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기 2019.4.20.


《우리 아빠, 숲의 거인》

 위기철 글·이희재 그림, 사계절, 2010.5.24.



오늘 내가 아버지라는 몸을 입고서 살기 때문이라고는 느끼지 않지만, 《우리 아빠, 숲의 거인》을 읽고서 좀 서운했다. 무엇이 서운했느냐 하면, “우리 엄마, 숲의 거인”이란 이름으로 이야기책을 꾸몄으면 훨씬 재미나면서 뜻있었겠지 싶더라. 왜 그러한가 하면, 쳇바퀴 같은 일터에 다니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오늘날 으레 ‘사내’이지 ‘가시내’로 콕 집어 말하기 어렵다. 틀림없이 사내 못지않게 가시내도 쳇바퀴 일터에 돈벌이를 하러 많이 다니지만, 사내하고는 다르다. 더욱이 이 어린이책은 2010년에 나왔잖은가. 글쓴이가 사내인 터라 이런 얼거리로 줄거리를 짰을 수 있을 텐데, 아마 이 대목은 글쓴이가 예전부터 넘지 못하던 아쉬운 울타리이지 싶다. 들려줄 만한 이야기는 참 좋지 싶은데 ‘아름다움’으로 뻗지는 못하시더라. 그래도 이만 한 어린이책이 한국에서는 좀처럼 못 나오니, 이 이야기로도 꽤 훌륭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쉰 해나 백 해나 즈믄 해를 읽힐 수는 없겠구나 싶다. 생각해 보라. 너무 무디고 너무 엉성하고 너무 덜 여물지 않았는가? 다만, 한 가지를 꿈꾸어 본다. 아직 숲지기나 숲님이라 할 만한 사내는 없다시피 하지만, 앞으로는 사내도 아름다운 숲꽃으로 필 수 있기를 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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