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나는 빨래하는 삶을 곧잘 글로 옮긴다. 그런데 설거지하는 삶이나 비질과 걸레질을 하는 삶은 좀처럼 글로 옮기지 않는다. 곰곰이 돌이킨다. 빨래하는 삶은 이럭저럭 말미를 내어 글로 옮긴다지만, 설거지와 비질과 걸레질까지는 차마 글로 못 옮긴다 할 수 있다. 밥을 하는 삶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밥을 하는 이야기를 거의 글로 쓴 적 없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으니까 글로 못 쓴다 할 수 있다. 늘 하고 자주 하며 오래 하더라도, 스스로 매우 사랑하면서 누리는 삶이 아니라 한다면 글로 옮기지 못한다 할 수 있다. 퍽 어린 아이들 옷가지를 손으로 빨래를 할 때에는 하루에 몇 벌씩 해야 한다. 한꺼번에 할 수도 있으나, 빨래감은 틈틈이 나오니, 틈틈이 나오는 대로 빨래를 할밖에 없다. 설거지도 빨래를 할 때와 같다. 뭐 하나만 해도 개수대에 설거지감이 놓인다. 밥을 먹든 무얼 하든 설거지를 할 그릇이나 접시나 수저나 물잔이 나온다. 그야말로 손에 물 가실 날이 없고, 손가락이 보송보솔 마를 겨를이 없다. 그런데, 빨래를 하고 나서 마당에 널 적에는 손가락이 이럭저럭 마른다. 설거지를 마친 뒤에는 한동안 손이 안 마른다. 빨래를 하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기기 마련이지만, 설거지를 하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기지 못한다. 설거지를 하다 딴생각을 하면 그만 그릇을 놓치니까. 이러다 그릇을 꽤 깨먹어서, 설거지를 할 적에는 오로지 설거지만 생각하려 한다. 설거지를 할 적에는 온통 설거지 생각뿐이다. 다만, 설거지를 하면서 이제 이다음으로 어떤 일이 기다리는가 하고 살짝 돌아본다. 밥을 하며 그릇을 설거지할 적에는, 국이나 밥을 살피면서 하나하나 헹구거나 부신다. 이러는 동안 아이들이 복닥거리는 모습을 살핀다. 빨래를 하면서 어수선하거나 어지럽던 마음을 찬찬히 가다듬는데, 설거지를 하면서 딴생각이 깃들 틈이 없으니 외려 이런 설거지로도 마음은 저절로 가라앉는다. 다시 헤아리는데, 빨래를 마쳐서 마당에 널고 나면, 햇살이 눈부신 모습이 보기좋다며 사진을 찍곤 한다. 그렇지만 설거지를 마친 뒤에 사진을 찍은 일이 여태 없네. 이러니 설거지 이야기는 거의 안 쓰거나 못 썼다. 2012.5.31.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