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님

한국말은 바탕이 어깨동무이다. 한국말은 위아래로 가르려 하지 않는다. 섬기거나 아끼는 마음은 있되, 위아래 아닌 어깨동무로 나아가려 한다. 이 얼거리를 안다면, 가시버시 사이가 되든, 어른하고 아이 사이가 되면, 어떤 말씨를 짓거나 가꾸어야 슬기롭고 사랑스러운가를 깨달을 수 있다. 나는 예전부터 ‘아내’란 이름이 몹시 거북했다. ‘아내’는 일본 한자말 ‘내자(內子)’를 고스란히 옮긴 말씨일 뿐이다. 예전에는 이를 ‘안해’라 했고, 요새는 ‘아내’로 적는데, “안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가시버시 가운데 ‘가시(각시)’ 쪽은 집안에 머무는 사람이라는 뜻을 나타내니, 한국말하고는 안 어울린다. 어떤 이름을 써야 좋을까 하고 헤매다가 2004년에 그물코 출판사 책지기님이 쓰는 ‘옆지기’가 퍽 좋아 보여 그 말씨를 배워서 쓰기로 했다. 그러나 ‘옆지기’는 썩 혀에 안 붙어서 힘들었다. 이제 오늘부터 ‘곁님’이란 이름을 새로 헤아려서 쓰려 한다. ‘옆’하고 ‘곁’은 느낌이나 뜻이나 결이 살짝 갈린다. 어린이가 해님이나 꽃님이라 말하듯, 곁에 있는 이를 ‘곁이’ 아닌 ‘곁님’이라 이르고 싶다. 서로 아끼고 서로 돌보는 마음을 ‘님’이란 말끝에 실으려 한다. 사내도 가시내한테 곁님이요, 가시내도 사내한테 곁님이다. 어깨동무하는 이름이다. 2013.11.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