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뿌리가 될 (2017.7.13.)

― 전남 순천 〈형설서점〉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이곡1길 12

061.741.1069.



  순천 시내에 널찍하게 자리한 헌책집 〈형설서점〉은 넉넉하면서 느긋한 터전에서 새 보금자리를 틀려고 낙안으로 옮깁니다. 이러면서 순천 시내에도 헌책집을 그대로 둡니다만, 전라도하고 경상도를 가로지르면서 거두어들이는 알뜰한 헌책을 품을 너른 그릇으로 폐교 한 자리를 얻어서 가멸차게 북돋울 꿈을 키웁니다.


  2017년 여름날, 고흥에서 벌교로, 벌교에서 다시 시골버스를 타고 빙빙 돌아서 낙안에 깃든 〈형설서점〉을 찾아갑니다. 아직 책시렁 갈무리는 한참 멀었습니다만, 이곳저곳 돌아보다가 《인화여자중학교》 5회(1970) 졸업사진책을 만납니다. 인천에 있는 중학교 졸업사진책을 순천에서 만나는군요. 그런데 ‘선인재단’이란 이름으로 선 학교 가운데 이곳 인화여중이 1970년에 다섯째 졸업생을 내놓았네요. 새삼스럽습니다. 하기는, 제가 인천에서 태어난 해는 1975년이고, 대여섯 살이던 1980년까지 쳐도 그 선인재단은 반짝거리는 건물인 학교였겠지요. 그무렵 새로 지은 ‘맘모스 건물’을 자랑하는 사진이 졸업사진책 앞에 떡하니 있고 ‘별을 단 군인’ 모습을 뽐내는 이들 사진도 여자 중학교 졸업사진책 앞자리에 큼직하게 있습니다. 참으로 군사독재 무렵을 잘 보여주는 졸업사진책이에요.


  시집 《아무튼 씨 미안해요》(김중일, 창비, 2012)하고 《방울새에게》(민영, 실천문학사, 2007)를 고릅니다. 민영 님이 부르는 노래를 눈을 감고서 되새깁니다.


이 아파트의 / 유리 감옥 속에서 / 숲을 내다보는 것은 / 숲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 그 숲 속에 / 내 영혼의 쉼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숲과 별/40쪽)


  퍽 묵은 《다시, 산문에 기대어》(송수권, 오상,1985)를 집어듭니다. 고흥에서는 갑작스레 ‘송수권문학상’을 세웠습니다. 떠난 글님이 아닌, 산 사람인 글님 이름을 딴 문학상은 처음이라지요.


그러던 어머니가 겨울이 접어들자 시름시름 앓아눕더니 영 기동을 못하시었다. 생기 있던 한 해가 가고 다시 여름이 왔다. 하루는 먼 데서 의사가 와서 어머니 옆구리를 쨌고 옆구리에서는 고름이 솟구치더니 그 고름은 매일매일 걷잡을 수 없이 방바닥으로 흘러넘쳤다. 고름 걸레를 갈아대는 할머니의 팔자타령이 다시 시작되었고 쉬파리가 우글거리는 무더운 방 속에서 여름은 기슴을 부렸다. 그녀는 몰라볼 만큼 초췌해 갔으며, 주마담에는 고양이가 좋다 하여 집안에서는 하루에도 몇 마리씩 고양이가 죽었고 그 울음소리가 툇마루를 들썩거렸다. (210쪽)


  문학상이 새롭게 생기는 일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누가 심사위원이 되어 어떠한 이한테 어떤 빛이 될 상을 주려는지는 깊이 헤아려야지 싶어요. 끈이나 줄이 아닌 오롯이 마음 하나만 바라보면서 상을 편다면 말썽이 될 일이 없겠지요.


  한참 책시렁을 돌아보는데 〈형설〉 책지기님이 부릅니다. “어이, 그동안 읽은 책도 많고, 그대 도서관에 책도 많은데, 책은 좀 그만 보고 이야기 좀 하지? 앞으로 우리 책방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새로운 곳으로 옮기기는 옮겼는데, 하, 걱정투성이네. 이것도 손봐야 하고 저것도 고쳐야 하고.”


  《공자, 인간과 신화》(H.G.크릴/이성주 옮김, 지식산업사, 1983)까지만 고르기로 합니다. 참말로 여태 읽은 책도 많은데 아직 책을 더 만나서 자꾸 읽으려 합니다. 앞으로 배울 길이 넓으니, 이제부터 새로 깨우칠 삶이 깊으니, 책읽기를 고이 잇지 싶어요. 종이책만 읽지는 않습니다. 풀책도 나무책도 읽어요. 아이책도 곁님책도 읽지요. 다만 아직 제대로 못 짚는 종이책도 마음책도 많습니다. 이러한 책을 제대로 읽어내어 무엇보다 마음으로 깨어나서 사랑으로 일어서고 싶습니다.


공자는 이런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도 않았거니와, 실제로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 자신이 절대적인 진리를 갖고 있다는 숭고한 확신감도 없었고, 제자들이 단순한 축음기판이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가 되려면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할 만큼 현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98쪽)


  새로운 뿌리가 될 책집 하나가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곳을 찾아올 새로운 발걸음은 새로운 책에서 새로운 꿈을 보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서 새로운 숨소리를 듣는 하루를 누리리라 봅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만, 나무는 뿌리가 깊으면서 넓기 때문에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도 한달 수 있으나, 가만히 보면 뿌리가 깊으면서 넓기에 ‘바람에 따라 가만가만 흔들리면서 더욱 튼튼히 설 수 있다’고 느껴요. 비바람 치는 날 나무 곁에 서서 나무줄기에 손을 대면 알 수 있어요. 나무는 잔바람에도 가볍게 흔들립니다. 아니 춤을 춰요. 춤추는 나무이기에 뿌리가 깊고 넓지 싶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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