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좀 골라 줘

“야, 책 좀 골라 주라.” “무슨 책?” “아이들 책.” “마, 아이들 책은 니가 스스로 배워서 사 줘야지.” “내가 아이들 책을 어떻게 알아. 너가 많이 봤으니 좀 추천해 줘.” “어른인 네가 보는 책이라면 추천할 수 있지만, 아이들이 보는 책은 추천해 주지 못하지.” “그냥, 아무 책이라도 추천해 줘.” “녀석아, 생각해 봐라. 너는 네 사랑이하고 어디 놀러갈 때 그냥 아무 데나 가냐. 또 사랑이한테 선물 사 줄 때 아무거나 사 주니. 아이들한테 책을 읽히려고 하는데 아무 책이나 사 줄 수 없지. 또 함부로 추천하는 책을 사 줄 수도 없고. 사랑이한테 선물 사 주듯이, 네가 손수 배워서 찾아서 사 줘야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런 책 사 주면 될까?” “네가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떻게 아니? 그럴 바에야 그냥 돈으로 주는 게 나아.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참으로 아이들한테 좋은 책일까? 아이들 마음밭을 무너뜨리는 책이지는 않을까? 잘 생각해 봐. 그리고 네가 아이를 낳아서 기른다고 생각해 봐. 너는 네 아이한테 어떤 책을 사 읽힐 생각이니? 네가 먼저 살펴보고 좋은지 나쁜지를 가려낼 수 있은 다음, 네 아이한테 책을 읽혀야 하지 않겠어? 이 일이 쉽지 않겠지만, 아이를 생각한다면 쉽지 않은 일이라고 그냥 해서는 안 되겠지.” 고등학교 적 동무가 내 일터인 도서관으로 찾아왔다. 선물할 어린이책을 사러 배다리 헌책방거리에 온 김에 나한테 ‘무슨 책을 골라 주면 좋을까 물어 보려고’ 했단다. 그렇지만 내가 동무녀석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책이 좋다고 할 책이든 안 좋다고 할 책이든 네가 스스로 골라라’. 어쩌면 동무녀석은, 전집 한 가지라든지, 낱권책 몇 가지를 골라 줄 수 있겠지. ‘요새 아이들이 많이 본다는 책’을 추천받아서 사 줄 수 있고. 그러면 동무녀석이 사다 준 그 책을 받아드는 아이는 얼마나 좋아할까. 얼마나 반길까. 추천하기를 안 하려 하다가, 그래도 애써 물어보는데 알려주어야지 싶어서 생각을 바꾼다. “아이들 책은 함부로 추천해 줄 수가 없어. 선물을 받을 아이는 몇 살이니?” “초등학교 5학년쯤.” “음, 초등학교 5학년이라. 그래, 아이들한테 책을 추천해 주기 어려운 까닭은, 같은 초등학교 5학년이라고 해도 눈높이나 지식이 달라. 어느 아이는 책을 좀더 많이 읽었을 테고 어떤 아이는 아직 책을 잘 못 읽을 수 있지. 아이마다 좋아하는 길이 다르고 마음결이 다르잖아. 이쪽에 있는 책들은 모두 그림책인데, 어떤 책은 지식을 길러 주는 책이고, 어떤 책은 생태·환경을 이야기감으로 삼은 책이야. 그 아이한테는 동화책이 알맞을 수 있는데, 어느 동화책은 철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치기도 하고 어느 동화책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지내는 이야기를 담지. 책마다 결이 다르고 갈래가 다르기 때문에, 그 아이한테 맞춰서 그 아이를 잘 생각하면서 골라야 한다고. 그러니 아이들 책은 아무나 추천해 줄 수 없고, 아이 어버이가 손수 배우고 익히고 갈고닦아서 하나씩 사 줘야 해.” 2007.9.2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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