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겁다’를 못 쓰는 까닭은

[오락가락 국어사전 42] ‘마감’인가 ‘기한’인가



  ‘선겁다’라는 낱말이 있어도 이를 제대로 쓰려면 쓰임새를 환히 밝혀야 하고, 어느 자리에 쓸 만한가를 짚어야 합니다. 우리 사전은 아직 이 구실을 못 합니다. ‘쇼크’란 영어를 ‘충격’으로 고쳐쓰라고만 다룰 뿐, ‘선겁다·놀라다’를 어느 자리에 어떻게 쓰면 좋을까를 다루지 못해요. ‘기한’이란 한자말을 ‘마감’으로 고쳐쓰라고 다루면서도 “마감 : 정해진 가한의 끝”처럼 엉뚱하게 풀이하는 사전이기도 합니다. 이런 잘잘못을 차근차근 바로잡아야겠습니다.



입맞춤 : 1. = 키스 2. = 키스 3. [북한어] [연영] ‘더빙’의 북한어 4. [북한어] 비굴한 아양이나 접촉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키스(kiss) : 1. 성애의 표현으로 상대의 입에 자기 입을 맞춤 ≒ 입맞춤 2. 서양 예절에서, 인사할 때나 우애·존경을 표시할 때에, 상대의 손등이나 뺨에 입을 맞추는 일

손맞춤 : x



  사전은 ‘입맞춤 = 키스’로 다루지만, 거꾸로 “키스 → 입맞춤”으로 다루어야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다른 낱말을 새롭게 생각할 수 있어요. 이를테면 손에 대고 입을 맞출 적에 ‘손맞춤’ 같은 말을 쓸 만합니다. ‘볼맞춤’이나 ‘눈맞춤’ 같은 말도 쓸 만하고요.



마감 : 1. 하던 일을 마물러서 끝냄. 또는 그런 때 2. 정해진 기한의 끝

기한(期限) : 1. 미리 한정하여 놓은 시기. ‘마감’으로 순화 ≒ 한기(限期) 2. 어느 때까지를 기약함



  ‘기한’은 “→ 마감”으로 다루면 될 뿐입니다. 그런데 이 한자말에 비슷한말이라며 ‘한기’를 덧붙이는데, 이런 한자말은 사전에서 덜어낼 노릇입니다. 그리고 ‘마감’을 풀이하면서 “기한의 끝”이라 적으니 엉뚱합니다. 돌림풀이인 셈입니다. 말풀이도 손질해야겠어요.



떼싸움 : = 패싸움

패싸움(牌-) : 패를 지어 싸우는 일 ≒ 떼싸움



  ‘떼싸움 = 패싸움’으로 다루기보다는 ‘패싸움’을 “→ 떼싸움”으로 다루면서 뜻풀이를 제대로 붙일 노릇입니다. “떼싸움 : 떼를 지어 싸우는 일”이라 하면 되어요.



여복(女卜) : 여자 판수 ≒ 고녀(?女)

판수 : 1. ‘시각 장애인’을 낮잡아 이르는 말 2. 점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맹인 ≒ 몽수(??) 3. [민속] = 박수



  ‘여복·고녀’ 같은 한자말은 낮춤말로 여기지 않으나 ‘판수’ 같은 한국말은 낮춤말로 여기는 사전풀이입니다. 사전이라면 말뜻을 꾸밈없이 붙일 노릇입니다. ‘시각 장애인’이라 해야 높임말이지 않습니다.



워밍업(warming-up) : 1. [운동] = 준비 운동. ‘준비 운동’, ‘준비’로 순화 2. 어떤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에 앞서 시험 삼아 해 보는 일

준비운동(準備運動) : [운동] 본격적인 운동이나 경기를 하기 전에, 몸을 풀기 위하여 하는 가벼운 운동 ≒ 몸풀기·워밍업·유도 운동·준비 체조

몸풀기 : 1. [운동] = 준비 운동 2.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 간단하고 쉬운 일을 먼저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사전은 ‘몸풀기 = 준비 운동’으로 다루지만, 거꾸로 다루어야 알맞지요. ‘준비운동·워밍업’은 “→ 몸풀기”로 다루고 뜻풀이를 제대로 붙일 노릇입니다. ‘준비운동’ 뜻풀이를 살피면 “몸을 풀기 위하여”처럼 적어요. 그러니 ‘몸풀기’가 마땅히 으뜸말이어야지요.



환영(幻影) 1.  눈앞에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 ≒ 곡두 2. [심리] 사상(寫像)이나 감각의 착오로 사실이 아닌 것이 사실로 보이는 환각 현상 ≒ 환상(幻像)

곡두 : = 환영(幻影)

허깨비 : 1. 기(氣)가 허하여 착각이 일어나, 없는데 있는 것처럼, 또는 다른 것처럼 보이는 물체 ≒ 헛것 2. 생각한 것보다 무게가 아주 가벼운 물건 3. 겉보기와는 달리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몹시 허약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헛것 : 1. 헛일 2. = 허깨비



  한국말 ‘곡두’를 “= 환영”으로 다루는 사전인데, ‘곡두’를 제대로 풀이할 노릇이요, ‘환영’은 “→ 곡두. 허깨비. 헛것”으로 다루면 됩니다.



살강 : 그릇 따위를 얹어 놓기 위하여 부엌의 벽 중턱에 드린 선반. 발처럼 엮어서 만들기 때문에 그릇의 물기가 잘 빠진다

식기건조대 : x

식기(食器) : 1. 음식을 담는 그릇. ‘밥그릇’, ‘음식 그릇’으로 순화 2. ‘1’에 담은 음식의 분량을 세는 단위

건조대(乾燥臺) : 물건 따위를 말리려고 설치한 대



  ‘밥그릇’으로 고쳐쓸 ‘식기’인데, 흔히들 ‘식기건조대’라는 말을 씁니다. 그릇에 남은 물을 말리려고 얹는 살림을 ‘살강’으로 알맞게 쓰도록 이끌어야지 싶어요. ‘건조대’도 “→ 살강”으로 다루면 됩니다.



맨눈 : 안경이나 망원경, 현미경 따위를 이용하지 아니하고 직접 보는 눈 ≒ 육안(肉眼)

육안(肉眼) : 1. = 맨눈 2. 식견 없이 단순히 표면적인 현상만을 보는 것 3. [불교] 오안의 하나. 사람의 육신에 갖추어진 눈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것만을 볼 수 있다



  ‘육안’은 “→ 맨눈”으로 다루면 될 텐데, 사전은 ‘육안’에 다른 풀이를 덧달아 놓습니다. 곰곰이 헤아린다면 ‘맨눈’ 뜻풀이를 넓힐 만합니다. 예전에 불교는 한문만 썼을 터이나 이제는 한국말로 옮길 노릇이요, 한국말로 옮기면서 ‘맨눈’을 널리 쓰는 길을 짚어야겠습니다.



한마디 : 짧은 말. 또는 간단한 말

요약(要約) : 말이나 글의 요점을 잡아서 간추림 ≒ 요략

간추리다 : 1. 흐트러진 것을 가지런히 바로잡다 2. 글 따위에서 중요한 점만을 골라 간략하게 정리하다

간략하다(簡略-) : 간단하고 짤막하다 ≒ 간약하다



  ‘요약·요략’은 “→ 한마디”로 다루고, ‘한마디’ 뜻풀이를 보태야겠어요. 그런데 ‘간추리다’를 ‘간략하다’란 한자말로 풀이하는 사전이로군요. 이런 돌림풀이도 찬찬히 손질해야겠습니다.



놀라다 : 1. 뜻밖의 일이나 무서움에 가슴이 두근거리다 2. 뛰어나거나 신기한 것을 보고 매우 감동하다 3. 어처구니가 없거나 기가 막히다 4. 평소와 다르게 심한 반응을 보이다

놀랍다 : 1. 감동을 일으킬 만큼 훌륭하거나 굉장하다 ≒ 선겁다 2. 갑작스러워 두렵거나 흥분 상태에 있다 3. 어처구니없을 만큼 괴이하다

놀람 : ‘놀라움’의 준말

놀라움 : 놀라운 느낌

선겁다 : 1. 감동을 일으킬 만큼 훌륭하거나 굉장하다 = 놀랍다 2. 재미가 없다

쇼크(shock) : 1.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생겼을 때 갑자기 느끼는 마음의 동요. ‘충격’으로 순화 2. [의학] 갑작스러운 자극으로 일어나는 정신·신체의 특이한 반응

충격(衝擊) : 1. 물체에 급격히 가하여지는 힘 2. 슬픈 일이나 뜻밖의 사건 따위로 마음에 받은 심한 자극이나 영향 3. [의학] 사람의 마음에 심한 자극으로 흥분을 일으키는 일



  사전은 ‘쇼크’를 ‘충격’이란 한자말로 고쳐쓰도록 풀이하는데, ‘쇼크·충격’은 모두 “→ 놀라다. 놀랍다. 선겁다”로 다룰 만합니다. 때하고 자리를 살펴서 알맞게 쓸 낱말을 차근차근 짚어 주는 사전이어야지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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