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여름빛을 누리는 길 (2019.7.24.)

― 광주 〈소년의 서〉

광주 동구 충장로46번길 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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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이 깊어갑니다. 햇볕이 후끈하고 바람이 시원하며 구름이 해맑고 소나기가 죽죽 온누리를 적시는 기운을 듬뿍 머금으면서 온통 푸르게 물들기에 여름빛이라고 느낍니다. 더우니까 여름이랄까요. 이 더운 기운을 온몸으로 누리면서 새롭게 어깨를 펴는 여름이랄까요.


  우리 집에서는 선풍기조차 없이 바람을 끌어들입니다. 나무하고 풀을 스치는 바람이 찾아들면 부채조차 부질없습니다. 바람이 후 불면 그저 눈을 감고서 이 싱그러우면서 시원한 바람으로 온몸을 샅샅이 씻습니다.


  여름에 바람을 쐬면 매우 튼튼할 수 있습니다. 땀이 좀 흐르더라도 바람은 땀을 맑게 씻어 줍니다. 둘레 볕살을 섣불리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살갗이 즐겁게 숨을 쉬도록 이끌어요. 이와 달리 선풍기는 둘레 볕살하고 동떨어진 바람이요, 에어컨은 아예 둘레 볕살을 가로막는 바람이니, 이 두 가지를 자꾸 쏘이면 몸이 무너지겠구나 싶습니다.


  여름이기에 홑옷을 가볍게 두른다든지, 아예 맨살을 해랑 바람에 드러내면 좋을 텐데, 이제 이 땅 어디를 가든 시골버스나 군청 같은 데조차 너무 차가운 에어컨이 춤을 추면서, 여름에 외려 긴소매에 겹옷을 두르는 이들이 늘어납니다. 자동차에서 하나같이 에어컨이니 여름에는 긴소매에 겨울에는 뜬금없이 반소매를 두르는 사람이 늘어나요.


  그러께에 광주 〈소년의 서〉를 찾아올 적에는 광주라는 고장이 어떤 길인지 잘 몰라서 택시를 탔습니다. 그동안 이태가 지났다고 이제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움직이는 길을 조금 익혔습니다. 버스나루에서 일곱걸음이던가, 부드럽게 달려서 충장로 쪽에서 내리고, 어디로 가야 하나 하고 어림하면서 천천히 걸어서 〈소년의 서〉에 닿습니다.


  샛골목에는 바람이 가볍게 일렁이지만, 책꽂이가 빽빽한 〈소년의 서〉에는 좀처럼 바람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이런 여름날에는 〈소년의 서〉 책꽂이를 모두 골목으로 빼내고 해가림천을 세워서 ‘골목바람을 누리는 책집’으로 꾸미면 어떠려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누구입니까》(리사 울림 셰블룸/이유진 옮김, 산하, 2018)를 문득 봅니다. 옮긴이 이름이 낯익습니다. 스웨덴말을 한국말로 옮기느라 애쓰셨네 하고 느끼면서 읽습니다. 한국에서 낳은어버이를 잃고서, 스웨덴에서 ‘기른어버이’ 품에서 자라며 고된 삶을 지은 이들이 온마음 바쳐서 엮은 알뜰한 이야기꾸러미입니다.


  《이갈리아의 딸들》(게르드 브란튼베르그/히스테리아 옮김, 황금가지, 2016/고침판)은 1996년에 한국말로 처음 나왔다는군요. 그해 1996년은 강원도 양구 멧골짝에서 군인으로 지냈습니다. 이해에 나온 책은 한 가지도 모릅니다. 2016년에 고침판으로 새로 나왔다는 이 소설책을 이제야 손에 쥐어 봅니다. 가시내하고 사내가 이 지구별에서 맡은 몫을 확 뒤집어서 그대로 그립니다. 재미있으면서도 거북하게 잘 그렸구나 싶어요. 이 ‘거북함’이란, 이 지구별에서 사내들이 느껴야 할 대목일 텐데, 사내들 주먹다짐 같은 힘으로 굴러가는 오늘날 얼거리란 어깨동무하고 동떨어진 ‘거북한 길’인 줄 깨닫고서 이를 다같이 고쳐 나가야 할 노릇 아니겠느냐 하고 대놓고 따지는 줄거리이지 싶어요.


  광주에 살짝 들른 터라 고흥으로 돌아갈 길을 어림하는데, 〈소년의 서〉 책지기님이 이곳에서 걸어서 가까운 〈러브 앤 프리〉를 꼭 가 보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꼭 가 봐야겠지요. 걸어서 갈 만하다는 말씀에 걸어서 가 보는데, 등짐이 없이 가벼운 차림이라면 사뿐한 길이지만, 등짐을 잔뜩 짊어진 몸으로는 그리 가뿐하지는 않네 싶습니다.


  그나저나 〈러브 앤 프리〉를 들러서 버스나루로 가려고 하는데, 두 분한테 길을 여쭈었으나 두 분 모두 엉뚱한 데를 알려주었어요. 곰곰이 생각하니, 요새는 도시에서도 시내버스를 안 타는 분이 많겠구나 싶어요. 버스나루에서 책집까지는 시내버스로 잘 왔으나, 버스나루로 돌아갈 적에는 엉뚱한 곳에서 헤매다가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일꾼이 문득 한말씀 합니다. “저도 택시만 모니까 시내버스나 전철은 어떻게 다니는 줄 몰라요.” 이제 버스길이나 전철길은 ‘마을사람’ 아닌 ‘손전화’한테 물어볼 노릇이로군요. ㅅㄴㄹ

























※ 글쓴이

숲노래(최종규) : 사전을 쓰는 사람. 《우리말 글쓰기 사전》, 《이오덕 마음 읽기》, 《새로 쓰는 비슷한말 꾸러미 사전》, 《읽는 우리말 사전 1·2·3》, 《우리말 동시 사전》, 《새로 쓰는 겹말 꾸러미 사전》, 《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 《시골에서 살림 짓는 즐거움》, 《시골에서 책 읽는 즐거움》, 《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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