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은 모르고 ‘토핑’만 안다면

[오락가락 국어사전 48] 너무 더딘 올림말



  한국말사전에 갖가지 영어가 부쩍부쩍 깃듭니다. 이와 달리 한국에서 예부터 널리 쓰던 낱말조차 제때 오르지 못합니다. 곳곳에서 잘 가다듬어서 쓰는 ‘느린그림’이나 ‘맞이방’ 같은 낱말도 아직 사전에 없어요. 살뜰히 손질해서 널리 쓰는 낱말조차 한국말사전이 못 담을 만큼 더딘 모습이 아쉽습니다. 앞으로는 달라져야겠지요. ‘고명’이란 오랜 한국말을 몰라서 ‘토핑’ 같은 영어를 버젓이 올림말로 삼는 사전이란 참으로 엉성합니다.



우아하다(優雅-) :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고상하다(高尙-) :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

기품(氣品) : 인격이나 작품 따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품격

품위(品位) : 1. 직품(職品)과 직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2.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 3. 사물이 지닌 고상하고 격이 높은 인상

아름답다 : 1. 보이는 대상이나 음향, 목소리 따위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눈과 귀에 즐거움과 만족을 줄 만하다 2. 하는 일이나 마음씨 따위가 훌륭하고 갸륵한 데가 있다



  한자말 ‘우아하다’는 ‘고상 + 기품 + 아름답다’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고상’은 ‘품위’로, ‘품위’는 ‘기품/고상’으로, ‘기품’은 ‘고상/품격’으로 돌고 도는 풀이입니다. ‘우아하다’는 “→ 아름답다”로, ‘고상하다·기품·품위’는 “→ 훌륭하다”로 다룰 노릇입니다.



연시(軟枾) : = 연감

연감(軟-) : 물렁하게 잘 익은 감 ≒ 연시(軟枾)·연시감·홍시(紅枾)

홍시(紅枾) : = 연감

연시감(軟枾-) : = 연감

물렁감 : ‘연감’의 북한어

말랑감 : x

붉은감 : x



  말랑해서 먹음직스러운 감은 붉습니다. ‘연시’란 “말랑하고 붉은 감”이지요. 그런데 사전에는 ‘연시·연감·홍시’는 나와도 ‘말랑감·붉은감’은 없습니다. 얄궂어요. ‘연시감’은 겹말인데 이런 낱말까지 사전에 있어 더 얄궂습니다. 그리고 ‘물렁감’을 북녘말로 다룹니다만, 썩 옳지 않습니다. 남북녘이 함께 쓰는 말일 뿐이에요. ‘연시감’은 사전에서 털어내고, ‘연시·연감·홍시’은 “→ 말랑감. 물렁감. 붉은감”으로 다루면서, ‘말랑감·붉은감’을 올림말로 다루어야겠습니다.



머리깎기 : x

머리다듬기 : x

머리손질 : x

이발(理髮) : 머리털을 깎아 다듬음



  지난날에는 머리를 깎는 일이 드물었다면, 이제는 흔히 머리를 깎습니다. 그렇지만 머리를 깎는 일을 놓고 아직 사전에 올림말이 마땅히 없습니다. ‘머리깎기·머리다듬기·머리손질’을 올림말로 삼으면서, ‘이발’은 “→ 머리깎기. 머리다듬기. 머리손질”로 다룰 만합니다.



느린그림 : x

슬로비디오(slow video) : [연영] 비디오테이프 재생 수법의 하나. 빠른 움직임을 느린 움직임으로 바꾸어 재생한 화면으로, 운동 중계나 기술 분석 따위에 이용한다 ≒ 저속 재생



  ‘느린그림’이란 낱말을 쓴 지 꽤 되었으나 아직 사전에 못 오릅니다. 언제쯤 ‘느린그림’을 사전에 싣고서 ‘슬로비디오’를 털어내거나 “→ 느린그림”으로 손볼 수 있을까요.



애피타이저(appetizer) :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식전에 먹는 음료나 요리

디저트(dessert) : 양식에서 식사 끝에 나오는 과자나 과일 따위의 음식. ‘후식(後食)’으로 순화

후식(後食) : 1. 나중에 먹음 2. 식사 뒤에 먹는,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따위의 간단한 음식

앞밥 : x

뒷밥 : x

입씻이 : 1. 입씻김으로 돈이나 물건을 줌. 또는 그 돈이나 물건 2. = 입가심

입가심 : 1. 입 안을 개운하게 가시어 냄 ≒입씻이 2. 더 중요한 일에 앞서 가볍고 산뜻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전채(前菜) : = 오르되브르

오르되브르(<프>hors-d’œuvre) : 서양 요리에서,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식사 전에 나오는 간단한 요리. 또는 술안주로 먹는 간단한 요리 ≒ 전채(前菜)



  사전에 ‘디저트’에 ‘애피타이저’까지 올림말로 있습니다. ‘입씻이·입가심’ 같은 낱말이 있지만, ‘디저트·애피타이저’를 어떻게 가다듬어야 좋을는지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후식’ 하나 덜렁 싣습니다. 이러면서 ‘전채·오르되브르’ 같은 낱말도 싣는데요, ‘앞밥·뒷밥’을 올림말로 실으면서 ‘입씻이·입가심’으로 손질해서 쓰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애피타이저·오르되브르’는 털어내면서 ‘앞밥’을 쓰도록 알리고, ‘디저트·후식’은 “→ 뒷밥. 입가심. 입씻이”로, ‘전채’는 “→ 앞밥. 입가심. 입씻이”로 다룰 노릇입니다. 또는 ‘앞가심·앞씻이·먼젓밥’이나 ‘뒷가심·뒷씻이·나중밥’ 같은 낱말을 쓸 만합니다.



오래살다 : x

장수(長壽) : 오래도록 삶 ≒ 노수(老壽)·대수(大壽)·대춘지수·만수(曼壽)·만수(萬壽)·수령(壽齡)·영수(永壽)·용수(龍壽)·하년(遐年)·호수(胡壽)



  오래 살기에 “오래 살다”인데, 이를 나타내는 한자말로 ‘장수’를 비롯해 열 가지 한자말을 싣는 사전입니다. ‘장수’는 “→ 오래살다”로 다룰 만합니다. ‘오래살다’를 새말로 삼을 수 있어요. 열 가지 다른 한자말은 모두 사전에서 털어낼 노릇입니다.



풀물 : 풀에서 나오는 퍼런 물

녹즙(綠汁) : 녹색 채소의 잎이나 열매, 뿌리 따위를 갈아 만든 즙. 넓은 의미로는 당근과 같이 녹색이 아닌 채소를 갈아 만든 것도 포함한다. 칼슘과 비타민 케이(K) 따위가 많아 건강식품으로 분류된다

과일물 : [북한어] ‘과실음료’의 북한어

과즙(果汁) : = 과일즙. ‘과일즙’으로 순화

과일즙(-汁) : 과일에서 배어 나오거나 과일을 짜서 나온 즙 ≒ 과실즙·과즙·실과즙·열매즙



  풀에서 나오는 물은 ‘퍼런’ 물이 아닌 ‘푸른’ 물입니다. 사전풀이가 어긋납니다. 풀을 짠 물은 ‘풀물’이라 하면 되어요. ‘녹즙’은 “→ 풀물”로 다루면 되지요. ‘과즙·과일즙’은 “→ 과일물. 열매물”로 다루면 되고요.



맞이방 : x

로비(lobby) : 1. 호텔이나 극장 따위에서 응접실, 통로 등을 겸한 넓은 공간. ‘복도’, ‘휴게실’로 순화 2. 국회 의사당에서 의원들이 잠깐 동안 머물러 쉴 수 있도록 마련하여 놓은 방. ‘휴게실’로 순화 3. 권력자들에게 이해 문제를 진정하거나 탄원하는 일. ‘막후교섭’으로 순화

휴게실(休憩室) : 잠깐 동안 머물러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방 ≒ 연실(燕室)

막후교섭(幕後交涉) :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하게 은밀히 하는 교섭

쉼터 : 쉬는 장소

lobby : 1. 로비(공공건물 현관 입구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기다릴 수 있는 공간) 2. (영국 의회에서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는) 로비[의원 면담실] 3. (정치적) 압력 단체 4. (정치적) 압력 단체



  버스나 기차나 비행기를 타면서 사람들이 기다리는 곳을 ‘맞이방’으로 고쳐쓰기로 했는데, ‘맞이방’은 아직 사전에 못 오릅니다. 영어 ‘로비’를 ‘복도·휴게실’로 고쳐쓰라 풀이하지만, 이 뜻으로만 보더라도 ‘로비’는 “→ 골마루. 쉼터”라 하면 되어요. 더 헤아린다면 “→ 쉼터. 쉼나루. 맞이나루. 손님나루. 맞이터”로 다루어도 어울려요. ‘맞이나루·손님나루·맞이터’ 같은 낱말을 새로 지어서 쓸 만합니다. 이밖에 ‘막후교섭’ 같은 한자말은 “→ 뒷힘”으로 다루어도 될 테지요. 때로는 “→ 뒷자리. 뒷모임. 뒷만남”으로 다루어도 어울립니다.



캠핑(camping) : 산이나 들 또는 바닷가 따위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함. 또는 그런 생활

camping : 캠핑, 야영

야영(野營) : 1. 군대가 일정한 지역에 임시로 주둔하면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시설들을 갖추어 놓은 곳. 또는 거기서 하는 생활 2. 휴양이나 훈련을 목적으로 야외에 천막을 쳐 놓고 하는 생활 ≒ 노영(露營)·들살이

들살이 : = 야영(野營)



  들에서 지내기에 ‘들살이’입니다만, 한국말사전이나 영어사전 모두 한국말을 어떻게 다루어야 좋을는지를 모릅니다. ‘캠핑·야영’은 “→ 들살이. 들살림”으로 다룰 만합니다. 또는 ‘들잠·들마실’을 쓸 수 있어요.



고명 : 음식의 모양과 빛깔을 돋보이게 하고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음식 위에 얹거나 뿌리는 것을 통틀어 이르는 말. 버섯·실고추·지단·대추·밤·호두·은행·잣가루·깨소금·미나리·당근·파 따위를 쓴다 ≒ 웃고명

웃고명 : = 고명

토핑(topping) : 1. 요리나 과자의 끝마무리에, 재료를 올리거나 장식하는 것. 잘게 썬 견과, 깎은 초콜릿 따위로 한다 2. [화학] 원유를 증류하여 끓는점 범위가 다른 유분(留分)으로 가르는 조작

topping : (음식 위에 얹는) 고명, 토핑



  한국말사전은 영어 ‘토핑’을 어떻게 다루어야 좋은가를 모르나, 외려 영어사전은 ‘고명’으로 풀이해 놓습니다. ‘토핑’ 같은 영어는 한국말사전에서 털 만해요. ‘고명’ 뜻풀이를 둘로 갈라서 예부터 쓰는 뜻하고 새롭게 쓰는 뜻으로 잘 풀이하면 좋겠습니다.



사부(師父) : 1. ‘스승’을 높여 이르는 말 2. 스승과 아버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

사부님(師夫-) : 스승의 남편을 높여 부르거나 이르는 말

스승 :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 사부

스승님 : ‘스승’을 높여 이르는 말



  한자말 ‘사부’를 높임말처럼 다루는 사전이나 옳지 않아요. ‘스승’을 높이는 말은 ‘스승님’입니다. ‘사부’는 “→ 스승”으로 다루면 될 뿐입니다. 사전에 ‘사부님’이 올림말로 나오기도 하는데, 한자를 달리 적는 ‘師夫’를 높이는 말이라 하는군요. 이런 말을 쓸 일이 있을까요? 우리는 ‘스승·스승님’을 알맞게 쓰면 됩니다.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