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책숲마실
우리가 다니는 곳 (2019.7.19.)
― 경북 구미 〈삼일문고〉
054.453.0031.
경상북도 구미시 금오시장로 6
https://www.instagram.com/samilbooks
익숙한 곳을 다니면서 둘레를 안 살필 수 있습니다. 익숙한 곳을 다니지만 둘레를 살필 수 있습니다. 낯선 곳을 다니느라 둘레를 못 볼 수 있습니다. 낯선 곳을 다니기에 둘레를 신나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책 하나 아름다이 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고 느끼면서 마주합니다. 여기에 책 하나 있으나 아름다움뿐 아니라 책이 있는지조차 못 느끼고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저는 어디를 다니든 그곳에 나무나 풀이나 흙이 어떻게 얼마나 있는가를 눈여겨봅니다. 바람이 어떻게 불고 햇볕은 어떻게 내리쬐는가를 살핍니다. 가게가 얼마나 으리으리한가를 볼 일이 없고, 어떤 가게가 있는지 살필 일이 없으며, 자동차가 오가는 흐름도 안 봅니다. 그러나 저하고는 사뭇 다르게 살피거나 보는 분도 많겠지요. 지나가는 사람 얼굴이나 몸매나 차림새를 훑는 사람도 많을 테고요.
열아홉 살 적부터 거울을 안 봅니다. 집에 거울조차 안 둡니다. 저는 그때부터 ‘겉몸·겉모습 읽기’를 끊었어요. 내 겉몸이나 겉모습뿐 아니라, 남 겉몸이나 겉모습도 싹 끊습니다.
책을 마주할 적에는 글쓴님·펴낸곳 이름값을 볼 까닭이 없다고 느낍니다. 어느 책이건 글쓴님이나 펴낸곳에서 어떤 마음을 이 종이꾸러미에, 숲에서 자라던 나무한테서 얻은 이 푸른 종이에 담았을까 하는 흐름하고 결을 읽으려고 해요. 겉눈 아닌 속눈으로 바라보려고 합니다.
구미 〈삼일문고〉에서 “‘우리말 동시 사전’ 동시그림잔치”를 엽니다. 《우리말 동시 사전》이라는 동시집이자 사전을 빚은 어린이 그림하고 어른 동시가 어우러진 마당입니다. 〈삼일문고〉 안쪽 벽에 널찍하게 그림판이 붙습니다. 이 마을책집을 찾아오는 분들이 쉬엄쉬엄 이 동시그림을 바라보면서 ‘동시란, 어른이 어린이라는 마음을 건사하려고 짓는 사랑이 어린 글’이요 ‘그림이란, 어린이가 어른이라는 나비로 거듭나는 길에 꿈이라고 하는 살림을 사랑으로 빚은 노래’라고 하는 대목을 읽어 주신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7월 19일 저녁 일곱 시 언저리에, 또 7월 20일 아침 열한 시 무렵에, 이야기꽃을 펴기로 했습니다. 어떤 어른하고 어린이를 만나면서 새롭게 이야기라는 씨앗을 함께 우리 마음에 심을 만할까 하고 돌아보면서 골마루를 누비면서 책시렁을 살핍니다.
만화책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1》(쓰루타니 가오리/한승희 옮김, 북폴리오, 2019)을 집습니다. 이 만화책이 나온 줄 알았으나 미처 장만하지 못한 채 지냈어요. 반가이 고릅니다.
그림책을 꼼꼼히 가려서 놓은 책시렁 한쪽에 꽤 남다르다 싶은 칸이 있어요. ‘견본 그림책’을 눅게 파는 칸이에요. 마을책집을 찾아온 어린이나 어른이 그림책을 마음껏 보도록 따로 1권씩 챙겨서 겉싸개를 두른 그림책을 모은 칸이라 할 텐데, ‘보기책(견본도서)’을 따로 두고서, 이 책을 나중에 이렇게 눅게 팔 수도 있겠네요. 보기책 하나가 두고두고 여러 어린이한테 새 그림책을 이끄는 징검돌 노릇을 마친 뒤에는 ‘새로운 헌책’으로 숨결을 잇네요.
우리 숲집으로 데려갈 그림책으로 《꼭꼭 숨어라》(지정관·지 기미코, 북뱅크, 2018), 《영웅을 찾습니다》(차이자오룬/심봉희 옮김, 키위북스, 2018), 《꼬마 여우》(니콜라 구니/명혜권 옮김, 여유당, 2018)를 고릅니다. 옛노래를 살린 이야기가 새삼스럽고, 높이 내세울 만한 사람이 될 까닭이 없이 스스로 하루를 알차며 즐거이 누리면 기쁘다는 줄거리가 상냥하며, 꼬마가 아직 꼬마이지만 이 꼬마가 차츰 눈길을 틔우며 씩씩하게 나아가는 얼거리가 부드럽습니다.
오늘 만나는 책은 오늘까지 걸어온 길에 키운 눈길로 고릅니다. 오늘 만날 책은 오늘부터 걸어갈 길에 심을 즐거운 눈빛으로 살핍니다. 발자국이 모여 삶이 됩니다. 발걸음을 새로 딛어 살림을 가꿉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