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

아랫집 아주머니가 돌아왔는가? 생각해 보니 아랫집 아주머니는 거의 보지 못했다. 아랫집 아주머니는 거의 하루 내내 김밥집에서 일한다. 아랫집 아저씨는 거의 하루 내내 집에 붙어 지낸다. 언제나처럼 새벽 두 시부터 시끄럽던 아랫집. 이웃 어느 집에서 아랫집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나 보다. 그리하여 새벽 두어 시 무렵에 시끄럽게 울리면서 경찰이 오고, 그러면서도 아이를 뒤에 두고 거친 말씨에 싸움말이 오가고, 양육권이 어떻고 하는 이야기도 나온다. 위칸에 사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해야 할는지 하나도 모르기에 그저 멀거지 창가에 기대서서 경찰하고 아랫칸 두 분이 삿대질하고 목청 높여 싸우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아침이 밝는다. 일흔 해쯤 묵은 적산가옥 나무집이라 나무 계단을 디딜 적마다 삐그덕 소리가 난다. 살금살금 발소리를 죽인다면서 내려오는데, 아랫칸 아이들은 내 발걸음 소리를 알아채고는 문을 와락 열고 “아저씨, 어젯밤에 우리 어머니 왔어요?” 하고 물으며 궁금해한다. 와, 어제 그렇게 두 분이 시끄럽게 싸웠어도 아이들은 곯아떨어져서 싸움소리를 못 들었나. 오히려 잘된 노릇이라고 느낀다. “그래, 어젯밤 늦게 너희 어머니가 김밥집 일을 마치시고 돌아오는 모습을 봤어. 오늘도 새벽바람으로 일찌감치 일하러 나가시더라.” “아이 참. 오늘은 꼭 어머니 보고 싶었는데.” 아침거리를 장만하려고 영천시장에 가려는 길에 아이들하고 몇 마디 나누는 말에 코끝이 찡하다. 아이들이 열어 놓은 문틈으로 얼핏 보이는데, 아래칸 아저씨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듯하다. 아주머니는 그렇게 늦게까지 일하고 들어와서 한바탕 싸움을 벌여야 했고, 또 새벽바람으로 다시 일하러 나가면서 아이들하고 말 한 마디도 못 섞은 셈이네. 아이들은 어머니 목소리뿐 아니라 어머니 얼굴조차 거의 못 보면서 사는 셈이네. 어머니를 얼마나 보고 싶을까. 아니, 어머니 얼굴을 얼마나 만지거나 쓰다듬고 싶을까. 이렇게 어머니를 바라는 아이들인데, 이 집 아저씨는 왜 이렇게 아주머니한테 악에 받치고 가시가 돋친 막말을 쏟아부을 수 있을까? 김밥집 일꾼은 하루 내내 서서 일하며 얼마나 고되는데, 이런 곁님하고 왜 다툼을 벌일까? 두 어버이가 삿대질하며 싸우는 일이란, 누구보다 스스로 가슴에 칼을 찌르는 셈일 뿐 아닐, 아이들 가슴에까지 칼을 찌르는 셈이라고 느낀다.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기보다는 따돌림에 괴롭힘까지 받으면서 자라는 아래칸 두 아이가 아닌가 싶다. 아침을 먹고서 책집마실을 나간다. 한참 동안 신나게 책집마실을 하고서 장만한 묵직한 책짐을 낑낑대며 들고 돌아오면서 보니, 아래칸에서 빨래한 자국이 보인다. 고양이 발바닥처럼 조그마한 마당이기에 빨래 널 데가 마땅하지 않아, 아래칸에서는 좁은 골마루하고 계단 옆에 줄줄이 빨래를 널어 놓는다. 나는 위칸 바깥마루에 빨래를 널고 창문을 열어 놓는다. 아래칸 아저씨가 빨래하는 일은 없으니, 빨래가 널린 모습으로 보면 아주머니가 살짝 집에 돌아온 듯하다. 아무튼 아래칸이 조용하다. 아이들이 뛰며 노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예전에 아래칸에 살던 사람들은 툭하면 거짓말을 해대는 이들이었다면, 몇 달 앞서부터 들어온 아래칸 사람들은 툭하면 싸우고 지지고 볶는 나날인 두 어버이하고 가녀린 아이들이다. 2001.9.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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