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곱게 마름하는 길

[오락가락 국어사전 29] 가르거나 나누자면



  돌림풀이에 갇힌 사전은 겹말풀이에까지 갇히기 마련입니다. 낱말을 꾸러미로 살피지 않으니 굴레에 갇히는데, 쉽고 또렷하게 쓰는 한국말을 밀쳐놓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새롭게 지어서 쓰는 알맞춤한 한국말을 살피다 보면 사전 올림말도 올곧게 추스를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이 곁에 둘 사전인 줄 제대로 보아야겠습니다. 털어낼 낡은 말은 말끔히 털어내기를 바랍니다.



허옇다 : 1. 다소 탁하고 흐릿하게 희다

희다 : 1. 눈이나 우유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

탁하다(濁-) : 1. 액체나 공기 따위에 다른 물질이 섞여 흐리다 2. 얼굴이 훤히 트이지 못하고 궁한 기운이 있다 3. 성질이 흐리터분하고 바르지 못하다 4. 소리가 거칠고 굵다 5. 빛이 선명하지 못하다

뿌옇다 : 1. 연기나 안개가 낀 것처럼 선명하지 못하고 좀 허옇다. ‘부옇다’보다 센 느낌을 준다



  ‘허옇다’ 풀이를 보면 “탁하고 흐릿하게 희다”라 하고, ‘탁하다’는 ‘흐리다’로 풀이하니, 여러모로 돌림·겹말풀이인 셈입니다. ‘탁하다’는 “→ 흐리다”로 다루면 됩니다. 이밖에 ‘뿌옇다’를 “좀 허옇다”로 풀이하는데, ‘허옇다·뿌옇다’ 두 낱말은 뜻풀이를 좀 손질해야겠습니다.



재단(裁斷) : 1. = 재결(裁決) 2. = 마름질

재결(裁決) : 1. 옳고 그름을 가려 결정함 ≒ 재단(裁斷)

마름질 : 옷감이나 재목 따위를 치수에 맞도록 재거나 자르는 일 ≒ 단재(斷裁)·재단(裁斷)·전재(剪裁)



  옷감을 알맞게 자르는 일을 ‘마름질’이라 하지요. 이를 한자말로 ‘재단’이라고도 한다는데, 이밖에 ‘단재·전재’ 같은 한자말을 굳이 비슷한말로 올려야 할까요? 털어낼 노릇입니다. ‘재결’ 같은 한자말도 사전에서 털 노릇이고요.



두통(頭痛) : 머리가 아픈 증세 ≒ 머리앓이

머리앓이 : = 두통(頭痛)



  머리가 아플 적에는 ‘머리앓이’라 해야 뜻이 또렷합니다. 사전은 ‘두통’을 풀이할 뿐인데, ‘두통’은 “→ 머리앓이”로 다루고, ‘머리앓이’를 풀이해 놓아야겠습니다.



속도(速度) : 1. 물체가 나아가거나 일이 진행되는 빠르기 2. [물리] 물체의 단위 시간 내에서의 위치 변화 3. [음악] 악곡을 연주하는 빠르기

빠르기 : [음악] 곡의 빠르고 느린 정도



  한자말 ‘속도’는 ‘빠르기’로 풀이하면서 뜻풀이를 셋으로 갈라 놓는 사전입니다. 이와 달리 한국말 ‘빠르기’는 한 가지 뜻풀이만 나옵니다. 얄궂지요. ‘속도’는 “→ 빠르기”로 다루고, ‘빠르기’를 제대로 결을 살려 뜻풀이를 해야겠습니다.



구분(區分) : 일정한 기준에 따라 전체를 몇 개로 갈라 나눔

가르다 : 1. 쪼개거나 나누어 따로따로 되게 하다

나누다 : 1. 하나를 둘 이상으로 가르다 2. 여러 가지가 섞인 것을 구분하여 분류하다



  ‘가르다·나누다’는 다른 낱말이지만, 사전은 돌림풀이입니다. 먼저 두 낱말을 제대로 살펴서 뜻풀이를 할 노릇이요, ‘구분’은 “→ 가르다. 나누다”로 다룰 노릇입니다.



당당하다(堂堂-) : 남 앞에서 내세울 만큼 떳떳한 모습이나 태도

떳떳하다 : 굽힐 것이 없이 당당하다



  ‘당당하다’는 ‘떳떳하다’로 풀이하고, ‘떳떳하다’는 ‘당당하다’로 풀이하는 사전입니다. 이런 돌림풀이는 털어야겠지요. ‘당당하다’를 “→ 떳떳하다”로 다루고 ‘떳떳하다’ 뜻풀이를 손질할 노릇입니다.



감(感) : 1. 느낌이나 생각 2. = 감도(感度)

느낌 : 몸의 감각이나 마음으로 깨달아 아는 기운이나 감정

감각(感覺) : 1.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2. 사물에서 받는 인상이나 느낌

감정(感情) : 어떤 현상이나 일에 대하여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끼는 기분



  ‘감·감각·감정’은 모두 ‘느낌’을 가리켜요. 세 한자말은 “→ 느낌”이나 “→ 느낌. 마음”으로 손질할 만합니다.



고찰(考察) : 어떤 것을 깊이 생각하고 연구함

연구(硏究) : 어떤 일이나 사물에 대하여서 깊이 있게 조사하고 생각하여 진리를 따져 보는 일

조사(調査) : 사물의 내용을 명확히 알기 위하여 자세히 살펴보거나 찾아봄

살펴보다 : 1. 두루두루 자세히 보다 2. 무엇을 찾거나 알아보다 3. 자세히 따져서 생각하다



  ‘고찰’ 뜻풀이나 ‘연구’ 뜻풀이를 살피면 겹말풀이가 됩니다. ‘조사’ 뜻풀이를 보면 “자세히 살펴보다”로 다루는데, ‘살펴보다’를 “자세히 보다”로 풀이하니, 또 겹말풀이입니다. 곰곰이 따지면 ‘고찰·연구·조사’ 같은 한자말은 “→ 살펴보다. 따지다. 깊이 알아보다. 찾아보다”로 다루어도 됩니다.



도합(都合) : 모두 합한 셈. ‘모두’, ‘합계’로 순화 ≒ 도총(都總)·도통(都統)·도수(都數)

합계(合計) : 한데 합하여 계산함. 또는 그런 수효

모두 : 1. 일정한 수효나 양을 기준으로 하여 빠짐이나 넘침이 없는 전체 2. 일정한 수효나 양을 빠짐없이 다 ≒ 공히

다 : 1. 남거나 빠진 것이 없이 모두



  ‘도합’이나 ‘도총·도통·도수’는 사전에서 덜어낼 만합니다. ‘합계’는 “→ 모두. 다”로 다루어도 되지요. 그런데 ‘모두’는 ‘다’로, ‘다’는 ‘모두’로 다루니, 사전풀이가 참 얄궂습니다.



옹호하다(擁護-) : 두둔하고 편들어 지키다

두둔하다(斗頓-) : 편들어 감싸 주거나 역성을 들어 주다

편들다(便-) : 어떤 편을 돕거나 두둔하다

감싸다 : 1. 전체를 둘러서 싸다 2. 흉이나 허물을 덮어 주다 3. 편을 들어서 두둔하다



  ‘옹호하다·두둔하다·편들다’는 뒤죽박죽 돌림풀이에 겹말풀이입니다. 이런 한자말은 모두 “→ 감싸다”로 다루면 되어요. 그런데 ‘감싸다’ 뜻풀이마저 “편을 들어서 두둔하다”로 적으니, 이 얄궂은 겹말풀이도 말끔히 손질해 놓아야겠습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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