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을 틈



요 며칠 동안 밥 먹을 틈이 없이 보냈습니다. 하루 두 끼니를 먹는 둥 마는 둥합니다만, 굳이 두 끼니를 안 먹어도 된다고 여기기에 밥 먹을 틈이 없다 해서 힘들거나 서운하지 않습니다. 그러려니 여깁니다. 밥 먹을 틈이 없기에 굶어죽을 일이 없습니다. 밥 먹을 틈을 굳이 안 낸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이등병이던 때가 곧잘 떠오르는데, 1996년 1월 일이에요, 윗자리에 있다는 병장이며 상병이며 일병 모두, 이등병 한 사람한테 온갖 일을 떠맡긴 바람에 열이틀 동안 밥 한 술을 못 뜨고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에 잠도 거의 못 자면서 갖은 일을 떠맡았지요. 지오피란 데에 들어가기 앞서인데, 여섯 달 동안 바깥바람을 못 쐬리라 여기며 윗사람이란 이들이 줄줄이 휴가를 얻어 달아나느라 참으로 죽을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먹지 않아도 용케 안 죽네?’ 싶었어요. ‘이놈들이 사람을 말려죽이려 하는구나. 그럼 얼마까지 안 먹으며 사나 지켜보자!’ 하는 마음이었지요. 밥 먹을 틈이 없으면 책 들출 틈도 없기 마련인데, 이 없는 틈에도 빨래는 하고 밥은 지어서 아이들더러 먹으라고 합니다. 밥 먹을 틈을 내지 않아 몸에 밥을 넣지 않으면 몸이 ‘밥을 삭이는 데에 힘을 덜 쓰거나 안 쓰’기에 여러모로 일손을 잘 추스를 만해요. 문득 돌아보면 그래요. 밥을 넉넉히 먹으면 오히려 책도 못 읽습니다. 배부르거든요. 배부른 몸은 책하고 동떨어집니다. 뱃속이 가벼운 몸일 적에 책하고 사귑니다. 가난해야 책하고 사귄다기보다, 몸에 밥이란 것을 덜 넣으면서 홀가분히 돌볼 수 있는 살림길이라면 어느 책이든 마음껏 받아들여서 마음을 살찌울 만해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 삶터가 ‘먹고사는 길’에 사람들 눈이 치우치도록 흐른다면, 사람들은 ‘마음을 살찌우는 길’하고는 자꾸 멀어집니다. 책을 덜 보든 더 보든 대수롭지 않아요. 책을 읽더라도 마음을 안 살찌우면 읽으나 마나입니다. 책을 안 읽더라도 마음을 살찌운다면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