학교 1학년인 1991년. 이때부터 모은 책, 사이사이 헌책방에 내다 팔고 이웃들한테 주고 하면서도 남은 책이 이만큼. 얼핏 보기에는 많을 수 있지만, 가만히 살피면 많지 않을 수 있는 책. 3만 권이라고 해도, 여태까지 보고 살피고 만져 본 책이 이만큼이라는 뜻. 이제부터 새로 읽을 책, 새로 만날 책, 새로 제 곁에 자리할 책은 하나둘 늘어서 새로운 숫자를 이루겠지요. 저는 살아 있는 사람이고, 살아갈 사람이며, 날마다 새롭게 살고픈 사람이니까요.


.. 나무소녀는 높이 올라가면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지. 그렇지만 올라가면 새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알아. 아주 강하기 때문에 삶에서 좋은 것을 누리기 위해서 나쁜 일을 겪어야 할지라도 그걸 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어. 희망을 찾기 위해 어떤 고통에도 굳세게 맞서지.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찾기 위해 추한 것들을 만날 위험도 무릅쓰고. 나무소녀는 다른 사람들은 무서워서 감히 덤비지 못할 때에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어 ..  〈197쪽〉


 인천으로 오면서 보금자리를 튼 곳은 배다리에 있는 헌책방골목. 이곳에서 사진책 도서관을 꾸릴 생각입니다. 일본 도쿄 간다 헌책방거리에는 백쉰 군데가 넘는 헌책방에 새책방도 대여섯 곳쯤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몰라서 그렇지, 조그마한 박물관과 도서관이 곳곳에 많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책흐름이나 책문화라면, 새로 빚어내는 책이 머무는 새책방, 이 책 가운데 골라서 갖추는 도서관, 두 곳을 거쳐 세월 흐름을 고여 내는 헌책방, 이렇게 어우러지지 싶어요.

 인천에도 도서관이 제법 있습니다. 하지만 배다리에는 없습니다. 또한 입시생이나 고시생이 학과공부하는 독서실 같은 분위기에서 벗어난 도서관을 찾기도 수월하지 않습니다. 책 하나로 이룰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고, 책 하나로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얼마나 될까도 모릅니다. 다만 이곳에서 씨앗을 뿌리고 싶어요. 땅에 뿌리내린 씨앗 가운데에는 싹이 안 트고 죽고 마는 녀석이 있을 테니, 저도 그 씨앗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운이 닿는다면 잘 살아남아 한 해 한 해 무럭무럭 자라겠지요. 씨앗이 어린나무로 자라는 데에 다섯 해쯤 걸리고, 어린나무에서 자라 여느 어른 키 높이쯤 되려면 열 해쯤 있어야 합니다. 제 사진책 도서관도 이런 빠르기와 흐름으로 알맞게 살찌우면 좋으리라 믿습니다.


.. 네 미래는 올바른 질문을 찾아내고 용기 내어 그 질문을 던지면서 찾아나가는 거다. 좋은 질문은 좋은 대답보다 훨씬 중요한 거야. 그렇지만 질문을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지. 가브리엘라, 넌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는 알겠지. 하지만 왜 사는지도 알겠니? ..  〈46쪽〉


 사진책 도서관을 여는 까닭은 한 가지입니다. 제가 사진책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한 가지 주제로 사진을 찍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진을 찍는 동안 고개숙여 배우고자 하나하나 사들인 사진책이 어느덧 제법 숫자가 불어서 오천 권쯤 되었고, 앞으로도 꾸준히 새 사진책을 사서 볼 생각이니까, 차츰차츰 늘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사진책은 ‘무던히 안 팔리는 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값이 퍽 비싸기도 하지만, 사진쟁이들치고 사진책 부지런히 사서 보면서 ‘동료 사진작가 작품’을 헤아리며 자기 작품을 돌아보는 분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가르치는 교수님들도, 사진을 배우는 학생들도, 사진으로 먹고사는 사진작가나 사진기자도 ‘바쁘다는 자기 틈을 쪼개어 다른 이 작품을 살피는 일’이 꽤 드뭅니다. 그래서라고 느끼는데, 날이 갈수록 사진 찍는 분은 늘어가지만, 마음을 울리는 사진 작품 만나기는 어려워집니다. 멋들어진 사진은 늘어나지만, 맛깔스러운 사진은 줄어듭니다. 사진이란 어느 한때를 찰칵 담아내는 발자취만이 아닐 텐데, 사진에 어떤 삶을 담고, 누구 눈길을 깃들이며, 어떻게 나눌 마음과 넋을 어우러내느냐까지 살피지 못하는구나 싶어요.

 이런 몸짓과 눈길이라면, 사진을 찍을 때뿐 아니라, 우리 둘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느끼거나 받아들일 때에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 사진에 담는 사람들 모습이 겉핥기이거나 겉치레인데, 내 이웃한테 일어나는 일을 속깊이 살피거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내 사진에 담기는 삶터가 겉모습뿐인데, 내 둘레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 밑바탕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읽어낼 수 있을까요.


.. 저는 우리 말, 키체어로 된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해요. 누군가가 우리 이름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사실은 우리가 좋지 않게 보였기 때문이겠죠. 누군가를 존중한다면 그 사람의 종교, 관습, 이름을 바꾸도록 만들 수는 없을 거예요. 군인들이 우릴 존중하지 않는 건 교회에서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인가요? ..  〈47쪽〉


 - 2 -


 디지털사진이 두루 퍼지면서, 한 가지 좋아졌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사진을 스스럼없이 생각하고 받아들이며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나빠졌습니다. 1회용 플라스틱 같은 사진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마음과 세상을 사는 마음은 한 동아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즐기는 마음과 세상을 부대끼는 마음은 한 줄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다루는 마음과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마음 또한 한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을 잘 찍기만을 바라는 사람이 우리 세상을 어떻게 바라볼까요. 사진을 그럴싸하게 찍으려는 사람이 우리 삶터를 어떻게 굽어살필까요. 사진으로 이름값-돈-힘을 얻으려는 사람이 제 식구와 벗과 이웃을 어떤 자리에서 함께하려 할까요.


.. 하늘이 어둑어둑하고 굵은 비가 내리던 12월 어느 날, 스무 명 가까이 되는 군인들이 우리 마을로 행군했다. 마을사람들 모두 깜짝 놀랐다. 군인들이 마을에 쫙 퍼져 집집마다 소총으로 문을 열고 들어섰다. 우리 집 문을 걷어차고 들어온 군인은 이렇게 말했다.
 “이 땅이 네 소유라는 권리증을 제시하라.”
 아빠는 젊디젊은 군인에게 사정했다.
 “그런 증명 같은 것은 없어요. 우리는 우리 조상들처럼 왔다 가는 방문객일 뿐입니다. 짧은 일생 동안 이 땅을 빌려 사용하는 방문객인 거예요. 이 땅은 누구 소유도 아닙니다. 조상님들이 아무런 권리증 없이 물려주었고, 또 우리도 아무런 문서 없이 자식들에게 물려줄 땅입니다.”
 “당신들은 법률을 위반했다. 30일 이내로 이 지역에서 떠나지 않으면 강제로 쫓아낼 것이다.”
 군인이 위협했다 ..  〈58쪽〉


 요즘도 모두 가시지는 않았으나, 지난날 독재정권 때에는 사진 한 장을 놓고 장난질을 참 많이 쳤습니다. 독재정권을 우상으로 섬기고, 이 나라 백성들은 폭도인 듯 거꾸로 뒤집어 꾸며댔습니다. 사진은 찍는 자리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찍는 눈길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사진기자는 ‘피맺히고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백성’ 모습에는 슬그머니 눈을 감고 사진을 안 담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는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분통을 터뜨리는 백성’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찍어서 이이가 미친놈이거나 깡패처럼 보이게 할 수 있습니다. 사진기자는 힘있고 돈있고 이름있는 사람들한테만 우루루 몰려다니며 이 사람들 이야기만이 세상에 알려지는 기삿거리가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런 사진 장난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사진에 찍혔으니 참이구나’ 하면서 그대로 믿어 버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 “네놈들 중 한 명이라도 오늘 있었떤 일을 내뱉으면 잡아죽일 테다. 알겠나?”
 우리는 모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지휘관이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달렸다. 우리는 한 덩이가 되어 울퉁불퉁 자갈이 깔린 강가를 달려 백여 미터 떨어진 숲으로 뛰었다. 그러나 숲에 들어서기 전에 총소리가 울렸다. 내 옆에서 달리던 파블로가 쓰러졌고, 바위 위에 붉은 피가 흘렀다. 돌아보니 빅토리아도 총에 맞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나는 숨을 헐떡였고 연달아 루벤이 쓰러지자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루벤이 땅에 고꾸라지며 머리를 바위에 부딪혀 ‘쿵’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어린 리사가 우리 뒤에서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걸음이 느려 우리를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속도를 늦춰 리사의 손을 잡았지만, 손을 잡는 순간 총소리가 울리고 리사도 엎어졌다 ..  〈78쪽〉


 ‘기록되는 역사’와 ‘기록되지 않는 역사’가 있어요. 지난날 조선-고려-신라-발해-고구려-백제-가야-…… 임금들 이름은 역사에 잘 남아 있습니다. 신하들 이름도 잘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우리 삶터를 지키고 있던 보통사람들, 백성들 이름은 한 줄도 안 남아 있습니다. ‘궁중 음식 요리법’은 역사책에 남아도, ‘보통사람들 상차림’은 어디에도 안 남습니다. ‘궁중 문화와 전통과 옷차림과 살림살이’는 역사책에 남고 문화재가 되어도 ‘보통사람들 문화와 전통과 옷차림과 살림살이’는 구지레한 쓰레기 대접만 받습니다.

 ‘기록되는 사진’과 ‘기록되지 않는 사진’을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지금 우리 사회는, 교육 틀거리는, 삶터 얼거리는, ‘기록되는 사진’만 보도록, 이런 사진만 배우도록, 이런 사진만 느끼도록 흘러가고 있지 않나요. ‘기록되지 않는 사진’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거나 없는 듯 여겨지지 않나요. 그러면서 우리 스스로도 이런 데에는 눈길을 안 두지 않나요.


.. 나는 뛰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불붙은 집 앞에 시체가 하나 쓰러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다른 시체, 또다른 시체가 보였다. 잿더미가 된 우리 마을 여기저기에 시체가 널려 있었다. 마을에서 군인들에게 죽음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들판에 쓰러져 있었다. 소총이나 헬리콥터에서 쏘아대는 기관총을 맞고 쓰러진 것이었다. 늦은 오후 황혼 속에, 나무에서 떨어진 나뭇가지처럼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뭇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었다. 이모들, 삼촌들, 할아버지들, 그리고 이웃들이었다 ..  〈85쪽〉


 저는 헌책방 한 가지를 찍습니다. 헌책방은 제 마음이 쉴 자리이며 제 몸을 추스르는 자리인데다가 제 뜻을 펼치고 제 꿈을 다독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세월을 넘나드는 책이 있고, 나라와 문화를 넘어서는 온갖 책이 함께하는 자리입니다. 잘난 책이 없으며 못난 책이 없습니다. 모두 똑같은 책입니다. 앞서가는 책이나 뒤처지는 책이 따로 없습니다. 100해를 묵었건 한 달밖에 안 되었건, 그때그때 우리 형편과 터전에 걸맞는 이야기를 우리 스스로 찾아내고 밝혀내고 담아낼 때 빛이 되어 주는 책이 있는 자리입니다.

 이 헌책방을 찬찬히 다녀 보지 않은 분들은 ‘헌책방은 지저분한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싸구려 책이 있는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어둡고 어수선한 곳이다’라든지 ‘헌책방은 책방 임자가 바가지를 씌우는 곳이다’라든지 ‘헌책방 임자는 책도 모르는 바보다’ 따위 생각을 품습니다. 이리하여 이곳을 사진에 담을 때 이런 치우친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자기가 바라보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니,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무슨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요. 이런 사진으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 마음을 짠하게 움직이는 사진을 남길 수 있을는지요.


.. 곧바로 다른 여자 하나가 끌려나왔고 강간이 계속되었다. 군인들은 서로 먼저 하겠다고 다투었다. 몇 시간 동안 나는 마치치나무에 매달려 시체가 불에 던져지는 걸 봤다. 군인들은 칼로 시체에서 금니를 도려낸 다음 굶주린 불길에 던져 넣었다. 눈을 감고 싶었지만, 들키거나 떨어질까 봐 무서웠다. 대신 두 귀를 틀어막았지만, 절박한 비명과 고통의 신음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여러 가지의 다른 마야어가 비명과 울부짖음과 함께 울려퍼졌다. 군인들이 지껄이는 소리와 농담은 오직 한 가지 언어, 에스파냐어뿐이었다 ..  〈120쪽〉


 - 3 -


 헌책방마다 이름이 있습니다. 배다리 한미서점, 부개 책사랑방, 용산 뿌리서점, 노량진 책방 진호, 진주 동훈서점, 제주 책밭서점, 보수동 우리글방, 원동 육일서점, 목동 수현헌책방, 원당 집현전, 신촌 공씨책방, 연대 정은서점, 연신내 문화당, 수원 오복서점, 중앙동 보문서점, ……. 이름이 있다 함은 모두 고유한 자기 삶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저한테는 ‘최종규’라는 이름이, 제가 쓴 이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한테는 그분들마다 자기 이름이 고유하게 있습니다. 고유한 이름 하나는 그 사람 모두를 가리킵니다. 우주와도 똑같은 그이 한 사람, 너나없이 소중한 목숨붙이 하나. 이 고유함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사진기로 들여다보는 눈이 반짝 빛난다고 느낍니다.


.. 때로는 낯선 사람들이 피난민들에게 다가와 방향을 일러 주고 군인들이 어디에 주둔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군대를 위해 함정을 놓는 게 아닌가 경계했다. 그 사람들 말을 믿었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죽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끝없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렸고 서로 아무도 믿지 않았다 ..  〈132∼133쪽〉


 이름을 알지 못할 때, 아니 이름을 생각하지 못할 때, 아니 이름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는 무슨 사진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요. 나와 남이 아닌 ‘최종규’와 ‘아무개’가 아니라면 어떤 사진이 나올까요. 이웃과 동무와 살붙이가 아닌 구경꾼이나 떠돌이라면 사진에 담기는 모습은 어떠할까요.


.. 내가 밀어 쓰러뜨린 난민들은 어쩔 수 없이 다음 기회를 잡으러 다시 트럭 쪽으로 몰려갔다. 나는 넓은 곳으로 나와 방수막을 위필 안에 감췄다. 파란 방수막은 대충 텐트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큼직했다. 드디어 집이 생긴 것이다. 방수막을 살펴보며 흡족해하다가, 고개를 들어 내가 밀어낸 할머니 둘을 흘깃 보았다. 할머니들은 무리에서 돌아서서 가는 길이었다. 한 할머니는 심하게 다리를 절었고 다른 할머니가 부축했다. 둘 다 울고 있었다. 그 순간 갑자기 수치심이 몰려왔다. 저 할머니들은 나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방수막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저 할머니들은 오늘밤 추운 데서 자야 하는 걸까? 내일이면 해를 가릴 곳 하나 없어 뜨거운 햇볕 아래서 시체로 발견되는 건 아닐까? 모두 나 때문이다.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 되어 버린 걸까? 나의 기품이란 건 내 몸의 때만큼이나 얄팍했던 것일까? 고작 방수막 하나에 자존심을 버리고 말다니. 이렇게 살려면 살아남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엄마 아빠가 지금 내 모습을 봤으면 부끄러워했을 것이다 ..  〈146쪽〉


 저는 돈이 없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사진기를 쓰지 못합니다. 쓰고픈 사진기를 장만하지 못합니다. 몇 차례 여러 해에 걸쳐 적금을 부은 뒤 렌즈 하나, 몸통 하나 장만하기는 했는데, 두 번 도둑을 맞았고, 지금은 가까스로 새 사진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더 돈을 모을 길이 없어서 장비가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더 나은 장비가 없다고 사진을 못 찍을 일이란 없습니다. 더 나은 필름을 못 쓴다고 해서 더 훌륭한 사진을 못 찍을 일 또한 없습니다. 값비싸고 대단한 필름을 쓴다고 해도, 사진기로 바라보는 세상이 좁다면, 사진기 눈구멍으로 겉모습밖에 읽어낼 수 없다면, 쓰레기하고 다를 바 없는 사진밖에 안 나오잖아요. 그저 1회용품 사진만 나오잖아요.


.. “미국에서 카이빌을 무장하고 훈련시켰어요.”
 “미국사람들은 나쁘지 않아요. 미국인들이 수용소에 있는 우릴 도와주잖아요. 구호품 대부분은 미국에서 온 거예요.”
 내가 말했다.
 “미국 시민들이 그러는 거지. 미국 정부는 달라. 미국인들은 대부분 자기 정부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라. 알고 싶어하질 않는 거지.”
 젊은 남자가 덧붙여 말했다 ..  〈156쪽〉


 ‘로모’라고 하는 사진기를 사서 쓰는 분을 자주 봅니다. 하지만 이분들 가운데 ‘여러 해에 걸쳐 꾸준하게’ 로모 사진기로 사진을 찍는 분이 많지 않습니다. 남들이 사서 쓰니까, 재미있으니까, 몇 번 쓰다가 다시 중고로 내다 팔곤 합니다. 디지털사진기도 비슷합니다. 화소수가 더 높은 게 나오니까, 더 쓰기 좋다고 하는 게 나오니까 자꾸자꾸 바꿉니다. 어쩌면 새로운 사진기로 바꾸어 새 기능을 익히는 데에 온 시간을 빼앗기고, 정작 자기가 바라거나 좋아하는 모습을 찍는 데에는 시간을 못 쓰는지 몰라요. 사진에 담을 대상을 찾고 느끼고 생각하고 함께하는 데에 시간을 못 보내고, 기계 다루는 데에 시간을 다 쏟으니, 정작 사진에 담기는 모습이라곤 알맹이가 없겠지요. 아무 모습이나 마구마구 찍다가는, 나중에 정리할 때 다 지워 버리겠지요.

 자기가 찍은 사진을 한 번이라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지, 자기가 찍어 놓고도 다시는 볼 일이 없어서 셈틀 용량만 꽉꽉 채워서 짐덩이로만 만드는지 돌아볼 일이라고 느낍니다.


.. 누더기공이 너덜너덜 자꾸 풀어져서, 나는 얼굴을 익힌 구호요원한테 다가갔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이렇게 부탁했다.
 “공 한 개 구해 주실 수 있어요?”
 미국인 구호요원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기가 놀이터니? 여긴 난민 수용소잖아.”
 “아이들은 다시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야 해요.”
 구호요원이 화를 내지 않을까 겁이 났지만 나는 계속 매달렸다.
 “행복해지려면 놀이가 필요해요. 놀기 위해서 제대로 된 공이 필요하고요.”
 “수용소에 필요한 건 의약품과 식량이야.”
 “공이 약이에요. 아이들을 다시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약이요.” ..  〈169∼170쪽〉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지는 오늘 하루군요. 이제 저도 사진기를 둘러메고 요 앞 헌책방 한 곳에 찾아가서 책 구경을 해야겠습니다. 슬슬 책을 둘러보면서 사진 몇 장 찍어야겠어요.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헌책방을, 제가 좋아하고 애틋하게 느껴지는 헌책방에서 제 마음에 빛이 되는 책 하나를 찾고, 제 마음 깊숙한 데에서 느껴지는 모습을 차분히 담아야겠어요.


 - 4 -


 이야기책 《나무소녀》는 과테말라 내전을 줄거리로 담습니다. 하지만 ‘내전’이라는 말을 붙이기 멋쩍습니다. 미국 뒷배를 받는 독재정권이 과테말라 보통사람들을, 또 산골과 시골에 사는 토박이들을 괴롭힐 뿐 아니라 끔찍하게 죽이고 마을을 없애서 난민을 만들고 서로가 서로를 못 믿는 얼치기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을 놓고 ‘내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사람 그대로 볼 줄 모르고, 사람 삶터를 사람 삶터 그대로 아낄 줄 모르고, 어떤 눈먼 잇속을 챙기려는 움직임 때문에 고달파하며 목숨까지 잃어야 하는 아픔을 한 마디 ‘과테말라 내전’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학살에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갔고, 수많은 마을이 사라졌습니다. 이들 과테말라 토박이는 역사에 이름 한 번 남은 적이 없고, 이들 삶터는 지도책에 그림 한 번 그려진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기록되지 않은 사람이자 마을’이 ‘기록되지 않은 학살’에 송두리째 날라가 버렸다고 할까요.

 우리들은 ‘세상에 이런 일이 다 있나?’ 할 수 있고, ‘에이, 꾸며낸 이야기겠지?’ 하며 스쳐 지나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테말라 토박이들한테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며, 잊혀지지 않는 생채기입니다. (4340.4.24.불.ㅎㄲㅅㄱ)


.. 내가 학살에서 살아남은 건 내가 겁쟁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강하기 때문에,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 ..  〈1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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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9-12 0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록되지 않은 사진, 저도 이 책을 읽었었지만 님의 글은 정말 인상 깊은 리뷰네요.
카불의 책장수, 리뷰를 따라 왔다가 이렇게 두루 읽고 갑니다. 그냥 가기 미안해서
인사드리구요^^ 반갑습니다.

숲노래 2007-09-13 0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꽤나 긴 글이었는데, 애써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