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다람쥐를, 오늘은 다람쥐를 본다. 날이 많이 따뜻해져서 겨울잠을 자던 짐승들이 하나둘 깨어나는구나 싶다. 막 깨어났으니 배가 얼마나 고플까. 아직 먹을 만한 산열매가 없을 테니 사람 사는 곳까지 살금살금 내려와 배채울 먹을거리를 찾겠지. 그런데 나한테는 너희들한테 줄 만한 먹잇감이 없네. 곡식이나 감자 몇 알을 너희들이 먹겠나. 내 자는 방 한켠 두툼한 이불 쌓아놓은 밑에 새앙쥐 한두 마리가 오도카니 숨어서 겨울을 났더구만. 까맣게 모르다가 어젯밤 파다다닥 쥐 굴러가는 소리가 나서 깨어나 불을 켜고 뒤진 끝에 찾았다. 책 두 권을 한손씩 든 다음 탕! 하고 겹쳐서 시끄러운 소리를 내 본다. 조금 뒤, 괜히 시끄러운 소리를 냈구나 싶어 미안해진다. 며칠 뒤면 이 집을 비우고 떠날 텐데, 구태여 이들 새앙쥐 식구를 놀래켜서 뭐 할까. 빗자루 가져와서 쥐똥을 쓸어낸다. 쥐가 무엇을 파먹었나 살피니, 책갈피로 쓰던 꽃잎, 커텐 천조각. 이 살림집 새앙쥐는 용케 책은 안 쏠아먹는다. 자연식을 하는 쥐인가. 큰방 잘 보이는 자리에 감자를 씻어서 얕은 대야에 담아 놓았는데, 그것이나 먹지. 그러나 이 쥐들이 고구마는 갉아먹어도 감자는 안 갉아먹더군. 잠깐 드러누워 허리를 편 뒤 일하려고 했지만, 쥐들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잠들기를 바라며 새벽 세 시까지 책을 묶는다. 세 시를 넘긴 뒤, 더는 허리를 버티기 힘들어 손을 씻고 자리에 눕는다. 방온도가 14도로 떨어져서 보일러가 웅웅 하고 돌아간다. 따뜻해진다. 사람도 쥐도 따스하게 잠드는 깊은 밤이다. (4340.4.9.달.ㅎㄲㅅ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