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많은 사람들이 이오덕 어른한테서 무언가 배웠다. 그렇지만 못 배운 대목도 참 많다. 사람들이 이오덕 어른한테서 배우는 거의 모두는 ‘지식’이지 싶다. 이와 달리 사람들이 이오덕 어른한테서 거의 못 배우거나 배우려 하지 않는 길은 ‘마음’이지 싶다. 글쓰기 운동·교육 운동·문학 운동·문화 운동·어린이문학 비평·우리 말 운동 같은 ‘지식’은 참 많은 이들이 배웠고 따르고, 우리 삶터나 일터에서 잘 쓰고 두루 펼치지 싶다. 그렇지만 이오덕 어른이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쓴 ‘마음’과 ‘생각’과 ‘뜻’과 ‘얼’까지 두루 살피고 헤아리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드물다고 느낀다. 머리에 지식이 많이 든 사람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다짐을 알고 늘 말하며 다닌다. 그러면 이런 다짐은 무엇을 가리킬까? 이웃돕기를 하라는 뜻일까? 이오덕 어른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기”를 말하기보다는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하고 하나가 되기”를 말했다. 가난해지거나 어려워지라는 뜻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어깨동무를 할 줄 아는 삶이 되자고 말했다. 이오덕 어른이 쓴 숱한 책은 이웃하고 하나가 되려는 몸짓이다. 멧골 아이하고, 멧새하고, 숲이며 바람하고, 구름하고 풀꽃하고, 언제나 마음으로 하나가 되면서 이러한 숨결을 고스란히 삶으로 옮겨서 하루를 지으려고 했다고 느낀다. 이오덕 어른이 쓴 《우리 글 바로쓰기》 같은 책은, 우리더러 말글을 바르게 쓰라는 따끔한 꾸중이 아니다. 이오덕 어른 스스로 여태 말글을 말글답지 않게 못 쓰며 살았다고 깨달아 스스로 뉘우치면서 새로 배우려고 갈고닦은 마음자락이다. 스스로 배운 만큼 낱낱이 펼친 땀방울이다. 이러한 책은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좋다. 이러한 책을 읽으려면 마음으로 읽어 우리 스스로 새길을 여는 뜻으로 키우면 된다. 이러한 책을 안 읽는다면 우리 스스로 새길을 기쁘게 짓는 마음으로 가꾸면 된다. 곰곰이 살필 대목은 오직 마음이다. 마음이 있기에 어깨동무를 한다. 마음이 있기에 어린이가 어떤 숨결인지를 알아볼 뿐 아니라, 모든 어른이 처음에는 어린이였다는 대목을 깨우친다. 마음을 열어 다스리면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누구나 가르치며 배울 수 있고, 누구나 살림을 짓고 흙을 일구며 아름답게 노래할 수 있다. 일을 많이 했거나 훌륭하기에 이오덕 어른을 떠올리거나 기릴 만하지 않다. 이 땅에 ‘마음’이란 씨앗을 뿌릴 숲이 모조리 짓밟혀서 우는 아이들을 상냥하게 어루만지면서, 아이들이 웃으며 뛰놀 환한 자리를 처음부터 새롭게 지어야겠다고 여겨, 이 길을 걸은 어른이기에 이오덕이란 사람을 떠올리거나 읽을 만하다. 2005.2.1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