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해서 살다가 헤어지기로 한 뒤, 서울에서 살던 집을 아내한테 넘겨주면서 이 전세집을 얻느라 다른 사람한테 꾼 돈은 갚아야 하니, 그 빚만 갚게 해 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헤어진 아내는 그러마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 전세집 소유권을 넘긴 다음에는 말을 바꾸어 빚갚이 할 때 들어가야 할 돈을 안 주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빚갚이 할 돈은 받지 못했고, 앞으로 그만한 돈을 다시 벌 수 없도록 살아가는 저인 만큼, 다른 사람들한테 손을 벌리며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향땅 인천으로 돌아가 도서관을 열 준비를 하는 요즈음, 돈 나갈 일이 없도록 몸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짐차를 부르는 일부터 해서 새로 들여야 할 책꽂이와 책걸상, 이밖에 자질구레하게 들어갈 여러 곳에 쓰일 돈을 생각하면, 아내와 헤어질 때 받기로 했던 그 빚갚이 돈이 새삼 떠오릅니다. 사람이 없이 살다 보니, 자꾸 어느 한쪽에 아쉬움이 남겠지요. 하지만, 빚갚이를 못하고 둘레사람들한테도 손 벌리지 못하는 형편이 되노라니, 주는 고마움과 받는 고마움을 새삼스레 돌이켜보게 됩니다. 또한 제 삶은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이나 앞으로도 그랬듯이 제 두 주먹으로 헤쳐 나가야지, 어설피 옛생각에 매여 살아갈 수 없음을 느끼게 됩니다. 빚갚이를 했다면 어깨짐은 가벼워졌겠지만, 좀더 다부지게 세상과 맞설 수 없었으리라 느낍니다. 아무것도 없는 빈털털이로 새로운 일감을 찾으려 하지 못했을 테지요. 무언가 가지고 있다면, 그처럼 가지고 있는 재산(또는 물건 또는 힘)으로 그동안 생각했던 어떤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무언가 가지고 있지 않다면, 두 손에 아무것도 안 가지고 있다면, 모든 것을 새로 찾아야 하고 새로 생각하고 새로 몸을 놀려야 하고 새로 부대끼고 뛰어야 합니다. 저라고 하는 사람이 낡은 자리에 머물지 말고, 언제나 새로운 곳에서 움직이되, 고이지 않고 흐르는 물이 되라는 뜻에서 빚갚이를 못하게 운명이 지어졌겠구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4340.4.4.물.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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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05 10:14   좋아요 0 | URL
빚이라는 게 한번 사람 덜미를 잡기 시작하면, 어디가서 뭘해도 주눅이 들어서
사람 사는 모양새가 영 안나오더군요. 저도 한때 큰돈이라면 큰돈일수 있는 금액의 빚으로 한참을 고생했는데, 지나고 보니 어찌살았나 싶습니다.;;
지금 고생스러우신거 십분 이해한다면 오버가 되겠지만, 적으신 글가운데는 저와는 전혀다른 희망을 갖고 계신 분인듯 합니다. 모쪼록 조만간에 염려없이, 그 빚들이 잘 해결되길 소망해 봅니다. 좋은 봄날 맞으시길요. 생각하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 체셔고양2 드림.

숲노래 2007-04-06 13:36   좋아요 0 | URL
빚을 지며 고달파 본 사람들은, 서로를 더 잘 헤아려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
오버라니요~
채셔고양2님도 좋은 희망으로 즐겁게 살아가실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