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나는 할머니 (2019.1.31.)

― 인천 배다리 〈나비날다〉

 인천 동구 금곡동 11-9



  살아오며 읽은 책이 무척 많으나, 아직 읽지 않거나 못한 책이 훨씬 많습니다. 책집으로 마실을 가서 한꾸러미 장만하는 새로운 책이 있더라도, 정작 장만하지 못하는 책이 더욱 많습니다. 이웃님을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지새더라도 막상 나누지 못한 말이 참으로 깁니다.


  문득 생각합니다. 스스로 ‘아직 못했네’ 하고 생각하면 저는 늘 ‘아직 못한’ 사람이로구나 싶고, ‘앞으로 하려고’처럼 생각하면 저는 늘 ‘앞으로 하려고’ 나아가는 사람이로구나 싶습니다.


  《우리는 좀더 어두워지기로 했네》(이설야, 창비, 2016)라는 시집이 있습니다. 인천이라는 고장을 텃자리로 삼아서 하루를 짓는 분이 길어올린 시집입니다. 시쓴님이 어느 날 저한테 말을 걸었습니다. 이녁이 살아가는 인천에서 ‘인천작가회의’ 글지기가 엮는 《작가들》이라는 잡지에 ‘인천 골목 사진’을 보내 주면 좋겠다고. 이때에 비로소 인천 이웃님 이름을 들었고, 이웃님 시집을 알았으며, 이 시집을 누리책집 말고 인천마실을 하는 길에 장만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이러고서 거의 한 해가 지나서야 배다리 〈나비날다〉로 마실을 가서 드디어 이 시집을 만났고, 한달음에 다 읽었습니다.


  시집 하나를 만나려고 한 해를 기다리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참 어이없는 짓을 하는구나 싶으나, 이래도 즐겁습니다. 기다리고 싶었으니 기다린걸요.


  《지붕 위 삐롱커피》(Engi, 2018)라는 자그마한 그림책을 만나고, 《고양이가 될래》(시 쓰는 수요일, 달이네, 2018)라고 하는, 오직 이 마을책집에 와야 만날 수 있는 조그마한 책을 마주합니다.


  나라 곳곳에 마을책집이 부쩍 늘어요. 아직 여러 마을책집에는 어슷비슷한 책이 많다 싶으나, 차근차근 ‘그 마을책집에 가야 만날 수 있는 책’이 늘어나지 싶습니다. 마을빛을 담는 마을책집으로 나아가는 길이라고 할까요. 고장빛을 품는 고장책집으로 거듭나는 길이기도 하달까요.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이재연, 소동, 2019)라는 책을 집어들어 고흥으로 가져갔더니, 곁님이 이 책에 흐르는 그림결이 참 곱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요, 할머니가 쓰는 글이며, 할머니가 빚은 그림이며 더없이 곱습니다. 멋을 부리기에 곱지 않아요. 그저 할머니로 살아온 나날을 오롯이 담아내어 펼치니 곱습니다.


  피어나는 할머니입니다. 이처럼 피어나는 할아버지도 나란히 늘면 좋겠어요. 할머니가 늦깎이로 한글을 익히고 붓을 쥐어 글꽃이랑 그림꽃을 펴듯, 시골 할배도 시골 할배다운 꿈하고 사랑을 담아 ‘할배 이야기’를 글꽃이며 그림꽃이며 노래꽃으로 길어올리면 좋겠습니다.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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