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이웃님 고장에 사랑꽃 (2019.7.30.)
― 강릉 〈고래책방〉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848
033.641.0700.
https://www.instagram.com/gore_bookstore
https://www.blog.naver.com/gore0001
강릉에 닿고서야 강원도에서 겨울올림픽을 치른 적 있은 줄 떠올립니다. 고흥서 강릉에 닿기까지 버스랑 기차에서 10시간을 보냈습니다.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면 이렇습니다. 그런데 고흥서 음성까지 대중교통으로 11시간이 걸리니, 외려 강릉까지는 좀 가까운(?) 길이었다고 느낍니다.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어디로든 쉽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만, 시골이나 작은마을에서는 어디로든 멀고 더디기만 한 나라예요. 무슨 뜻인가 하면, 모두 서울로 쏠린 나머지, 이 나라 골골샅샅 수수하고 아름다운 곳이 바로 옆마을하고 이어질 길조차 없이 싹둑 끊어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를테면 대중교통으로 강릉에서 영양에 가자면 버스를 갈아타고 가는 데에만 다섯 시간이고, 버스를 기다리는 데에 두 시간을 써야 하니, 모두 일곱 시간이 걸립니다. 전라도 고흥에서 보성읍이나 장흥읍에 가는 데에도 대중교통으로는 한나절을 옴팡 써야 하거나 더 걸리곤 하지요. 대중교통으로 고흥서 완도나 진도를 가자면 하루를 고스란히 써야 하고요.
사람들이 서울이나 부산에 가장 많이 몰려서 사는 까닭이 있습니다. 모두 다 서울하고 부산에 있다 할 만하거든요. 그러나 사람들이 서울이나 부산 아닌 데에서 즐겁게 살아가는 까닭도 있어요. 서울이나 부산에 갖가지 물질문명하고 문화가 쏠렸습니다만, 서울이나 부산에는 숲이 없어요. 서울이나 부산에는 맑은 냇물이나 하늘이나 땅이 없어요. 서울이나 부산에는 조용한 거님길이나 풀밭길도 없고요.
강릉에서 삶을 짓는 이웃님이 있어서 이분을 만나려고 작은아이하고 마실을 합니다. 함께 강릉 바닷가에 앉아 모래밭을 맨발로 느끼는데 작은아이가 바닷물에 발을 담그자며 손을 잡고 끕니다. 강릉 바닷물은 고흥 바닷물하고 비슷하면서 다릅니다. 고흥은 흙놀이를 할 만한 아주 고운 모래라면, 강릉은 투박하면서 굵은 모래입니다. 강릉은 사람이 미어터진다 할 만큼 바닷가가 시끄럽고 가게에 자동차가 가득하지만, 고흥은 우리 몇만 까르르 떠들면서 바닷물하고 한덩이가 되어 놉니다.
해가 지고서 〈고래책방〉에 찾아갑니다. 저녁에도 문을 여니 고맙게 찾아갑니다. 8월 3일부터는 ‘고래빵집’도 문을 연다고 해요. 이제 일곱 달을 조금 넘겼다고 하는 갓 태어난 책집인 〈고래책방〉인데요, 책꽂이가 매우 시원시원합니다. 더 많은 책을 꽂거나 갖추기보다는, 더 아늑하게 책을 두면서 쉼터까지 느긋하게 둡니다. 튼튼하며 알뜰한 책상이 길게 있습니다. 책꽂이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빵굼틀을 보면서 생각합니다. 그림책 《샌지와 빵집 주인》이 떠오릅니다. 빵냄새를 맡았다면서 돈을 물리려는 빵집지기가 있었다는데, 〈고래책방〉은 이곳을 찾는 이들이 빵냄새로도 배부르고 책내음으로도 마음부르도록 꾀하는 터로구나 싶습니다.
다만 〈고래책방〉에 머물 수 있는 틈은 매우 짧아 책 두 자락만 빠듯하게 고르고서 다시 길을 나섭니다. 먼저 그림책 《낱말 먹는 고래》(조이아 마르케자니/주효숙 옮김, 주니어김영사, 2014)를 고릅니다. 고래를 사랑하는 책집답게 고래를 이야기하는 책을 한켠에 잘 모아 놓았어요. 우리 책숲에 있는 그림책도 여러 자락 보이는데, 아직 안 갖춘 그림책 하나를 집어듭니다.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사라 룬드베리/이유진 옮김, 산하, 2018)를 보고 빙긋 웃습니다. 옮긴님이 스웨덴말을 알뜰히 여미는 길을 즐겁게 나아가네 싶어 반갑습니다. 다만 어린이 말씨를 아직 깊이 헤아리지는 못하고, 번역 말씨를 다 걷어내지 못합니다.
〈고래책방〉 아래칸(지하)에 깃든 ‘강릉을 사랑한 작가’ 칸을 바라봅니다. 저는 아직 강릉 이야기를 글로 쓴 적이 없습니다만, 저도 ‘강릉이란 고장을 사랑하는 글벗’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강릉도 영양도 안동도 장흥도 곡성도 광주도, 고루고루 사랑하는 글벗이 되고 싶달까요. 〈고래책방〉 윗칸(2층)으로 올라가니 여러 인문책을 살뜰히 갖춘 책꽂이가 반깁니다. 책마다 책집지기 눈썰미로 가린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앞으로 강릉이란 곳을 놓고서‘고래책방이 있어 아름다운 고장’이라고 이야기할 생각입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