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 없던 시외버스



인천에서 고흥까지 시외버스로 다섯 시간 넘게 걸립니다. 자다가 깨어 책 하나 다 읽고서 다시 자고, 또 깨어 책 하나 더 읽어도 널널한 길입니다. 그런데 이 시외버스에 등불이 없네요. 창밖으로 해거름을 지켜보다가 등불을 찾아보는데 없어서 놀랍니다. 허허, 우째 등불이 없노. 고요히 눈을 감으며 마음을 다스립니다. 이러다가 시외버스가 긴 굴길을 지나갈 무렵 얼른 수첩을 꺼내어 동시를 적습니다. 긴 굴길을 빠져나오면 손전화를 켜서 동시를 마무리합니다. 시외버스에 부디 등불을 달아 주시기를. 너덧 시간을 시외버스에서 보내야 하는 사람은 이 길에 책도 읽고 동시도 쓰고 싶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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