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31. 꽃바르다



  여러 고장에서 살아 보면서 곳곳에서 달리 쓰는 말씨를 느낍니다만, 이 가운데 매우 다른 말씨 한 가지가 있으니 ‘내려오다·올라가다’입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장은 인천입니다. 모든 사람이 이렇게 말하지는 않으나, 적잖은 분들은 인천에서 수원이나 안산으로 갈 적만 해도 ‘내려간다’고 했습니다. 충청도나 대전에 갈 적에도 ‘내려간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인천에서 강화나 문산이나 파주에 가기에 ‘올라간다’고 하지 않아요. 인천서 서울로 갈 적에 비로소 ‘올라간다’고 합니다.


  재미나다고 해야 할는지, 부산에서 인천에 오는 분도 더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인천서 부산에 갈 적에 ‘내려간다’고 하는 분도 많고요. 인천을 떠나 충북 충주에 살 적에는 대전으로 ‘올라간다’고 하는 분을 꽤 보았습니다. 대전에서는 충청도 곳곳으로 가는 길이 ‘내려간다’가 될 테지요.


  전라도에서는 어떨까요? 먼저 광주에서 이곳저곳으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다른 고을에서 광주로 ‘올라간다’고 합니다. 순천에서 광주로 ‘올라간다’고 하더군요. 광주에서 순천으로 ‘내려간다’고 해요. 아마 군산·목포·나주하고 광주 사이도 이와 비슷한 말씨를 쓰리라 여겨요. 그리고, 순천에서 고흥으로 ‘내려간다’고 하네요. 고흥에서는 순천으로 ‘올라간다’고 해요. 더 파고들면, 고흥군에서는 면소재지에서 고흥읍으로 ‘올라간다’ 하고, 고흥읍에서 면소재지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면소재지에서 마을로 ‘내려간다’ 하며, 마을에서 면소재지로 ‘올라간다’ 하네요.


  앞으로 남·북녘은 어떤 길을 걸을까 궁금합니다. 남·북녘이 어깨동무하는 사랑스러운 길을 걸어, 드디어 남·북녘 사이에 모든 길이 활짝 열리면, 이때에 우리는 어떤 길을 다니려나요? 이때에도 오르내리는 길일까요, 아니면 ‘오가는’ 길일까요? 우리가 갈 길은 어디로든 ‘가다’하고 ‘오다’여야지 싶습니다.


  전라도에서 시골 한켠이라면 한국에서는 귀퉁이나 구석일는지 모르지만, 둥그런 지구를 놓고 보면 귀퉁이나 구석은 없습니다. 지구라는 별에서는 위나 아래가 없어요. 모두 고르게 보금자리요 보금마을입니다. 자, 생각해 봐요. 포근하거나 아늑하거나 아름다운 집이기에 ‘보금자리’라면, 우리 집이 깃든 마을은 ‘보금마을’이 될 만할까요? 나아가 ‘보금고장’이나 ‘보금고을’이, 그리고 ‘보금나라’가 될 만한지요? 이리하여 지구라는 별은 ‘보금별’이 될 만한가요?


 서울길

 광주길

 부산길

 고흥길


  어디로 가든 그저 길입니다. 윗길도 아랫길도 아닙니다. 한자말로 바꾸어 ‘상행선·하행선’이 아닙니다. 서울하고 부산 사이는 ‘서울길·부산길’입니다. 광주하고 평양 사이라면 ‘광주길·평양길’이겠지요.


  남·북녘이 어깨동무하는 길에 접어들자면 어느 곳이 위나 아래가 아닌, 서로 어깨동무를 하는 ‘어깨나라’나 ‘어깨고을’이나 ‘어깨누리’가 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남녘이라는 이곳에서도 모든 고장이 서로 ‘어깨고장’이 될 수 있어야 할 테고요.


  인천에 사는 오랜 벗이 문득 “고흥으로 내려갈게. 거기서 보자.”라든지 “인천으로 올라오면 미리 얘기해.” 하고 말합니다. 저는 다음처럼 대꾸했어요. “‘내려오’려면 오지 말고, 노래하며 즐겁게 ‘오려’면 오렴.”이라든지 “인천으로 ‘올라갈’ 일은 없고, 인천에 ‘갈’ 일이 있으면 미리 얘기할게.”


 꽃을 바르다


  곱게 보이고 싶어서 옷을 차려입을 적에 한자말 ‘단장(丹粧)’을 곁들여 ‘꽃단장’한다고들 합니다. ‘단장’이란 한자말은 두 가지 뜻입니다. 첫째는 “곱게 꾸미다”이고, 둘째는 “손질하여 꾸미다”예요. 한국말로 하자면 ‘꾸미다’이지요. 곱게 보이고 싶어서 옷을 차려입는 몸짓이라면 ‘꾸밈’이라 할 만하고, 이를 ‘꽃꾸밈’이라 할 만해요.


  우리는 꽃처럼 꾸미면서 삽니다. 남이 보기 좋도록 꽃처럼 꾸미기도 하지만, 스스로 마음부터 꽃답게 꾸밉니다. 아니, 마음을 꽃답게 가꿉니다. 마음에 맑으면서 밝은 씨앗을 심으려고 ‘꽃차림’을 하지요. ‘꽃마음’이 되도록 합니다.


  남이 차려 놓은 눈부신 길을 걷는 우리 발걸음이 아닙니다. 스스로 가꾸면서 눈부신 길을 걷는 ‘꽃길’이에요. 우리 손길은 꽃손이 되고, 우리 눈빛은 꽃눈이 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면 꽃일이 될 테고, 우리가 쓰는 글이나 하는 말은 꽃글하고 꽃말이 되어요.


  때로는 얼굴에 뭔가 발라서 곱게 보이려 합니다. 이때에 ‘화장품’을 바른다 하고, ‘화장한다’고 하는데요, 한자말 ‘화장(化粧)’은 “곱게 꾸미다”를 가리킬 뿐입니다. 가만히 보면, ‘단장·화장’은 ‘꾸미다’로 담아낼 만하고, 이 얼거리를 헤아리면, 우리가 얼굴에 발라서 곱게 꾸미려 할 적에는 ‘꽃바른다(꽃바르다)’고 할 수 있어요. ‘꽃바르다 ← 화장하다’인 셈이지요.


  꽃처럼 되려고 꾸미면서 바르기에 ‘꽃가루’나 ‘꽃물’이에요. 꽃송이에서 날리는 꽃가루도 있을 테고, 우리가 얼굴에 남달리 바르는 꽃가루도 있을 테지요. 꽃에서 흐르는 꽃물도 있을 테고, 우리가 입술에 새롭게 바르는 꽃물도 있어요. 손톱이나 발톱에도 꽃물을 입혀요.


  어떤 꽃가루로 꽃얼굴이 되면 고울까요? 어떤 꽃물로 꽃손톱이나 꽃발톱이 되면 아름다울까요? 어떤 꽃빔을 차려입고서 꽃길을 걸으면 이쁠까요?


  값비싼 것을 쓰기에 꽃차림이 되지는 않습니다. 저마다 스스로 정갈히 짓거나 빚어서 누리는 살림살이가 아름답습니다. 차근차근 손수 지어서 보살피는 살림결이 고와요. 오랜 옛날부터 가꾸는 논밭이 살뜰합니다. 어쩌면 꽃밭이란, 꽃이 피어나는 밭뿐 아니라, 푸성귀를 알뜰히 건사할 줄 아는 밭자락을 가리키는 이름일 수 있습니다. 꽃밭처럼 꽃논, 꽃땅, 꽃숲, 꽃마을이 있고요. 꽃밭하고 꽃밭을 일구는 손길에서는 으레 꽃살림이 피어나리라 느낍니다.


 먼지나라


  이제 서울뿐 아니라 어느 곳에 가도 구름먼지로 휩싸입니다. 얼핏 안개처럼 보이지만 그냥 안개가 아닌 안개먼지입니다. 눈부신 햇살은 간곳없고 먼지하늘이 뒤덮습니다. 아무리 서울이 매캐해도 시골은 깨끗하다 했건만, 요즈음은 시골까지 갖가지 무시무시하고 아슬아슬한 것들이 넘쳐나느라, 시골바람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큰도시는 워낙 매캐해서 더는 발전소나 송전탑이나 쓰레기터를 지을 곳이 모자라다며, 이런 곳을 온통 시골에 때려지으려 해요.


  언제까지 고속도로하고 경기장을 더 올려야 할까요. 언제까지 기름 먹는 자동차를 더 늘려야 할까요. 왜 햇볕판을 고속도로 지붕으로 씌우려는 살림길은 없이 아름드리숲을 파헤쳐 마구 들여놓으려 할까요. 고흥 같은 고장은 경비행기 시험장처럼 끔찍한 막삽질을 행정으로 밀어붙입니다. 이 모두가 맞물리면서 먼지로 가득한 하늘이 되고, 온통 뿌연 먼지나라가 되어요.


  밭자락에 비닐을 씌우는 흙짓기가 사라지지 않고, 논자락에 비료하고 농약을 뿌리는 흙짓기가 없어지지 않으면, 시골에서도 푸른바람은 일어나지 못하리라 느껴요. 몇 마디 말로만 곱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한 손에는 호미를 쥐는, 다른 한 손에는 새길을 배우려고 책을 드는, 살림하면서 넉넉히 배우며 어깨동무하는 길이 되어야 바야흐로 뿌옇고 매캐한 먼지를 가뭇없이 몰아낼 만하리라 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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