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맛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3
구광렬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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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책시렁 82


《불맛》

 구광렬

 실천문학사

 2009.12.14.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헤아릴 수 있다면 글 한 줄은 언제나 노래가 될 만합니다. 스스로 어느 자리에 있는 줄 모르거나 등돌린다면, 스스로 선 자리에서 누구하고 손잡거나 어깨동무할 적에 즐거운가를 잊거나 잃는다면, 스스로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한 이하고 사랑스레 걸음을 떼지 않거나 곰살궂지 않다면, 우리 이야기는 노래가 되지 못합니다. 《불맛》을 읽으며 글쓴이 마음이 어떻게 물결을 치면서 오르락내리락하는가를 느낍니다. 글로 옮긴 삶을 들여다보면서 우리 집 아이들을 가만히 새로 바라봅니다. 신나는 낯빛을, 시무룩한 낯빛을, 활짝 웃는 낯빛을, 눈물이 글썽한 낯빛을, 졸음이 가득한 낯빛을, 배불러서 꼼짝을 못하겠다는 낯빛을, 그야말로 온갖 낯빛을 헤아립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겪거나 치르는 삶이란, 이처럼 맞닥뜨리면서 새로 배우고 받아들여서 피어나려는 몸짓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그렇겠지요. 신문종이로 라면 냄비 뚜껑을 삼든, 신문종이로 불쏘시개를 삼든, 또 책으로 고운 넋을 읽든, 책을 베개 삼아 눕든, 책을 어디에 받침대로 삼든, 그때그때 배우는 숨결이 다르면서 아기자기합니다. 저한테는 모닥불을 성냥을 그어 붙이는 불맛, 이 모닥불에서 아이들하고 춤추는 저녁놀이가 더없이 애틋합니다.



라면을 끓이려 냄비를 찾으니 뚜껑이 없다 / 부스럭 신문지 한 장을 올린다 // 신문 속 사람들이 웃고 있다 / 무얼 보고 있나 / 눈동자의 초점을 따라가니 / 접힌 부분의 뒷면이 궁금하다 (오, 아프리카/14쪽)


어머닌, 사진만 보고 결혼하셨다 / 시집이라고 와보니 솥엔 구멍이 나 있고 / 양은 주걱은 닳아 자루까지 닿았으며 / 숟가락은 없고, 나뭇가지를 분질러 만든 / 짝 모를 젓가락들만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최무룡/74쪽)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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