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서 책집 한 곳이란 (2019.6.7.)
― 인천 배다리 〈모갈1호〉
인천 동구 금곡로 3
https://www.instagram.com/mogul1ho
저는 책집이란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합니다. 책집을 모르는 채 책집마실을, 때로는 책숲마실을 다녔습니다. 첫 책집마실, 또는 책숲마실은 1992년 8월 28일입니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이었는가를 잊지 않아요. 저는 그날 새롭게 태어났거든요. 아니 그해 8월 27일까지는 몸은 살았되 마음은 죽으면서 지내다가, 이날부터 마음이 살아났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을 마친 뒤인데, 왜 살아가는지, 왜 입시지옥에서 뒹굴어야 하는지, 왜 학교라는 곳은 학생은 죽도록 두들겨패거나 갖은 막말을 퍼붓는지, 왜 이 끔찍한 군사독재는 끝날 낌새가 안 보이는지, 왜 바른 목소리가 흐르는 신문은 찾아볼 수 없는지, 왜 인천에는 도서관다운 도서관이 한 곳도 없는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에 간들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배울 수 있는지, 고등학교만 마쳐도 이 나라에서 착하면서 참답게 먹고사는 길을 찾을 수 있는지, 어떠한 수수께끼나 실마리도 찾을 수 없던 하루였어요. 이러다가 책집이란 곳에 눈을 뜬 날부터 마음이 확 깨었어요.
그래, 길이 없으면 스스로 내면 되는구나 하고요. 길이 없으니 몇 해가 걸리든 스스로 걸어가면 되는구나 하고요. 길이 없기에 나부터 길을 내자고, 길이 없으니 그만 투정을 부리고 길을 짓자고, 길이 없다면 웃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어깨동무할 길을 생각하자고 다짐했어요.
1992년부터 2019년까지 몇 해란 나날일까요. 저는 이동안 어떤 책을 마주하면서 얼마나 숱한 책집에서 얼마나 놀라운 책을 만났을까요. 제가 사들여서 저희 책숲에 건사한 책은, 또 주머니가 가난하다는 핑계로 차마 사들이지 못해 책집에 서서 읽은 책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그때, 고등학교 2학년부터 대학교 다섯 학기를 다니는 동안, 또 신문을 돌리며 먹고살던 스물 몇 달 동안, 책집마실을 하며 책 하나를 장만한다면, 책집에서는 적어도 열이나 스물에 이르는 책을 서서 재빨리 읽어냈습니다. 다음에 찾아오면 사라지고 없겠구나 싶은 아름다운 책을 살 돈이 없으니 머리에 담자고, 돈이 없으면 머리를 쓰고 생각을 넓히자는 마음으로 무시무시하게 책을 읽어댔습니다.
헌책집이란 곳은 겉은 좀 허름하되 알맹이는 똑같이 새로운 이야기를 베풀면서 마음을 달래 주었어요. 모든 헌책이 저한테 속삭였지요. “얘야, 길을 찾지 못해 길을 스스로 내겠다는 가녀린 아이야. 너는 우리한테 꼭 한 가지를 배울 수 있지. 이 한 가지란, 우리를 겉모습이라는 눈이 아닌 속내라 마음으로 보는 숨결이란다.” 허름한 책은 언제나 속삭였습니다. 책도 사람도 삶도 겉모습으로 판가름할 까닭이 없다고, 나무도 풀벌레도 새도 속내로 사랑하면 된다고, 사랑도 살림도 슬기도 언제나 마음으로 읽는 숨결로 깨닫거나 받아들일 뿐이라고.
인천 배다리에 1969년부터 있던 〈대창서림〉을 물려받아 새롭게 가꾸는 〈모갈1호〉가 있습니다. 1층에는 책집이요 2층에는 이야기꽃을 피우는 단출한 쉼터입니다. 2층에 올라서면 맞은쪽에서 지나가는 전철이 내는 소리를 마치 노래처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무기둥이 든든하게 받치는 2층에 서면 뼈대가 나무이면서 든든한 결을 두 발바닥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별 옆에 별》(시나 윌킨슨/곽명단 옮김, 돌베개, 2018)을 만납니다. 헌책 곁에 있는 새책을 반가이 집습니다. 안목 출판사 사진책이 얌전히 바라봅니다. 안목 출판사 사진책은 거의 다 갖춘 터라 살살 쓰다듬어 줍니다.
《바람이 자는 시간에는》(시산 동인 4집, 인천일보사 출판국, 1995)이라는 동아리 시집을 집어듭니다. 인천일보사에서 이런 시집을 펴내 주었네요. 대단하군요. 이때만 해도 인천일보사는 이렇게 상냥한 손길을 인천사람한테 내밀었네요.
《불이 있는 몇개의 풍경》(양애경, 청하, 1988)을 들어서 읽는데, 1980년대 시는 이렇게 풋풋한 척하면서 한자를 자랑하는 시였네 하고 새삼스럽습니다. 요즈음 시는 영어를 자랑하면서 새로운 척하는 시라고 느낍니다.
《공친 날》(김기홍, 실천문학사, 1987)이 매우 깨끗합니다. 저한테도 이 시집이 있고, 얼추 스무 해쯤 앞서 읽었는데, 새삼스럽기도 하고, 깨끗한 시집으로 책숲에 두고 싶어서 살짝 장만하자고 생각합니다. 스무 해쯤 앞서는 서울사람으로 살던 무렵이었고, 오늘은 전라사람으로 삽니다. 전라남도란 터에서 살다 보니 시쓴이가 읊는 승주군이나 주암댐이나 여러 전라도 마을이름이 살갗으로 쏙쏙 들어옵니다.
《교수대로부터의 리포트》(율리우스 푸치크/김태경 옮김, 이론과실천, 1986)도 예전에 읽었을 텐데 줄거리가 하나도 안 떠오릅니다. 다시 사서 읽으면 되지 하고 생각합니다. 밤이 되어도 별을 볼 수 없는 인천 한켠에서 길손집을 찾아 쉬면서 읽는데, 글쓴이가 독일 게슈타포한테 처음 붙잡히며 죽도록 두들겨맞고 짓밟히다가 까무라친 이야기를 매우 무덤덤하다 싶도록 풀어냈습니다. 아, 죽음을 앞두고 죽음에서 홀가분한 채 쓰는 글이 이렇게 무덤덤할 뿐 아니라 곧구나 싶군요.
이 책은 2003년에 《교수대로부터의 비망록》으로, 2012년에 《교수대의 비망록》으로 다시 태어나기도 했답니다. 2012년에 다시 태어난 책은 고맙게도 판이 안 끊어졌습니다. 새옷을 입혀서 보살피는 출판사가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제는 간수들도 267 감방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 나온다는 사실에 익숙해져 버려서 어느 사이엔가 문 밖에서 조용히 하라고 시끄럽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267 감방은 노래한다. 나는 평생 노래해 왔다. 가장 치열한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 마지막에 이르러 노래를 중단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 (38∼39쪽)
〈모갈1호〉 책시렁에서 《pocket progressive 韓日·日韓辭典》(小學館, 2004)을 보고는 한참 읽었습니다. 일본은 주머니 사전도 이렇게 알차며 산뜻하게 엮는구나 싶어 놀랍니다. 이쯤 되어야 사전이란 이름을 쓸 만하네 싶습니다. 무늬가 껍데기로는 사전이 아니지요. 알맹이가 제대로 들어차야 사전이지요.
저는 책집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채 책집을 다녔습니다. 가만 보면, 책집뿐 아니라 책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책을 읽었습니다. “책집은 뭡니까?”라든지 “책은 뭔가요?”라든지 “마을에서 책집 한 곳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할 말이 없기에 빙그레 웃습니다. “몰라서 책집을 다녀요.”라든지 “알고 싶어서 책을 읽어요.”라든지 “어떤 사랑이 흐르는가를 같이 숨쉬고 싶어서 마을이란 터에 조그맣게 뿌리를 내리려는 책집에 마음이 끌리나 봐요.” 하고 이야기합니다.
제 대꾸가 심심하다고 여기는 빛을 느끼면 한두 마디쯤 덧붙입니다. “저는 여태 책을 손에 쥐고 읽을 적마다 사랑을 느꼈습니다. 지은이 사랑, 엮은이 사랑, 펴낸이 사랑, 이 책을 사고팔거나 다룬 일꾼 사랑, 이 책을 사고팔도록 짐차에 실어 나른 사람들 사랑, 이렇게 책이 되어 준 나무가 베푼 사랑,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이 들려주는 사랑, 책이 되어 준 나무가 자라던 숲이 깃든 지구라는 별이 노래하는 사랑, 그래요, 저는 책에서 사랑을 느끼고, 이런 책을 건사한 책집에 다닐 적마다 책집마실이라기보다 사랑마실을 배웁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숲마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