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노래꽃 곁에 수다꽃 (2019.7.24.)
― 광주 〈러브 앤 프리〉
광주 남구 천변좌로418번길 17
https://www.instagram.com/lovenfree_book
서류 하나에 이름을 받는 일로 광주마실을 합니다. 이름 하나가 대수롭기에 바로 이 대수로운, 대단한, 엄청난 기운을 나누어 받으려고 고흥서 반나절을 달리는 광주로 갑니다. 광주버스나루에서 서류에 이름을 받고 우체국에 가서 부칩니다. 빗방울이 살짝 듣습니다. 고흥으로 바로 돌아갈까 하다가 애써 걸음을 했으니 광주에 있는 책집에 들러서 돌아가자고 생각합니다.
광주로 마실 나올 일이 잦지는 않지만 한걸음 두걸음 잇다 보니 광주 시내버스를 타는 일도 차츰 익숙합니다. 금남로 전철나루까지 시내버스를 타고 잘 달립니다. 시내버스에서 내리고 보니 동서남북이 헷갈립니다만 하늘이랑 구름을 바라보면서 ‘예전에 간 마을책집 〈소년의 서〉는 이 바람이 흐르는 곳에 있었어’ 하고 어림하면서 걷습니다. 길그림이나 길찾기가 아닌 바람결을 따라 책집을 찾아나섰고, 참말로 바람결이 이끄는 곳에 〈소년의 서〉가 있어요.
〈소년의 서〉에 살짝 들르고서 고흥에 돌아갈는지 마을책집 한 곳을 더 들를는지 망설이는데, 〈소년의 서〉 책집지기님이 “여기서 15분쯤 걸어가시면 젊은 친구들이 하는 멋진 책방이 있어요. “러브 앤 프리”란 이름처럼 사랑스러운 곳이에요. 꼭 가 보셔요.” 하고 말씀합니다. 이웃 책집지기님이 ‘사랑스러운 책집’이라고 귀띔하는 곳이라면 참으로 사랑스럽겠지요?
골목을 걷고 걷습니다. 광주 골목도 매우 살갑습니다. 이 살가운 멋이랑 맛을 광주에 계신 분도 살갗으로 깊이 느끼면서 느긋이 걷고, 해바라기를 하고 바람을 쐬고 꽃내음을 맡고, 돌턱에 앉아 다리쉼을 하겠지요.
마을쉼터가 있어 뒷간에도 들르고 낯을 씻고 다리를 쉽니다. 새로 기운을 내어 더 걸어서 〈러브 앤 프리〉에 닿습니다. 이 마을책집하고 마주보는 마을가게에 마을 할매랑 할배가 잔뜩 나앉아서 수다꽃을 피웁니다. 수다꽃 마을가게를 바라보는 고즈넉한 마을책집이란 무척 어울립니다. 더구나 〈러브 앤 프리〉는 무엇보다 시를 아끼는 곳이로군요.
등짐을 내려놓고서 《상어 사전》(김병철 글·구승민 그림, 오키로북스, 2018)을 넘깁니다. 제가 아는 상어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지는 않는구나 싶지만, 젊은 이웃님이 이런 도감을 쓰고 그린 대목만으로도 반가워서 덥석 집습니다. 웬만한 마을책집에 가도 으레 만나는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줌파 라히리/이승수 옮김, 마음산책, 2015)인데, 그동안 미뤄 두었는데 오늘은 집어들어서 읽어 보기로 합니다.
책집 한쪽을 가득 채운 시집 겉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단출하면서 단단하게 차려 놓은 시집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이 시집 가운데 어느 시집을 손에 쥐고서 고흥으로 돌아가는 시외버스에서 읽을까 하고 어림하다가 《작은 미래의 책》(양안다, 현대문학, 2018)을 집습니다.
1990년대에 태어난 분들은 이른바 ‘젊은 시인’이란 이름을 내겁니다. 예전에는 198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더 예전에는 197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더 예전에는 1960년대나 195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 ‘젊은 시인’이라 했어요. 가만히 보면 그 어느 곳보다 시나 소설을 이야기하는 판에서는 ‘젊은 글님’이란 이름을 으레 내겁니다. 글님이 젊기에 목소리가 젊다는 뜻일까요? 우리 삶터에는 젊은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는 뜻일까요? 그런데 몸나이로만 젊다고 할 만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몸나이 아닌 마음나이로, 또 넋나이로, 생각나이랑 꿈나이랑 사랑나이로 젊음을 말할 적에 비로소 곱게 피어나는 눈부신 ‘젊은 노래’가 태어나리라 봅니다.
시를 아끼는 〈러브 앤 프리〉에 《우리말 글쓰기 사전》 한 자락을 드리면서, 광주길에 시외버스에 쓴 동시 ‘홀’을 흰종이에 옮겨적어서 드렸습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