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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히라마쓰 요코 지음, 이영희 옮김 / 바다출판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숲책 읽기 147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
히라마쓰 요코
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2017.7.21.
“좀 와 봐. 빨리 도와!” 요리하는 도중 엄마가 큰소리로 부르는 이유는 알고 있다. 엄마가 초밥용 밥을 밥통에 담아 놓으면 기운차게 부채질하는 게 나의 몫이다. (12쪽)
“씻기 쉬운 솥이 좋은지, 씻기 어려워서도 밥맛에 집착하는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면, 밥 짓는 방법이나 솥의 종류도 자연히 결정되지 않을까요?” (106쪽)
“밥은요, 최종적으로는 애정이에요. 맛있는 밥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만 있으면 맛있게 지어져요.” (108쪽)
‘적당히’ 또는 ‘대충’, 이것이 제일 어렵다. 생각해 보라. ‘적당히’란, 즉 ‘적절한 조절’이기 때문에 좋은 것, 나쁜 것, 맛있는 음식, 맛없는 음식 모두 파악하고 있지 않으면 딱 좋은 곳에 착지할 수가 없다. 주위에서 보면 흐름에 맡기는 눈대중으로 보이기 쉽지만, 손가락과 눈과 코와, 자신의 혀와, 부모로부터 배운 맛과 어린 시절부터 먹어 온 맛과, 모든 감각과 경험과 지혜가 총동원돼야 비로소 냄비에 넣을 고춧가루 한 숟가락의 질과 양이 정해진다. 즉, 개개인의 솜씨가 무서울 정도로 드러난다. 레시피의 숫자를 믿고 만든 요리보다 훨씬 엄격하게. (116쪽)
저는 제가 쓴 글을 읽으면서 곧잘 눈물에 젖습니다. 제가 글을 쓸 수 있는 힘이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면, 저 스스로 제 글을 읽으면서 새롭게 깨어난다고 할 만해요. 제가 손수 지은 밥을 스스로 먹으면서 몸에 기운이 돌듯, 제가 손수 쓴 글을 스스로 읽으면서 마음에 기운이 돌지 싶어요.
아이들한테 늘 이야기합니다. 너희가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서 스스로 누리면 가장 아름답단다, 하고요. 너희가 스스로 놀이를 짓고 놀이감을 지어서 누리면 그때에 가장 신난단다, 하고요.
《한밤중에 잼을 졸이다》(히라마쓰 요코/이영희 옮김, 바다출판사, 2017)를 읽고서 책상맡에 그대로 둡니다. 옮김말은 그리 안 좋아서 첫 줄부터 끝 줄까지 온통 연필로 이 말씨는 저렇게 고쳐 놓고 했는데요,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자라는 동안 이 책을 가만히 읽고 같이 누리면 아름답겠다고 느꼈습니다.
글쓴이는 스스로 지은 밥을 바로 스스로 기쁘게 누린다고 해요. 이 기쁨을 고스란히 글로 옮겨서 ‘요리책 아닌 요리책’, 그러니까 ‘고스란히 밥책이자 삶책’을 여미었습니다.
잘난 밥이나 멋진 밥을 짓지 않는다고 해요. 스스로 기쁘게 누리면서 마음이 환하게 피어오르도록 북돋우는 밥을 느긋하게 짓는다고 합니다. 남한테 자랑하거나 선보이거나 가르칠 새롭거나 놀라운 밥이 아니라, 날마다 수수하게 즐기면서 몸을 가꾸고 마음을 다스릴 밥 한 그릇을 지을 뿐이라고 합니다.
글쓰기도 이와 같아요. 말하기도 이와 같지요. 모든 살림이, 모든 배움이, 모든 일하고 놀이가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대단한 일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즐거울 일을 하면 되어요. 우리는 뜻깊은 일을 찾아나설 까닭이 없습니다. 서로 기쁘게 웃고 춤추면서 어깨동무할 일을 하나하나 하면 넉넉하지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