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꽃―푸르게 읽는 책

《크리스 조던》 크리스 조던, 인디고서원, 2019.



푸른목소리 : 솔직히 작가가 안정적인 직업인가 생각도 들어서 망설이게 돼요.



  저는 사전을 쓰는 일을 합니다. 이밖에 온갖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하고, 이웃을 만날 적에는 동시를 써서 건네는 일도 합니다. 이제껏 사전이라는 책을 쓰며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는 살림을 건사하면서 배운 삶을 이야기로 들려주는 일도 하지요.


  아침저녁으로 우리 집 나무한테 말을 거는 일이라든지, 나무줄기에 손을 짚거나 볼을 대고서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일도 해요. 쑥잎이나 뽕잎이나 감잎을 훑어서 말린 다음에 찻잎이 되도록 덖는 일도 하고, 우리 집에서 함께 살아가는 갖은 풀벌레를 물끄러미 지켜보는 일이라든지, 이 풀벌레를 손등이나 어깨나 팔뚝에 앉혀서 마음으로 이야기꽃을 피우는 일도 합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파랗게 빛나는 바람을 숨 한 줄기로 흐으읍 하고 마시면 제 몸은 어떤 파란빛으로 맑게 거듭나려나 하고 생각하는 일도 합니다. 비가 올 적에는 되도록 가볍고 짧은 차림새로 마당에 서서 빗물을 흠씬 맞으면서 몸씻이도 하고 빗물하고 신나게 노는 일도 해요.


  자, 이런저런 ‘일’, 제가 누리거나 하거나 짓는 일을 몇 가지 적어 보았습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일을 꽤 해요. 다만, 저는 제가 하는 일을 가만히 꼽으면서 ‘일’이라고 했을 뿐, 이를 ‘직업’이나 ‘생계’ 같은 말로는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저를 바라보는 이웃님은 저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쏭달쏭하다고 하더군요. 이때에는 그저 제 이름 ‘숲노래’를 불러 주시면 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나라밖으로 볼일을 보러 가자면 여러 가지 증명서에 제 ‘일’ 또는 ‘직업’을 적어야 합니다. 이때에 저는 “Korean-dictionary writer”라 적습니다. 이름 그대로 저는 “한국말사전을 새롭게 써서 꾸러미로 묶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이러한 돈벌이를 둘레에서는 ‘직업’이라 여깁니다.


  책을 새로 내놓기 무섭에 온갖 신문이며 방송에서 띄워 주고, 출판사에서 목돈을 들여 광고를 실어 많이 팔아 주는 글님(작가)이 있습니다. 이러한 글님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몇 안 됩니다. 척하고 책을 냈더니 10만 권이나 100만 권을 가볍게 팔아치울 수 있는 글님은 적어요. 이런 삶터를 헤아리자면, 푸름이 여러분이 “글을 써서 돈을 꾸준히 넉넉히 벌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딱 잘라서 말씀을 여쭈어야겠습니다.


  한 마디를 보태어, “돈을 꾸준히 넉넉히 버는 일”을 찾고 싶다면 “푸름이 여러분은 글을 안 쓰는 길을 가시기 바랍니다” 하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는 다른 곳에서도 매한가지예요. 돈을 꾸준히 넉넉히 벌 수 있는 길을 찾는다면, 작가로뿐 아니라, 청소부로도, 교사로도, 공무원으로도, 편의점 곁일꾼으로도, 가정저부로도, 미용사로도, 여느 회사원으로도, 공장 일꾼으로도, 그 어느 곳으로도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돈을 잘 버는 일”이란 그저 돈을 잘 버는 일일 뿐, 우리 삶을 즐겁거나 아름답게 가꾸는 일이 아니에요. 돈을 잘 벌기에 신나거나 사랑스러운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내가 바라는 이 길이 안정적인 직업이 안 될 듯하다”면서 걱정합니다만, “돈을 꾸준히 잘 버느냐 아니냐”는 푸름이 여러분이 어느 일을 어떠한 마음하고 몸짓으로 어느 만큼 오래도록 꾸준히 기쁘고 보람차게 하느냐에 달릴 뿐입니다. 어느 곳에서 어느 일을 하든, 푸름이 여러분이 즐겁고 착하며 참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서 그 일을 한다면, 어느새 돈을 꾸준히 잘 버는 길을 걷기 마련이에요. 이와 달리 처음부터 “꾸준히 많이 돈이 될 만한가 아닌가”를 따진다면, 바로 이 돈이라는 사슬에 매여서 푸름이 여러분이 바라거나 꿈꾸는 길하고는 아주 동떨어지리라 느껴요.


  한 달 500만 원 벌면 넉넉한가요? 이쯤으로 넉넉하다면 한 달 490만 원은요? 480만 원은요? 470만 원은요? 460만 원은요? 자, 10만 원씩 내려 볼 테니까, 푸름이 여러분이 ‘이 밑으로는 안 된다!’를 잘라 보셔요. 어디에서 자를 만한가요? 그리고 10만 원을 더 주기에 더 나은 일자리가 될는지, 10만 원을 덜 받아도 한결 나은 일자리가 될는지, 푸름이 여러분이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저는 1994년이라는 해부터, 제 나이 열아홉이던 때부터 한국말사전을 스스로 새롭게 짓는 길을 걸었습니다. 다만,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길을 걷는 줄 알 뿐, 이 길을 걷는 제 삶이 “이 직업”이라고는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스스로 마음자리에 꿈이라는 씨앗을 심은 삶으로 하루를 맞이하면서 누립니다. 그래서 제 하루는 ‘사전 올림말을 추스르고, 뜻풀이를 가다듬고, 보기글을 새로 쓰고, 이래저래 자료를 갈무리하는 일’로도 쪼개지만, 집안일이나 아이돌보기로도 쪼개고, 나무랑 풀이랑 어울리는 일로도 쪼개며, 풀벌레랑 새하고 노래하는 일로도 쪼개고, 해랑 비랑 바람하고 얼크러지는 일로도 쪼개요.


  어느 쪽이 좋은지 모르겠어서 망설인다면 둘 다 해보기를 바랍니다. 푸름이 여러분은 나이도 몸도 젊어요. 그러니 “돈을 많이 벌 만한 곳”에서도 일해 보시고, “돈을 못 받거나 적게 버는 곳”에서도 일해 보셔요. 꿈하고 닿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몸으로 겪어 보시면 어느새 눈을 번쩍 뜨리라 생각해요.


+ + +


  “안정적인 직업”인가 아닌가로 망설이는 푸른벗한테 살그마니 건네고 싶은 책은 《크리스 조던》입니다. 이분은 영화를 찍는다고 해요. 이분이 찍는 영화에는 사람보다는 새가, 이 가운데 알바트로스라는 바닷새가 돋보인다고 합니다. 입으로 서로 말을 나눌 수 없는 사이인 새일 테지만, 크리스 조던 님은 알바트로스하고 “입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고 해요. 알바트로스를 마주할 적에 “마음으로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바닷새하고 마주하면서 바닷새 한삶을 영화로 찍는 길이란 얼마나 “아슬아슬하면서 돈이 될랑가 안 될랑가 알 수 없는 일”일까요? 척 보기에도 딱 “돈 안 될 만한”, 이러면서 품도 힘도 잔뜩 써야 하는 일이로구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 조던 님은 왜 “더 넉넉하고 꾸준한 돈”이 아닌, “바닷새하고 동무가 되어 이 지구라는 별을 푸르게 가꾸는 길에 징검돌이 되는 일”에 온마음을 기울일까요? 부디 이 마음이 무엇인지를 푸른벗 스스로 헤아려 보면 좋겠습니다. 제 입에서 흘러나올 ‘정답’을 기다리지 마시고, “바닷새하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감독” 눈빛을 푸른벗 여러분 마음으로 읽고 느껴 주면 좋겠어요.


  바닷새가 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무엇을 먹다가 죽는지, 우리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사람다운 길을 가는지, 모두 고이 마음으로 살펴 주셔요.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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