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바랄 사전이라면
[오락가락 국어사전 24] 구멍난 말, 꽃밭 같은 말
한국말을 담는 사전이 퍽 엉성해서 여기저기 구멍투성이라 할 만합니다. 앞으로는 이 구멍을 슬기롭게 다스려서 꽃밭처럼 환하며 고운 모습으로 거듭날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부질없는 한자말을 잔뜩 끌어들여서 부피만 채우는 사전이 아닌, 우리가 말을 말답게 살리거나 헤아려서 쓸 수 있도록 돕는 알찬 사전으로 거듭나야지 싶어요.
쪽 : 1. 방향을 가리키는 말 ≒ 녘·편 2. 서로 갈라지거나 맞서는 것 하나를 가리키는 말
한쪽 : 어느 하나의 편이나 방향 ≒ 편측(片側)·한편
방향(方向) : 1. 어떤 방위(方位)를 향한 쪽 2. 어떤 뜻이나 현상이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쪽
향하다(向-) : 1. 어느 한쪽을 정면이 되게 대하다 2. 어느 한쪽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다 3. 마음을 기울이다 4. 무엇이 어느 한 방향을 취하게 하다
‘쪽’은 ‘방향’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방향’은 다시 ‘쪽’을 가리킨다고, “향한 쪽”이라고 풀이합니다. ‘향하다’는 ‘한쪽’이 되게 하거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모습을 나타낸다니 여러모로 뒤죽박죽입니다. ‘방향’은 “→ 쪽”으로 다룰 만합니다. ‘향하다’는 “→ 어느 쪽으로 보거나 가다. 어느 쪽으로 보거나 가게 하다”로 다루면 됩니다.
한낮 : 낮의 한가운데. 곧, 낮 열두 시를 전후한 때를 이른다 ≒ 낮·오천(午天)·일오(日午)·정양(正陽)
정오(正午) : 낮 열두 시. 곧 태양이 표준 자오선을 지나는 순간을 이른다 ≒ 상오(?午)·오정(午正)·오중(午中)·정오(亭午)·정중(正中)·탁오(卓午)
‘한낮’ 한 마디이면 넉넉합니다. ‘정오’를 비롯한 갖가지 한자말은 털어내어도 됩니다. ‘정오’ 한 마디는 사전에 둔다면 “→ 한낮”으로 다루면 됩니다.
요구하다(要求-) : 1. 받아야 할 것을 필요에 의하여 달라고 청하다 2. [법률] 어떤 행위를 할 것을 청하다
청하다(請-) : 1.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하여 남에게 부탁을 하다 2. 사람을 따로 부르거나 잔치 따위에 초대하다 3. 잠이 들기를 바라다. 또는 잠이 들도록 노력하다 4. [불교] 불보살이나 영혼 따위를 부르다
부탁(付託) : 어떤 일을 해 달라고 청하거나 맡김. 또는 그 일거리
바라다 : 1. 생각이나 바람대로 어떤 일이나 상태가 이루어지거나 그렇게 되었으면 하고 생각하다 2. 원하는 사물을 얻거나 가졌으면 하고 생각하다 3. 어떤 것을 향하여 보다
한자말 ‘요구하다·청하다·부탁’은 서로 맞물리면서 돌림풀이입니다. 곰곰이 생각할 노릇입니다. 이 세 가지 한자말은 ‘바라다’를 가리켜요. ‘요구하다·청하다·부탁’은 “→ 바라다”로 다루어도 됩니다. 이러면서 ‘바라다’ 뜻을 새롭게 넓혀서 여러 자리에 어떻게 쓰면 알맞을는지를 알려줄 노릇입니다.
구멍 : 1. 뚫어지거나 파낸 자리 ≒ 공구(孔口)·공규(孔竅)·공혈(孔穴)·혈규(穴竅) 2. 어려움을 헤쳐 나갈 길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3. 허점이나 약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4. 앞뒤의 논리가 맞지 않는 부분
빵꾸(일 panku) : → 펑크
펑크(puncture) : 1. 고무 튜브 따위에 구멍이 나서 터지는 일 2. 의복이나 양말 따위가 해져서 구멍이 뚫리는 일 3. 일이 중도에 틀어지거나 잘못되는 일 4. 낙제에 해당하는 학점을 받음을 이르는 말
한국말 ‘구멍’을 놓고 비슷한말이라면서 여러 한자말을 잔뜩 붙인 사전입니다. ‘공구(孔口)·공규(孔竅)·공혈(孔穴)·혈규(穴竅)’ 같은 한자말을 쓸 일이 있을까요? 이런 한자말이 참말 비슷한말이 맞을까요? 모두 사전에서 털어낼 노릇입니다. 영어 ‘펑크’를 일본말로는 ‘빵꾸’라 하는데, 구멍이 나는 일이라면 ‘구멍’이라고 하면 됩니다. 한국말사전은 ‘구멍’ 뜻풀이를 넓힐 노릇입니다. ‘빵꾸·펑크’는 “→ 구멍”으로 다루어야지요.
헤어드라이어(hair drier) : 젖은 머리를 말리는 기구. 찬 바람이나 더운 바람이 나오며 머리 모양을 내는 데도 쓴다. ‘머리 말리개’로 순화 ≒ 드라이어
드라이어(drier) : 1. = 헤어드라이어. ‘머리 건조기’, ‘머리 말리개’로 순화 2. [기계] = 건조기(乾燥器). ‘건조기’, ‘말리개’로 순화 3. [화학] = 건조제
머리말리개 : x
말리개 : x
건조기(乾燥機/乾燥器) : [기계] 물체에 있는 물기를 말리는 장치. 가열하거나 뜨거운 바람을 보내는 방법, 물기를 흡수하는 약제를 쓰는 방법 따위가 있다 ≒ 드라이
hair drier : 헤어 드라이어(drier)
‘머리 말리개’로 고쳐쓸 ‘헤어드라이어·드라이어’라는데, 막상 사전에는 ‘머리말리개’ 같은 낱말이 없습니다. 영어 두 가지만 싣는군요. 더욱이 한자말 ‘건조기’에 ‘드라이어’를 비슷한말로 실어 더 얄궂습니다. 영어 사전을 살피면 뜻풀이에 아예 ‘헤어 드라이어’만 있어요. 한국말사전도 영어사전도 엉성합니다. ‘머리말리개·말리개’를 새롭게 올림말로 삼을 노릇입니다. ‘헤어드라이어·드라이어·건조기’는 사전에서 덜어도 되고, 굳이 사전에 실으려면 “→ 말리개. 머리말리개”로만 다룹니다.
잘 : 6. 아무 탈 없이 편하고 순조롭게
무사히(無事-) : 1. 아무런 일이 없이 2. 아무 탈 없이 편안하게
한자말 ‘무사히’는 한국말로 ‘잘’을 나타내요. “→ 잘”로만 다루어도 됩니다. ‘잘’을 놓고는 “아무 탈 없이 편하게 순조롭게”는 “아무 걱정이나 말썽이 없이. 쉽고 부드럽게. 아늑하고 좋게”쯤으로 뜻풀이를 손볼 수 있습니다.
발생(發生) : 1. 어떤 일이나 사물이 생겨남. ‘생김’, ‘일어남’으로 순화
생기다 : 1. 없던 것이 새로 있게 되다 ≒ 생하다 2. 자기의 소유가 아니던 것이 자기의 소유가 되다 3. 어떤 일이 일어나다
일어나다 : 3. 어떤 일이 생기다 4. 어떤 마음이 생기다
‘발생’ 같은 한자말은 사전에서 털어낼 수 있습니다. 또는 “→ 생기다. 일어나다”라고만 다룰 노릇입니다. 그런데 사전은 ‘생기다’를 ‘일어나다’로 풀이하고, ‘일어나다’를 ‘생기다’로 풀이해서 얄궂습니다. 이 돌림풀이를 바로잡아야겠습니다.
사이즈(size) : 신발이나 옷의 치수. ‘치수’, ‘크기’로 순화
치수(-數) : 길이에 대한 몇 자 몇 치의 셈 ≒ 척수(尺數)
크기 : 사물의 넓이, 부피, 양 따위의 큰 정도
영어 ‘사이즈’는 사전에 실을 만하지 않습니다. “→ 치수. 크기”라고만 다루면 됩니다. ‘치수’를 풀이할 적에 “길이에 대한 몇 자 몇 치의 셈”처럼 적으나, “길이가 몇 자 몇 치인지 따진 셈”처럼 손질합니다. 번역 말씨 ‘-에 대한’하고 일본 말씨 ‘-의’를 다듬습니다. ‘크기’를 풀이할 적에도 “넓이나 부피가 어느 만큼 되는가”쯤으로 손질해 줍니다.
일방통행(一方通行) : 1. 일정한 구간을 지정하여 한 방향으로만 가도록 하는 일 ≒ 일방교통 2. 한쪽의 의사만이 행세하거나 통하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외길 : 1. 단 한 군데로만 난 길 ≒ 외통길 2. 한 가지 방법이나 방향에만 전념하는 태도
외통 : = 외곬
외곬 : 1. 단 한 곳으로만 트인 길 ≒ 외통 2. 단 하나의 방법이나 방향
한쪽으로만 가는 길이라면 ‘한쪽길’이라 할 수 있는데, ‘외길’이란 오랜 낱말이 있습니다. 굳이 ‘일방통행’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이밖에 다른 뜻도 헤아려서 ‘일방통행’은 “→ 외길. 외통. 외곬”로 다루면 되어요.
꽃밭 : 1. 꽃을 심어 가꾼 밭 ≒ 화전(花田) 2. 꽃이 많이 피어 있는 곳 3. 미인 또는 여자가 많이 모인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꽃뜰 : x
꽃집 : 주로 생화나 조화 따위의 꽃을 파는 가게 ≒ 꽃방·화방(花房)
화원(花宛/花苑) : 꽃을 심어 가꾸는 밭
화원(花園) : 1. 꽃을 심은 동산. ‘꽃밭’으로 순화 ≒ 방원(芳園) 2. 꽃을 파는 가게. ‘꽃 가게’로 순화
화전(花田) : 1. = 꽃밭 2. = 화초밭
화초밭(花草-) : 화초를 심고 잘 가꾼 밭 ≒ 화전(花田)
꽃밭은 ‘꽃밭’이라 하면 됩니다. ‘화전’처럼 한자로 옮겨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화원’처럼 다른 한자말을 쓰기보다는 ‘꽃뜰’이라는 낱말을 알맞게 지어서 쓸 만하고, 꽃을 파는 가게는 ‘꽃집’이라 하면 될 테지요. ‘花宛·花園·花田’은 사전에서 털어내거나 “→ 꽃밭. 꽃뜰”, “→ 꽃밭. 꽃집”, “→ 꽃밭”으로 다룹니다. ‘화초밭’ 같은 낱말도 “→ 꽃밭. 꽃뜰”로 다룹니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