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현장에서 매일 학부모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공통적으로 마주하는 고민이 있습니다. 바로 영상과 숏폼 콘텐츠에 익숙해진 아이들의 문해력 문제입니다. 빽빽한 줄글로 가득한 교양서를 아이에게 무작정 안겨주는 것이 오히려 독서와 영영 담을 쌓게 만드는 일은 아닐지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2028학년도부터 적용되는 통합수능 체제는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사고력과 통합적인 독해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입 개편의 핵심은 과목 간의 경계를 허무는 데 있습니다. 통합사회와 통합과학을 중심으로 인문, 사회, 과학의 맥락을 한꺼번에 꿰뚫어야 높은 성취를 얻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단편적인 암기 지식은 이제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글 읽기를 힘들어하는 아이의 성향과 갈수록 높아지는 입시의 문턱 사이에서 고민하는 학부모님들에게, 저는 현직 교사로서 만화를 활용한 독서법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안하고자 합니다.

 

아이가 만화책만 본다는 사실에 불안해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인지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집니다. 인간의 뇌는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될 때 정보를 훨씬 더 입체적으로 저장하는데, 이를 이중 부호화 이론이라고 합니다. 복잡한 과학 원리나 철학적 담론을 만화라는 시각적 맥락으로 먼저 접한 아이들은 나중에 교과서의 어려운 지문을 만났을 때 배경지식을 꺼내 쓰는 속도가 훨씬 유연합니다. 교실에서 만화를 통해 개념의 뼈대를 먼저 잡은 아이들이 고난도 추론 문제에서 당황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확인해 왔습니다.

 

이러한 현장의 경험과 교육적 확신을 담아 펴낸 책이 <현직 중학교 선생님이 직접 고른 청소년 교양만화 30>입니다. 시중에 나온 수많은 만화 중 부모님이 안심하고 권할 수 있는, 동시에 입시와 교과 학습에 실질적인 연결 고리가 되는 작품들을 엄선했습니다. 퓰리처상 수상작부터 세계적인 그래픽 노블까지, 인문·예술·사회·과학이라는 네 가지 핵심 영역을 관통하는 서른 권의 작품을 교사의 시선으로 정리했습니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이 책이 자녀의 독서 교육 로드맵을 고민하는 학부모님들에게 작은 이정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무리하게 글줄 책을 강요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적절한 도구를 선택하는 것이 문해력을 기르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파편화된 지식들을 하나의 맥락으로 묶어주는 가이드를 통해 아이들에게는 공부의 새로운 재미를, 부모님들에게는 막막했던 독서 지도의 기준을 전하고자 했습니다.

 

<현직 중학교 선생님이 직접 고른 청소년 교양만화 30>은 각 만화가 실제 교과 과정의 어느 대목과 연결되는지,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질문을 던져야 사고가 확장되는지를 꼼꼼하게 짚어줍니다. 아이는 만화라는 친숙한 통로를 통해 교양의 세계로 발을 들이고, 그 과정에서 통합적 사고력을 자연스럽게 체화하게 됩니다.

 

교양은 우리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즐거운 눈이 되어야 합니다. 만화로 만나는 지식은 가볍게 시작되지만 그 안에 담긴 통찰의 깊이는 결코 얕지 않습니다. <현직 중학교 선생님이 직접 고른 청소년 교양만화 30>이 독서의 벽 앞에서 고민하는 부모님들에게는 든든한 조력자가, 아이들에게는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소중한 열쇠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결정적인 순간, 이 책이 안내한 만화 속 한 장면이 우리 아이의 성취를 넘어 인생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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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2-22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설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이 도서도 한번 읽어볼게요.

박균호 2026-02-23 01:33   좋아요 0 | URL
와 선생님 감사합니다다 !! 늘 건강하세요 !
 

패션에 관한 눈썰미가 좋은 아내가 몇 해 전 장만한 꽤 비싼 패딩을 입고 산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칠순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유심히 아내를 바라보더란다. 심지어 아내가 걸음을 재촉하는데 아내를 거의 따라오다시피 하더라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 그 할아버지는 아내에게 약간 쑥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입은 패딩이 너무 예뻐서 내 손녀에게 사주고 싶은데 혹시 브랜드를 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알라딘에는 성별 연령별로 구매자 분포를 알려준다.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고전>은 당연히 40~50대 여성이 80%를 차지한다. 십 대 자녀를 둔 엄마가 자식을 위해서 사주는 책이란 뜻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60대 이상 남성 구매자가 7%의 비율을 차지한다. 처음에는 귀여운 손자, 손녀에게 주기 위해서 할아버지가 샀으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당신을 70대 중반으로 밝힌 한 독자님의 서평을 읽고 나는 이 7%가 실제로 본인이 읽으려고 한 구매도 상당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이따금 공공도서관에서 고전에 관해 강연하는데 청중의 대다수가 50~70대이시다. 왜 그럴지 생각해 봤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일찍이 책을 오래 읽다 보면 나이가 들다 보면 결국 고전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70대 중반 독자님의 품격 넘치는 서평을 읽다 보니 존경심이 저절로 든다. 책을 구매하시기 전 내 글에 댓글로 구매하신다고 하셔서 애들이나 보는 책인데 괜찮겠습니까라고 말씀드렸는데 배움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말씀하셨다. 나야말로 고루한 사람이고 이 어른이야말로 청년보다 더 청년으로 사시는 분이다. 내 책을 산 분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70대 중반에 청소년을 위한 책을 기꺼이 즐겁게 읽고 서평을 남기신 어른이라니! 내가 언제 이분처럼 열정적으로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요 며칠간 출근하면서 역시 70은 훨씬 넘으신 신호수(信號手)분이 지나가는 모든 차를 향해서 각이 제대로 잡힌 거수경례를 하며 마치 손주를 보는 것처럼 정답게 손을 흔드시는 장면을 본다. 차에서 저절로 꾸벅 인사를 하게 된다. 이 모두 존경스럽고 참 멋진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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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9 0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입니다.

2025-12-19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책의 물성을 꽤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새책주의자다. 절판이라 새 책으로는 도저히 못 구할 때 만 헌책을 산다.
그런 내가 쓴 열여덟 번째 책,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고전〉은 개인적으로 오래된 로망 하나를 실현한 책이다. 띠지가 있는 책!!r교보문고 MD 구환회 작가 책 〈독서를 영업합니다〉에서 띠지 이야기를 읽고 혼자 고개를 끄덕였던 기억이 난다. 띠지 하나가 ‘안 살 책’을 ‘사는 책’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취지였는데, 그 문장이 묘하게 오래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띠지가 있으면 책이 한층 더 예뻐진다. 좋은 띠지는 책에 버버리 코트를 입혀주는 것 같다. 실용성과 멋이 동시에 붙는다.
소규모 출판사이지만 대규모 출판사처럼 움직이는 그래도봄 출판사 오혜영 대표가 “책을 예쁘게 만들어야겠지요”라고 했을 때부터 마음이 들떴는데, 진짜로 표지에 공을 들이고 후가공을 하고, 띠지까지 만들어줬다. 진흙 같던 원고가 사람 구실을 하게 된 느낌이다. 책이 ‘내용’만이 아니라 ‘모양’까지 갖추는 순간이 이렇게 고맙구나 싶었다.
요즘 내 책 화면을 매일 캡처한다. 교보문고에서는 국내도서 순위권에 들어가 있고, 예스24 판매포인트는 6,500점을 넘겼고, 알라딘은 4,500점을 넘겼다. 이런 숫자들이 내 책에 찍히는 경험은 처음이라서 자꾸 확인하게 된다. 여러모로 감사한 나날이다.


아주 오래전, 포대에 둘러싸여 누워 있던 조카를 보며 세상 따뜻한 미소를 짓던 매형이 떠오른다. 요즘 이 책을 바라보는 내 표정이 아마 그때랑 비슷할 것이다. 집에 두면 마음이 밝아지는 물건이 있다면, 이 책이 딱 그런 쪽에 놓여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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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5-12-16 2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도서 찜합니다.

박균호 2025-12-16 20:42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고맙습니다 !!!

호시우행 2025-12-19 0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요일 저녁에 알라딘에 주문한 도서가 도착했어요. 며칠전에 읽은 중등필독고전과 달리 필사노트 부분이 있는 게 차별화를 보입니다.

박균호 2025-12-19 04:18   좋아요 0 | URL
아 ! 청소년 도서라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 거듭 고맙습니다 !!

호시우행 2025-12-19 04: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움에 나이가 있나요? 새벽독서 즐기는 중이지요. 감사합니다. 이런 즐거움을 주셔서

박균호 2025-12-19 04:54   좋아요 0 | URL
제가 더 감사합니다 !!!

호시우행 2025-12-19 0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시우행 서재에도 글 하나 올렸어요. 홍보에 도움된다면. 응원합니다.

2025-12-19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교사도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 면에서 '고비용 저효율'적인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 사정이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늙은 교사'의 장점이 딱 하나 있다. 웬만해서는 학생들의 일로 화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 끓는 미혼 시절엔 아이들의 예의 없는 말투 하나에도 울컥하고 혼을 냈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내 아이를 키우면서부터는, 학생들을 좀 더 관용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아이를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만만치 않은 일인지, 자식 농사가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기 때문이다.

학생을 지도하면 할수록 아이의 문제는 곧 부모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래서 학생이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면 화가 나기보다는 '저 아이가 왜 저럴까, 무슨 사정이 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든다. 교사가 먼저 말을 예쁘게 하면, 학생도 결국은 예쁘게 말을 하기 마련이니까.

<100문장으로 쓰고 배우는 청소년 필수 고전>도 딱 그런 '부모의 마음', ' 교사의 마음'으로 썼다. 고전이 어렵고 지루한 훈계가 아니라, 오늘의 청소년이 고민하는 지점과 맞닿아 있는 '재미난 옛이야기'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자상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아이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기왕이면 교과서 속 고전을 다뤄서 성적에도 도움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소 난해하고 배경지식이 필요한 고전 한 줄을, 청소년이 넙죽 받아먹을 수 있도록 내가 대신 오물오물 씹어서 줄이고 더했다.

가령 이런 문장이 그렇다.
"조금만 더 가면 기쁨과 영광이 산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말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인가? 이제 우리의 마음이라는 작은 배는 더 나은 물결을 향해 돛을 올렸으니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다." —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이 문장을 두고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을 건넸다.



"목표를 향해 가다 보면 가장 힘들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찾아와요. 그 고비는 종종 '끝이 가까웠다'는 신호이기도 하지요. (...) 완전히 포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국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기쁨이 여러분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순간입니다." (본문 282쪽)

고전이 회초리를 든 훈장님이나 잔소리하는 꼰대가 아니라, 힘들 때 가장 먼저 손을 건네는 따뜻한 친구라는 사실을 전해주고 싶었다. 이 책이 아이들의 작은 배가 순항하는 데 부드러운 바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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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 - 우주 불평등 시대를 항해하는 인류의 미래를 위한 긴박한 질문들
최은정 지음 / 갈매나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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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문연구원 우주위험감시센터 센터장 최은정 선생의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조금 충격을 받았다. ‘우주라고 하면 당연히 우리 모두의 것, 인류 전체의 공동 재산쯤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마치 땅을 팔라는 미국 대통령에게 이 땅과 이 공기를 어떻게 사고팔 수 있느냐라고 되물었다는 시애틀 대추장의 연설이 떠오르듯, 넓고 넓은 우주는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는, 지극히 문과적인 생각이 내 안에 아주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라는 이 제목 한 줄은, 내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 온 우주는 모두의 것이라는 믿음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책을 읽어 보니, 이 문장은 단순히 자극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주는 돈을 주고 사고파는 부동산은 아니지만, 깃발을 먼저 꽂는 자가 주인 행세를 하는 선점의 각축장이다. 이는 마치 제국주의 시절, 열강들이 앞다투어 식민지 개척에 혈안이 되었던 풍경과 섬뜩할 정도로 닮았다. 저자는 우주의 불평등이 바로 궤도(Orbit)’에서 시작됨을 지적한다. 과학 유튜버 궤도가 자신의 닉네임을 인공위성이 지구 주위를 돌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길이라는 뜻에서 따왔듯, 궤도는 위성에 생명선이자 유일한 길이다. 지구와 가까운 저궤도부터 중궤도, 그리고 방송·통신 위성이 머무는 정지궤도까지, 이 보이지 않는 하늘길은 한정된 자원이다. 모두가 갖고 싶어 하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이 길목을 차지하기 위해 지금 우주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문제는 이 한정된 도로에 너무 많은 차가 몰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차원의 경쟁을 넘어 스페이스X 같은 민간 기업들까지 수천 기의 위성을 쏘아 올리며 우주는 그야말로 극심한 교통 체증을 앓고 있다. 궤도는 이미 포화 상태다. 도로가 막히면 사고가 나듯, 우주에서도 충돌 위험은 일상이 되었다. 수명을 다한 채 방치된 유령 위성들과 그들이 부서져 만들어낸 수만 개의 파편들, 우주 쓰레기는 총알보다 빠른 속도로 궤도를 떠돌며 살아 있는 위성들을 위협한다. 저자의 말대로 우주는 더 이상 동경의 대상이 아니라, 난개발과 폐기물로 신음하는 위험한 쓰레기장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어서 지속성이라는 화두를 꺼낸다. 보통 지속 가능한이라는 말은 환경 문제와 함께 쓰이는 말인데, 그것을 우주에 붙여 쓰니 처음에는 다소 낯설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지속 가능한 우주는, 단순히 우주를 쓰레기로부터 보호하자는 수준의 구호가 아니다. 우주 개발에는 반드시 궤도 역학적 지속 가능성이라는 과학적 기준이 내재하여야 한다는 주장에 가깝다. 이를 위해 최소 에너지 경로를 최적화하고, 인공위성이 임무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소멸하도록 설계하며, 특정 궤도에만 위성을 몰아넣지 않고 궤도 배치를 분산하고, 다중 사용자가 동시에 이용하는 환경을 전제로 시스템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지금처럼 엉망진창으로 막히고 부딪히는 하늘길이 아니라, 교통 신호에 따라 차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는 도로처럼, 우주의 움직임 자체를 처음부터 지속 가능하도록설계하자는 이야기다.

 

이어서 저자는 시선을 달로 옮긴다. 이 책에서 달에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이유는, 달이야말로 인류의 우주 진출을 위한 전초기지이자, 달 탐사의 역사가 곧 인류 우주 탐험의 역사와 겹치기 때문일 것이다. 여러 흥미로운 사례와 논의를 거쳐 저자가 내리는 결론은 분명하다. 달 궤도 역시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관리되고 배분되어야 할 공간이자 자원이라는 점이다. 더 빨리 올라가는 나라가 먼저 차지하는 선착순 놀이터가 아니라, 임무의 중요도와 공공성을 기준으로, 궤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는 방향으로 할당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위성이 스스로 위치를 조정하는 자율 기동 기술, 충돌 회피 기술, 안정적인 달 주변 통신 인프라 구축이 필수이며,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이를 뒷받침할 국제법과 거버넌스 모델, 규범을 만들어 가는 전략이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달 탐험의 역사를 따라가다, 내가 특히 흥미롭게 느낀 대목은 현대 로켓 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며 달 탐험에 결정적인 토대를 놓은 치올콥스키가 열일곱 살에 쥘 베른의 소설 지구에서 달까지를 읽고 우주 비행의 꿈을 키웠다는 사실이다. 15소년 표류기80일간의 세계 일주로 더 잘 알려진 바로 그 쥘 베른이다. 얼핏 듣기로, 오늘날 우주 개발의 선두에 서 있는 일론 머스크에게 가장 큰 영감을 준 책 가운데 하나가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 식민지 독립 혁명을 그린 고전 SF 소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이라고 한다.

 

이런 사실들을 떠올리다 보면, 인류의 기술 혁신이라는 것이 어쩌면 과학자보다 먼저 문학가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문학가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마음껏 그려 내면, 과학자는 그 무모한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설계도로 바꾸는 사람들인 셈이다. 결국 이과의 기술과 문과의 상상력은 따로 떨어진 두 영역이 아니라, 앞에서 끌어당기고 뒤에서 밀어주는 하나의 몸처럼 서로 연결되어 움직인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는 전적으로 나만의 해석이지만, 달과 우주를 둘러싼 수많은 이야기의 출발점에 언제나 한 편의 소설과 한 사람의 독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20세기 후반까지 우주 개발은 말 그대로 기술·과학·국가 체계가 총동원된 총력전이었다. 군사 중심의 과시적 기술 경쟁이자, 정부 주도의 우주 개발, 이른바 올드 스페이스의 시대였다. 그런데 이제는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같은 인물이 상징하듯, 민간 기업이 우주 개발을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스페이스X가 보여 주는 저비용·고빈도의 소형 발사체 운용은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여기는 우주 자본주의’, 그리고 그에 기반한 우주 경제 생태계의 등장을 잘 보여 준다. 하지만 공공 자산이어야 할 우주 공간이 일부 기업과 국가에 의해 상업적으로 독점될 위험, 국가 간 우주 개발 격차가 더 벌어지는 문제는 전혀 가볍지 않다.

 

디지털 주권을 말하던 시대를 넘어, 이제는 우주 주권이 새로운 국제적 이슈가 되었지만, 후진국들은 애초에 우주에 발을 들이기조차 어렵다. 그래서 저자는 우주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개방된 인류의 공공 영역으로 다시 정의하고,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틀과 인류 모두의 우주를 위한 우주법 체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이렇게나 중요한, 우리의 미래를 가를 문제들이 우리 사회에서는 거의 논의되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이 책이 훨씬 더 널리,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느꼈다. 모두가 지구가 네모라고 믿던 시대에 조용히 아니다, 지구는 둥글다라고 말했던 코페르니쿠스처럼, 이 책은 우주는 모두를 위한 곳이라는 안일한 믿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갈릴레오의 말을 끝내 외면했던 사람들처럼 다시 행동하지 않으려면, 지금 이 시점의 새로운 우주 질서를 다룬 이 책이 더 많이 읽히고, 더 많이 이야기되어야 한다.


저자 또한 비슷한 문제의식을 품고 있지 않을까 짐작하게 되는 이유는, 중학생만 되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친절한 언어로 우주 정책과 기술, 법과 거버넌스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의 우주 미래 전략 부재가 안타까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어려운 주제를 부담 없이 읽히게 만드는 저자의 필력에 감탄했다. 그래서 모두를 위한 우주는 없다는 단순한 우주 교양서가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우주를 선택하고 어떤 우주 질서를 지지할 것인지 묻는, 드물게 소중한 질문을 던지는 책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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