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데일리

나는 〈북데일리〉라는 누리신문이 ‘최초의 책 이야기 전문 신문’이라는 이름을 내걸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썼다. ‘맨 처음’ 했다는 대목이 뭐가 그리 대수로운가. 둘째는 떨어지거나 처지나? 셋째이면 어떻고 막째이면 어떨까. ‘맨 처음’으로 치자면, 나는 대한민국에서 맨 처음으로 “헌책방 모임”을 열었고 “헌책방 이야기책”을 펴냈으며 “헌책방 전문 사진”을 맨 처음으로 찍었다. “헌책방 사진 전시회”도 맨 처음으로 했고, “우리말 운동가” 이름도 가장 어린 나이에 올렸더라. 그러나 이런 ‘맨 처음’이 뭐가 대수로울까. 일찍 했든 늦게 했든, 얼마나 올바르고 알뜰하고 재미나고 보람차고 신나고 조촐하게 제 길을 걸어가느냐가 대수롭지 않을는지? 맨 처음 어느 일을 열었더라도 첫마음을 잃거나 잊거나 나뒹군다면, ‘맨 처음’이란 무슨 값이 있을까? 내가 맨 처음으로 무엇을 했대서 누가 둘째나 셋째나 쉰째로 이 일을 하더라도 나만 목소리를 내야 할 턱이 없다. 누구나 다 다른 목소리로 어떤 이야기를 신나게 펼 수 있으면 좋다. 그리고 이렇게 해야 재미있고 즐거운 이야기판이 태어난다. 우리는 ‘맨 처음’보다는 ‘어떤 책 이야기를 어떻게 누구와 함께 언제 어디에서’ 하는가를 대수롭게 보아야지 싶다. 책이란 ‘다 다름’이다.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른 곳에서 다 다른 눈길로 바라보며 생각한 이야기를 다 다르게 담아서 다 다른 자리에서 사고팔기에 다 다른 때에 다 다른 까닭으로 만나서 다 다르게 받아들이며 읽고 다 다른 삶에 받아들이거나 곰삭이도록 이끌어 주는 ‘책 누리신문’이 될 만하다고 느낀다. 이리하여, 나는 이 ‘다 다름’ 가운데 한 가지 목소리를 내고자 했다. 예전부터도 그랬고 오늘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이렇게 내 목소리를 내며 살 생각이다. 그러면 오늘 ‘북데일리’가 보여주는 목소리는 어떠한가? 얼마나 ‘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다 다른 삶’을 바탕으로 ‘다 다른 책’을 보여주는가? 〈북데일리〉에 첫 글을 보내고 나서, 이곳에 실린 글을 죽 살피다가 ‘아차, 내가 잘못했구나’ 하고 생각하기는 했다. 〈북데일리〉는 어느 한곬 목소리만 내는 ‘책 이야기 누리신문’인 줄 미처 몰랐으니까. 그러나 나는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 삶도 하늘처럼 섬겨야 하며, 내가 모르거나 못 느끼는 대목도 짚기 때문에, 고개숙여 배워야 한다고 느끼며, 그 뒤로도 꾸준하게 글을 보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북데일리〉가 나한테 책을 이야기하는 글을 써서 보내 달라고 대표기자가 찾아와서 여쭈었을 적에도 이곳 스스로 결을 넓히고 품을 키우려 했으리라 하고 여겼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고서 돌아보니 아니네. 〈북데일리〉는 그저 ‘책을 이야기하는 첫 누리신문’이란 이름을 얻고자 했을 뿐, 온누리 온갖 책을 두루 다루려는 눈길이나 손길이 아닌, 외곬로 치달으면서 온누리 숱한 책을 모르쇠로 등돌리거나 내치려는 곳이었네. 이 모습을 둘러싸고서 몇 마디 이야기를 한 나를 뜬금없이 ‘강퇴’한 대목으로도 깜짝 놀랐다. 나를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모시려 할 적은 언제이고, 계약해지나 해명 한 마디 없이 회원계정까지 없애버리는 짓은 뭘까? 내가 쓴 글이 정 거북했으면 전화로든 누리글월로든 따지거나 물어보면 되지 않나? 또는 누리신문에서 ‘수다판’을 펼 수 있겠지. 곰곰이 따지면 그대들은 계약위반에 명예훼손에 인격모독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대들 〈북데일리〉에 하고픈 말은 오직 하나이다. 나는 내 글이 〈북데일리〉에 갑작스레 못 실리는 일이 안타깝지 않다. ‘최종규이든 다른 사람’이든, ‘다 다른 생각과 목소리로 살아가는 사람’ 이야기가, 칼을 쥔 사람 힘 앞에 난데없이 목아지가 달아날 수 있다는 이런 어마어마한 칼부림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으면서 일어나는 일이 놀라울 뿐이다. 총자루나 칼자루보다 붓자루가 무섭구나 하고 느낀다. 붓자루가 사람을 더 칼로 후벼파는구나. 책을 말한다는 붓자루로도 얼마든지 금을 긋고서 이 나라를 갈기갈기 찢으려는 일을 벌일 수 있구나. 2007.3.20. (덧말 : 〈북데일리〉라는 ‘책을 말하는 누리신문’은 그 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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